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 특별기획] 경기도 안성 죽산 순교성지를 찾아서
일가족 순교 유난히 많은 '가족 성지'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에 보내는 9월 순교자 성월은 그 어느 해 순교자 성월보다 느낌이 다른 듯 하다. 200년 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전국 산하에 뿌려진 거룩한 피들이 100배 1000배 수십만 배의 열매를 맺어 오늘의 한국 가톨릭 교회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천년의 원년인 2001년 순교자 성월을 맞아 비록 신유박해 순교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포함, 가족 모두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주저하지 않았고 죽음으로써 새로운 부활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족 순교지 '죽산성지'를 소개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가정의 위기, 해체로 우리사회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는 요즈음, 본당, 공동체 단위는 물론 가족이 함께 죽산성지를 찾아 순교자들의 숭고한 신앙의 향기에 흠뻑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 모두 그리스도를 닮은 작은 예수들이 되어 되돌아 오길 희망하면서…
△ 정화의 땅 - 죽산성지
가톨릭 교회 안에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신심 가운데 기복적 요소가 없는 3가지 신심이 있다. 바로 성체신심과 성모신심, 그리고 순교자 신심이다. 한국 천주교 성지 중 이 세가지 교회 전통 신심을 한꺼번에 고양하기 위해 성지 개발 단계에서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된 유일한 성지가 있는데 바로 '죽산성지'이다.
고풍스러운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 묘역까지 성지를 한 바퀴 돌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커다란 돌 묵주알들이 놓여져 있다. 또 성지 가장자리에는 파티마 성지처럼 대리석을 깔아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5단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로사리오의 길은 바로 성모 신심을 통해 '땀의 순교'를 체험하는 순례 길이다.
로사리오 기도 15단을 다 봉헌하면 무명 순교자 묘역을 중심으로 양면에 날개 모양을 한 병인박해 순교자 묘역 25기가 나란히 꾸며져 있다. 이들 순교자들은 모두 죽산성지에서 순교한 이들로 한치수(프란치스코), 김도미니코, 여정문 일가 등 25명으로 "병인박해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행적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 100여명의 순교자들은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 순교자 묘역은 순교자 신심을 통해 '피의 순교'를 체험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순교자 묘역 바로 위에는 십자가 상이 조성돼 있고, 십자가상 위에는 '예수 부활상'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길 14처가 후광 모양처럼 예수 부활상을 감싸 안듯 꾸며져 있다. 그리고 성지 맨 윗편에는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경당과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땀과 피가 한 덩어리가 된 순교의 결정체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기쁨과 은총을 만끽하고 정화되는 거룩한 장소이다.
죽산성지는 이처럼 순례객들에게 땀과 피의 순교를 체험하고 성체성사 안에서 가정과 본당, 사회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짐하게 하는 사목적 배려 속에 조성된 성지이다.
△ 두둘기 전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죽산 성지에서 순교한 100여명의 넘는 순교자들 대부분은 두들겨 맞아 치명했다. 그 현장이 얼마나 잔혹했던지 지금도 성지 일대를 '두둘기 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병인박해 증언록과 마을 주변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경기도 용인, 안성, 원삼, 가칠암 등지에 숨어살다 잡힌 천주교인들이 처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겪어야 했던 처절한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천주교인들을 끌고가던 포졸들은 거리의 작은 주막에 당도하면 천주교인들에게 "돈을 내라", "이제 너희들은 저 달거리 잔등만 넘으면 죽는다. 돈을 내면 풀어 주마" 하며 무조건 두둘겨 팼다는 것이다. 주먹과 치도곤으로 무차별적으로 맞으며 6km여에 달하는 거리를 고통스럽게 끌려온 신자들은 처형장인 죽산 성지에 도착하면 맷돌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커다란 돌에 목이 묶인 채 머리가 터지는 형벌로 치명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 10대들의 순교지 - 잊은터
죽산성지는 또 10대들의 순교지이다. 순교자 여정문은 처와 아들과 함께 한 날 한시에 이곳에서 순교했다. 당시 국법은 한 가정의 아버지와 아들이 한 날 한시 한 장소에서 처형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포졸들을 법을 어겨가며 이들을 죽였다. 여정문의 아들은 15세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 였는데 부모가 포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 자원해 부모들과 함께 순교했다. 또 순교자 여기중도 며느리와 어린 손자와 함께 순교했다.
문 막달레나(19)도 시아버지 고 야고보와 남편 고 요셉과 함께 이 곳에서 순교했다. 그녀는 아이를 출산한 후 얼마 안돼 포졸들에게 체포됐으며 신앙과 자식에 대한 모성애 사이에서 큰 고통을 겪다 인간적인 모든 정을 끊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걸어간 순교의 길을 따라 걸었다. 이처럼 가족과 10대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한 죽산 성지는 교우들과 주민들에게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로 불렸다.
△ 찾아가는 길
죽산성지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일죽 IC로 빠져 나와 곧바로 우회전 한 후 왼쪽 옆 광장휴게소 쪽으로 좌회전 한 후 '죽산성지' 안내 표석을 따라 800m 정도를 더 가면 된다. 2만2000평이나 되는 넓은 성지에 약 7000여 평의 대형 주차장이 있어 가족 단위로 차를 몰고 순례를 가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또 대중교통 편으로는 서울 남부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안성행 버스를 타고 죽산에서 하차한 후 다시 일죽행 시내버스를 타고 광장휴게소에서 내려 죽산성지 안내표지를 따라 약 800m 정도를 걸어가면 된다.
<평화신문, 642호, 2001년 9월 2일, 리길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