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삶(증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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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목표 : 신앙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이면서 핵심적인 실천내용인 선교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모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인 신앙실천을 유도한다.선교와 증거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참다운 힘은 바로 복음의 말씀에 충실한 삶에 있음을 일깨워 선교가 흘러 넘치는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한다.
♤ 준비물 : 볼펜, 푸른 노트, 미션 영화 음악테이프, 카세트
+시작기도...........
♤ 도 입
복음선교의 참 주체이신 성령
흔히 사람들은 개신교 신자는 전교에 애를 쓰며 열심히 노력하는 반면에, 천주교 신자들은 왠지 소극적이며 제발로 성당을 찾아오는 예비자들에게도 어색하게 대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분명 이처럼 소극적인 신앙의 태도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삶을 이미 성서를 통해서 자주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기쁨을 도저히 혼자서만 지니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선교란 흘러 넘치는 기쁨을 전하는 일, 흘러 넘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이 뭔지 아는 사람? (지적)
그러면 오늘 복음말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지적)
그렇지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하시죠?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천주께 감사합니다" 라고 응송하고 성당문을 나서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는커녕 오늘 복음말씀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봅시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였습니다. 이 말씀이 제자들의 사명을 일러주신 것이며,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이번시간에 우리는 복음선교의 사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또 이해한 것을 우리의 생활 속에 충실히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께 잠시 동안이지만 우리들 자신을 의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 전 개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영화 미션의 음악가운데서 미션, 혹은 가브리엘 오보에 곡을 들려준다. 전체 준비 시간이 3분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칠판에 아래내용을 판서한다.)
선교(Mission)와 복음화(Evangelization)란 ?
오늘날의 복음선교 내용과 복음선교의 방법은 ?
1. 선교(MIssion)에 관하여
지난 시간에 본 미션이라는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볼까요? 처음엔 노예상인이었으나 참회하여 인디오를 위해 사는 로드리고역을 맡았던 로버트드니로, 가브리엘 신부역을 맡았던 제레미아이언스의 대조적인 연기와 엔리오 모리코네의 애잔한음악, 그리고 세계최대라는 이구아스 폭포장면이 인상적이죠? (지적으로 여러가지를 끄집어 내는 것도 무방하다)
로드리고라는 사람은 동생을 죽인 후 괴로워 하다가 속죄를 하기 위해 폭포의 절벽을 오릅니다. 무거운 짐 꾸러미를 어깨에 매고 몇 번이고 굴러 떨어지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릅니다. 원주민의 마을에 도착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원수였던 로드리고를 용서하고 무거운 짐을 끊어주지요.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지은 죄의 굴레를 벗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넘치는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전도자가 되지요2
특히 마지막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지상낙원인 선교회가 국가간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야 하는 불의의 현실을 앞에 두고 두 선교사는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고 말지요. 다시금 검을 빼어 든 로드리고와 마지막까지 신은 무엇인가 회의를 하다가 사랑으로 결론 내리고 성체강복과 현시 후 총과 포 앞에 무기력하게 그러나 고결한 모습으로 순교한 가브리엘 신부, 어쩌면 그들은 모두 원주민들을 사랑했던 인물이었죠. 그러나 어떤 사랑이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을까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선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쉽게 '선교의 삶'하면 단순히 복음을 이웃에게 전파하는 것 그래서 외적으로 드러난 활동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단순히 '이것이다'라고 전해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은 철저히 우리의 삶을 통해 실천으로서 전파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루가 24, 48)고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울 뿐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보지 않고도 믿을 줄 아는 신앙의 증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선교는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복음화(Evangelization)란 무엇인가?
