[윤리] 죄와 회개

1999. 9. 19. 오후 8:26:17

글자

 

죄와 회개

 

- 이동익 신부님 강의록 -

 

 

회개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충성을 끊임없이, 그리고 능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윤리신학의 관점에서 회개란 충분히 의미있는 어떤 기능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능동적인 윤리신학 안에서 회개는 매우 다양한 문제와 관련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죄 자체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말할 때 다만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어질 수 있는가에 촛점을 맞추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그리스도로부터의 권능으로서의 회개와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와 그분께 대한 신뢰를 지니고 살고 있는 우리들을 온갖 방법으로 위협하고 있는 죄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1. 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1.1. 죄에 대한 죄스런 대화

 

만일 우리의 의도가 우리 자신들을 변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말하면서 죄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서도 마귀를 비난하면서 죄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우리들 각자가 죄를 지을 때 아담처럼 행동한다는 것과 또 나아가서는 그럼으로써 이 세상의 죄의 모습이 점점 더 더 크게 자라난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아담이나 하와, 혹은 그 둘의 어깨에 자신의 죄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다시 부정하면서, 그리고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가운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자유를 더욱 크게 증가 시켜야 할 우리 자신의 임무를 거부하면서 우리 자신을 변명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자유가 없다고 핑게를 대면서 우리 자신을 변호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해방시키셨고, 자유와 충성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신 그리스도를 거슬러 죄를 짓은 것이며,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복합적인 죄의 습성을 더 들추어내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다. 구원과 용서라는 진실된 차원과 격리된 일반적인 대화는 슬픔과 비애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우리가 용서받은 사람이라면,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화해의 중재자로서 행동하면서, 그리고 온갖 죄와 투쟁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면서, 죄에 대한 말을 하게 될 것이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2. 죄와 죄들

3. 사죄와 경죄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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