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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32 주간 금요일. 2006. 11. 17. 중계본동. 2요한 4-9. 루카 17, 26-37. 예수께서는 하느님나라에 관한 바리사이의 질문을 받고 답하신 후 다시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확정지어 주십니다. 요점은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은 그때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언제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하셨습니다.(루카 12, 40) 예수께서는 노아의 예를 드시는데, 홍수가 세상을 뒤덮던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을 평안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무엇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심판은 그 때에 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때에 온다면, 누구나 그때에 맞춰 준비할 것이 아닙니까? 시즌이 시즌인지라 수능에 대해서 계속 말합니다만, 수능일이 정해져 있었지만 엄마들은 기도해도 아이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들도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다가 때에 맞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지만) 그나마 낫습니다. 수험생들은 내내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닥치니까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가 되니까 그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때를 안다면 그때에 맞춰 준비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은 멸망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만,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분리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침상에 있어도(동일한 잠자리, 혹은 동일한 자리에서의 식사)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둡니다.(루카 17, 34)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둡니다.(루카 17, 35) 지금은 모릅니다. 우리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주님의 날이 오면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혹 재앙이 시작될 때 물질로부터 초연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던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자신에게 있었던 재산을 생각한다면 그는 결국 그것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주님을 온 삶으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루카 17, 32)고 하시는데, 그가 그랬습니다. 그녀는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자신의 것에 미련을 두는 바람에 선택받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재산은 이렇듯 우리를 옭아매는 구실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위해 재산을 포기하는 마음은 나의 생명을 살립니다. 그렇기에 더 나아가 생명을 얻기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결단까지도 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나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 37) 독수리들은 시체가 있는 곳에 빠른 속도로 몰려듭니다. 그것처럼 주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를 향해 더딤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그 몸을 향해(이것은 당신의 삶 전체를 포함한다) 주저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나를 향해 기꺼이 당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나 역시 주를 위해 기꺼이 달려가야 합니다. 그토록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달려가게 됩니다. 더디지 않습니다. 달려갑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이! |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이!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 오후 8: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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