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 신부 은신했던 성거산 동굴 확인
병인박해(1866년) 당시 칼레(1833-1884, 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파리 본원에 보낸 서신 6신과 13신에서 자신과 페롱(1827-1903년) 신부가 박해를 피해 은신했다고 기록한 천안 성거산 동굴이 최근 확인됐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와 면형강학회(회장 이충우)는 9일 현지 답사에서 병인박해 때 생존한 칼레, 페롱 신부가 거처하며 미사를 집전했던 성거산 동굴을 최천여(베드로) 순교자의 5대손 최병기(77, 시몬) 용기(72, 요한) 형제의 증언으로 성거산 서남쪽 해발 400m지점인 현재의 미군 레이더 기지 근처에서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특히 최천여 순교자는 칼레 신부가 그해 10월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떠날 때 충남 당진군 신창면 해안가까지 선교사들을 직접 안내했다는 구전이 이 집안에 내려오고 있어 성거산 동굴의 교회 사적으로서의 신빙성은 높다. 천안시 성거면 동굴은 지난 59년 7월 미군이 성거산에 기지를 만들면서 주변이 폭발물 위험지역으로 정해져 43년간 출입이 통제되다가 이번에 미군측의 허락을 받아 답사가 이뤄졌다.
성거산 동굴은 부산교구 언양의 간월산 죽림굴보다 작은 규모로, 동굴 출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지만, 동굴 내부는 12명 정도가 충분히 앉아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동굴에는 평평한 돌이 놓여져 있고 벽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교회사 관련 유물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동굴은 특히 천안시 목천면과 북면, 풍세면, 광덕면 일대의 여러 교우촌의 중심지였던 소학동(일명 소학골) 교우촌과 바로 연계돼 있을 뿐만 아니라 천안시 북면 납안리 일대 성거산 해발 500m에는 순교자 최천여와 최종여(라자로) 형제, 배문호(베드로), 고의진(요셉), 채서방 며느리 등 순교자 5위와 무명순교자 69위의 묘소가 있어 교회사적 의미도 크다. 칼레, 페롱 신부는 성거산에서 박해를 피한 뒤 1866년 10월과 직후 출국, 중국으로 피신했으며 조선에의 재입국에는 실패했다.
최병기, 용기 형제는 이날 답사에서 "이 동굴은 집안에서 구전으로 칼레 신부님과 페롱 신부님이 주로 낮에 거처하면서 쉬거나 미사를 드리던 곳으로 전해져 왔다"며 "43년만에야 선조들의 숨결아 남아있는 성거산 동굴을 다녀오게 되니 원이 없다"고 증언했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성거산 동굴은 신자들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박해를 피했던 칼레, 페롱 신부님이나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행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교회사적지로서 의미있는 신앙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고, 나아가 동굴 앞에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을 세워 신자들이 기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신문, 636호(2001년 7월 22일), 오세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