선교라는 말과 거의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교라는 어의(語義)보다 풍부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갖는 표현으로 종래의 '선교'와 '사목'의 의미는 물론이고, 복음의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내적으로 쇄신시켜서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위반되는 모든 인간적인 판단기준, 사상의 동향, 그리고 가치관과 생활 양식 등을 변화시켜서 "복음적 생활"(에페소 4, 23-24 : 골로사이 3, 9-10)로 인도하는 활동까지를 폭넓게 의미합니다. 즉 복음화는 그야말로 우리 신자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이루워져야 할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선교의 삶 혹은 증거의 삶은 바로 이러한 복음화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선교의 내용
우리가 전해야 하는 선교의 내용은 어떤 윤리적 가르침이나 훌륭한 철학 사상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으라는 권고도 아닙니다. 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십자가 상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전한다고 할 때, 이것은 말로서만 전한다면 아무리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하고 외친다 하더라도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밤에 높은 건물 위에서 도시의 불빛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빨간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말 두세 집 건너 교회나 성당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상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교의 열매, 즉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갈라5,22)가 사회 도처에 현저히 나타나야 합니다. 이 땅의 소금으로서, 빛으로서, 사회를 변혁시키는 누룩으로서 힘차게 나타나야 합니다.
4. 선교의 방법
이제 '어떻게 선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냐?'하는 점에 대해 생각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지하철 역 구내나 도심 한가운데서 "예수를 믿으시오, 여러분 가정은 구원을 받습니다."하며 목청을 높여서 전도하는 것을 목격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체면 따위는 아랑곳 않고 오직 예수님을 알리는데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인 듯이 비춰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 어떻게 생각했읍니까? 아마도 보기 좋다는 느낌은 안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목청이 터져라 외치지만 왠지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고, 특히나 조금은 강압적으로 믿음을 강요할 때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사람들의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그 방법은 왠지 모르게 탐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선교 역시 서로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그 안에서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그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선교하는 이의 감정만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영화 미션을 되새겨 보면 처음에 가브리엘 신부는 험한 절벽을 올라가서는 피리를 부릅니다. 원주민들은 처음엔 그것을 못하게 하려다 그들도 역시 음악을 좋아했으므로 그를 자신들과 지내도록 인정했고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시작되었지요?
선교 방법의 훌륭한 모범은 1고린 9,19-23에서 잘 나타납니다. 여기서 바울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다인을 대할 때는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율법이 없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믿음이 약한 사람을 대할 때는 믿음이 약한 사람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복음선포에 앞서 복음을 전해받을 사람과의 올바른 인간 관계를 갖기 위해 그 사람과의 동질화를 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어느 곳에를 가던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 스스로 그들처럼 되어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들의 환경, 성격, 가치관 등 그들의 입장을 잘 파악하여 대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인격적인 친교를 나누면서 그들의 슬픔과 아픔에 함께 동참하는 형제애를 발휘해야 합니다. 선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선교사의 삶에서 드러나는 표양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현대는 대중매체의 시대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 선교 역시 이 매스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예컨대 가톨릭 신문이나 경향잡지 등 교회 홍보 매체를 서로 돌려본다든지, 교회 서적을 선물한다든지, 평화방송의 청취를 위해 도움을 준다든지 등의 방법이 있겠습니다.
♤ 종 합
선교와 성령의 활동
지금까지 선교에 대해 여러 가지를 언급하였지만 성령의 활동이 없다면 아무리 근사한 복음 내용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좋은 방법을 써서 그것을 전한다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는 선교가 되고 맙니다. 선교활동을 떠받치는 힘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12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면서 동고동락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로 곁에서 들었으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절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자신도 붙잡히게 될 처지에 이르자 '예수님을 모른다'하면서 발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제자 한 명과 연약한 여인들 몇 사람만이 나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머지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은 겁이 나서 모두 도망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12제자들은 겁이 많고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시자 모든 것은 달라졌습니다. 겁이 많고 무식하였던 제자들은 담대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을 통해 성령께서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시면서 유다인,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졌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사실들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초대교회가 그렇게 줄기차게 널리 퍼져 나간 것(사도6,7; 12,24)은 오로지 성령의 힘이었던 것입니다(사도13,52).
선교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하는 이는 자신의 활동으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다는, 자신은 하느님의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 마침기도
<다음의 성서 말씀을 듣고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발걸음과 행위를 살펴보시는 주님께 우리들이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봉헌할 수 있는 가를 잠시동안 묵상하도록 합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을 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로마10,13-15)
묵상은 2분 내지는 3분 정도가 적당하며, 이 때 교리 시작 때에 들려주었던 미션(Mission)영화음악을 다시금 들려주어도 좋을 것이다.>
♧ 자 료 : 임 요한 (중3 공동교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