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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금요일 2006. 11. 17(2요한 4-9/ 루카 17,26-37)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리처드 바크가 지은 “갈매기의 꿈”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고기잡이배에 앉아 썩은 고기들을 쪼아 먹으며 배만 채우려하는데, 조나단이란 갈매기는 끊임없이 높이 나는 비행 연습을 합니다. 조나단에게 있어 높이 나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삶의 의미를 조나단 갈매기는 깨닫고 그것을 다른 갈매기에게 전해주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갈매기들은 여전히 갑판에 앉아 썩은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도 상당수는 진정한 신앙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보다는 갑남을녀들처럼 그저 배를 채우는데 만족해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인은 하느님을 끊임없이 목말라하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날의 안위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현실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저 높이 나는 갈매기의 모습은 못됩니다. 이 지상에 고개를 파묻고 살기에 바빠, 천상을 비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천상을 비행하는 것은 이 지상에 살면서도 지상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존재를 깊이 느끼고 그분의 원의를 받아들여 일상을 꾸려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모습은 그저 하루하루 배를 채우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갑남을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들은 이미 초월의 경지를 살아갑니다. 초월은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신앙은 현실에 안주가 아니라 현실의 초월을 요구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세계로 늘 넘어듭니다. 현실을 초월하는 노력을 부단히 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왜 부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습니까? 현실에 묶여 하느님의 세계로 여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에 관한 복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구절이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하느님의 세계에로 넘어들기 위해 늘 노력하는 신앙인에게는 종말은 구원의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은 자꾸만 현실의 위안에 매달리려 하고, 현실적 가치에 정신을 쏟고 살기가 일쑤입니다. 오늘을 주님을 맞이하는 구원의 날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날, 주님이 계셔 행복한 날이 되도록 멋있게 이 하루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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