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5주간 화요일 |
 2007/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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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 민수 21,4-9 복음 : 요한 8,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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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죽어 죽겠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요한 8,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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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자살율이 상위권에 속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 자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가? 오래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안락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스위스에는 실제로 이런 일을 행하는 시설이 있다. 유럽의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고객이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비참한 인생 종말을 스스로 품위있게 마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인생관이다. 대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작품에서 ‘죽지 못해 죽겠다’는 표현을 쓴다. 성녀는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죽길 갈망했다. 신비신학자인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과 합일에 대한 열망에 불탔기 때문에 죽지 못해 죽겠다고 신음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바오로 사도 역시 죽길 갈망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을 위해서는 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필리 1,21-25 참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여 더 이상 밖의 세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며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하신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안락사를 시행하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무신론자들이다. 대데레사 성녀는 어려움을 만날 때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지 말고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말한다. 찬미는 하느님께 올라갈 수 있는 영혼의 날개이기 때문이다.
정복례 수녀(성모영보수녀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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