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신유박해 성지순례(하)

2001. 7. 16. 오전 9: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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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특집] 신유박해 성지순례(하)

 

 

충청도와 전라도 신앙공동체는 조선교회사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과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절대적인 헌신으로 가능했다.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아 여름휴가 특집으로 기획한 '신유박해 순교터' 두번째 특집은 충청, 전라 두 신앙공동체에 몰아친 박해의 불길에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치명 현장을 집중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편집자>

 

 

▧ 대전교구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지대를 일컫는 내포지역은 충청도 일대 신앙의 못자리였다. 이를 가능케한 주역은 역시 '내포의 사도'로 불리운 이존창(이단원, 곤자가의 루도비코)으로, 농민 출신의 학자로는 드물게 조선교회 가성직단의 일원으로 충청도의 복음화는 물론 조선의 복음화를 지폈다. 이에 따라 충청도 내포와 그 인근은 박해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의 현장이 됐고 동시에 수많은 조선교회의 주역을 길러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나라의 첫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 김대건의 할머니는 이존창의 조카딸이며, 최양업 신부 역시 그의 생질의 손자였던만큼 이존창이 조선교회에 미친 신앙적 공헌은 그만큼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 공주 = 신유박해 순교터는 공주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제민천 '황새바위'로 추정된다. 현재의 행정구역 이름은 충남 공주시 교동 118의 2로, 공주시 북쪽을 감아도는 금강을 가로지르는 긍강교를 건너 공주시내로 진입, 오른쪽으로 무녕왕릉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서 500m쯤 가면 길 왼쪽이 황새바위다. 이 성지에서는 이존창이 1801년 2월 28일 참수된 것을 시작으로 이국승(바오로, 음 5월) 이종국(음 3월 15일) 금산솔티에 살던 원씨(1801년) 등이 순교했다. 황새바위 성지, 041-856-3923.

 

▲ 예산군과 예산군 대흥면 = 예산의 순교터는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순교자 김광옥이 1801년 7월 13(음) 순교한 현장은 '예산 관아'(현재 정확한 관아터는 알려지지 않음)로 추정되고 있으며, 김정득의 사촌인 김광옥(안드레아)는 그해 7월 17일(음) 예산군 대흥면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 홍주(현재의 홍성) = 신유박해 당시 홍성 순교터는 현재 관문만 복원돼 있는 홍주읍성내 홍성관아터 감옥 뒤편이나 관아 밖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홍성읍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읍성은 전체가 순교현장이라는 것이 교회사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군청과 객사, 동헌 등 구석구석이 처형지로 사용됐던 읍성은 아직도 남아있는 고목들과 함께 당시 교우들이 받았던 엄청난 핍박을 그대로 전해준다. 홍성의 신유박해 순교자는 한 토마스(1801년 순교), 윤 바오로 (1801년) 등 2명이다. 홍성본당, 041-633-8891.

 

 

▧ 청주교구

 

▲청주 = 청주의 신유박해 순교터는 '청주읍성 남문 밖'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석교 일대라는 주장과 청주 제일교회 자리라는 주장이 엇갈리지만 청주읍성(일제강점기 중 헐림) 남문 밖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청주에서는 김사집(프란치스코)가 12월 22일(양 1802년 1월 25일) 장에 맞아 순교했고, 골롬바(덕산고을 별암의 양반 이씨의 아내) 역시 같은 날 순교했다.

 

▲ 충주 = 충주 순교터는 '옛 충주목 관아에서 1㎞쯤 떨어진 지점'으로, 행정구역명으로는 충주시 문화동 1024번지다. 충주시청이 들어섰다가 시청이 이전하면서 현재는 이마트가 건립중이다. 충주에선 이기연(세례명 미상), 이부춘(세례명 미상), 이아기련(세례명 미상, "사학징의"에는 성이 권씨로 나옴) 1801년 8월 27일(양 10월 5일) 충주에서 참수됐다.

 

 

▧ 광주대교구

 

▲ 영광 = 파리외방전교회 샤를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신유박해 당시 전남 영광에서는 이화백과 영광 복산 출신의 오씨(이름은 알 수 없음) 등 2명이 순교했다.(순교 일자도 기록이 없음) 그러나 관변측 기록에는 일체 이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달레 신부의 교회 기록 역시 영광에서 순교했다고만 밝히고 있어 정확한 순교터는 알 길이 없다.

 

 

▧ 전주교구

 

신유박해 당시 전주 지방 교회를 이끌었던 주역은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 일가다. 조선천주교회의 핵심 인물인 그는 1784년 늦은 가을 이승훈(베드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입교,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받기까지 윤지충(바오로)과 함께 전라도 지방을 복음화하는게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호남천주교회의 초석'이 된 것이다.

 

▲ 전주 = 신유박해 사형집행장은 풍남문이 있던 '전동성당터'(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 200의 1)다. 남으로 사형집행을 담당할 중진영(일종의 군부대 사단)이 연접해 있고, 북으로는 전라감영 감사의 청사인 선화당이 지척에 있는 전동성당터는 이미 1791년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의 처형장으로 사용된 바 있으며, 신유박해 때인 1801년 9월 17일(양 10월 24일)에는 유항검과 그의 아우 유관검, 윤지헌(윤지충의 아우), 이우집, 김유산 등이 참수됐다. 이에 앞서 유항검의 노비였던 김천애(안드레아)는 7월 19일이나 20일(양 8월 27일이나 28일) 전동성당터에서 처형당했다.

 

▲ 전주 큰옥 = 전주큰옥 터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560의 6 전주교구청 근처 옛 전북대 대학병원 자리로, 현재는 전주 완산구청 제2청사가 들어서 있다. 전주옥에서는 유중철(유종석, 요한) 유문철(유문석, 요한) 형제가 각각 23세, 18세의 나이로 1801년 10월 9일(양 11월 14일) 교수형을 받고 치명했다.

 

▲ 전주 숲정이 =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144의 1 숲정이 형장은 군지휘소가 있던 장대와 군인들의 연무장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 전주의 대표적인 처형장이었다. 신유박해 순교터는 전주 숲정이 성지 옛 칼탑 자리로, 현재는 동국아파트 유치원이 자리하고 있다. 유항검의 가족 가운데 처 신희와 유관검의 처 이육희, 유항검의 조카 유중성(마태오), 이순이(루갈다) 등 4위가 1801년 12월 28일(양 1802년 1월 31일) 참수형을 받은 순교의 현장이다.

 

▲ 김제 = 김제의 정확한 순교터는 알 수 없다. 김제에서는 가난한 양반집 출신으로 유항검의 먼 친척이었던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이 7월 18일(양 8월 26일) 순교했다.

 

▲ 무장(무주, 장수) = 무장의 순교터는 당시 전라도 무장현 동음치면 '개갑(현재 고창군 공음면 갑촌) 장터'(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로, 당시 전국에서 유명한 우시장이었다. 최여겸(마티아)은 박해가 일어나자 처가가 있는 충청도 내포 남쪽 한산으로 피신했다가 1801년 4월 13일 한산관아에서 체포돼 무장, 전주, 서울 형조를 거쳐 '해읍정법'에 따라 영광땅과 지척인 고향 개갑장터로 이송돼 7월 19일(8월 27일) 39세의 나이로 참수당했다.

 

<자료 제공 및 도움말 = 김진소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신부,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 방상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각 교구 본당 및 성지>

 

<평화신문, 635호(2001년 7월 15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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