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사순 특강 1... 인생의 운명 [박장원 신부님] 2007.03.25

2007. 3. 27. 오전 8:55:23

글자
제2강의: 너희는 깨어 기도하여라.  기도에 대해서


기도는 일반적으로 비는 것이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 하느님께 울부짖는 것이다.
죽을 순간에 우리는 비명을 질러댄다. 사람 살려!!
“하느님, 살려 주십시오”란 뜻이다.
“하느님, 도와 주십시오”란 뜻이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한다.
본능에 박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움, 불행, 근심, 걱정에
다다르면 하느님을 찾고 부른다.
죽게 되었으면 하느님께 매달린다.
큰 병에 걸리면 하느님께 매달린다.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봐 주십시오.
하느님, 살려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봐 주십시오.
하느님, 이번 한 번 도와주시면,
제가 재산의 반을 희사하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제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겠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잘 나가겠습니다.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거듭나겠습니다.
이걸 “서원한다.”고 한다.
하느님께 약조하는 것이다. 약속한다.

사람은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른 법이다.
저렇게 약속을 철석같이 해놓고도, 또 어긴다.
약속을 안 지킨다. 오호 통재로다.

이런 기도를 기복적이라 한다. 복을 비는 행동이다.

복만 비는 것이다. 제 할 일은 안 하고,
일단 급하니까 복만 간절히, 애절히 빈다.
기복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본능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기복(祈福)이란 축복을 비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 사찰이나 모든 종교에는 이런
기복이 성행하고 있다.

누구든지 아쉬워서 종교를 찾기에
종교를 가면 모두 기도를 하는데,
거의 다 현세적인 축복을 비는 것이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입시철이 되면,

고3이 되면 부모자식이 함께 교회에 와서는
기도예물을 놓고 간다.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영험한 성직자일수록 예물이 크다.
중병에 걸리면,
성당의 신부님을 찾고 목사님을 찾는다.
그리고는 축복의 기도를 해달라고 한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얼른 끄고 봐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때, 잘 나갈 때는 성당, 교회,
사찰을 대수롭지 않게 본다.
일이 났을 때는 할 수 있는 대로 겸손한 모습으로,
초췌한 모습으로 종교를 찾는다.
그리고는 복을 빈다.
절에 가면 기와봉헌을 본다. 기와불사라고도 한다.
한 장 쓰는 데에 만 원씩 한다.
기와에 자기 이름을,
생각나는 이름을 쓰고는 소원성취를 빈다.
남양 성지에 가면 입구에서 성모님께 촛불봉헌을 한다.
다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봉헌하면서 소원을 빌고 또 빈다.
어떤 소원을 빌까?
내용을 보면, 건강이 제일 많다. 사업번창도 많다.
승진, 취직도 있고, 소원성취라는 막연한 글도 있다.

어떤 사람은 보통 때 성당에 안 나오는데,
부모가 돌아가시면, 난리를 떨고 성당에 와서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는 또 냉담이다. 오호통재로다. 어째 이런 일이?

이런 것이 참다운 기도일까?
이런 것이 기도라면 그건 굉장히 이기적인 태도요,
미성숙한 태도요, 철이 안 난 아이들의 태도이다.
그것이 기도의 원초적인 의미라면 할 수 없다.
다만, 얼른 그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그 단계에 머물면 어찌 되겠는가?
늙어서도 그 단계에 머물러 버리면
먼 길을 가야 할 사람이 고개 하나만을 넘고는
더 이상 안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음 단계로 부지런히 가야 목적지에 가깝게 가는
것인데, 그걸 하지 않고 첫 단계에서 마냥 주저
앉아버리면 어찌 하겠는가?


그럼 기도의 제2 단계 무엇이냐?
그것은 “이제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 감사의 말을 하는 것.
감사와 찬미가 그것이다.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에 걸린
사람 열 사람을 고쳐주시는데,

틀림없이 그들이 예수님께 사정을 했을 것이다.
그게 기도의 1단계이다.
예수님, 봐 주십시오. 예수님,
한번만 자비를 보여주십시오.
예수님, 적선하십시오. 예수님,
살려주십시오. 예수님,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그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치유되고 나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렸다고 했다.
이렇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의
다음 단계라고 보면 된다.

사는 게 은총이기에 늘 감사의 마음을 품고, 찬미-찬양한다.

이 단계에서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화살기도,
되풀이기도, 묵주기도를 바친다.
무슨 특별지향을 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감사, 찬미, 찬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기복이 아니라, 교류하는 단계이다.
기복은 일방적인 외침이라면,
교류는 주고받는 쌍방적인 관계이다.

매일미사 책 뒤에 아침기도, 저녁기도가 있다.
그건 수도자, 성직자들이 바치는 기도를 따른 것이다.
아침기도: 성호경, 찬미가, 시편기도,
성경봉독과 묵상, 가정을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부부의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성서사도직을 위한 기도,
청원기도, 주님의 기도,
마침기도와 강복의 순서로 되어 있다.

저녁기도: 성호경, 양심성찰과 반성의 기도, 찬미가,
시편기도,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 시복시성 기도, 묵주의 기도,
감사기도와 강복을 청하는 기도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런 기도는 모두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위주로 되어 있다.


감사의 기도:

가만히 있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감사의 정으로 넘치게 한다.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서 내면을 들여다본다.
어떤 말이 필요 없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굳이 말로써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다 아실 것이기에 마음과
마음으로 교류하는 이심전심이 시작된다.
정신과 정신으로써, 마음과 마음으로써,
이심전심으로 교류하는 것이다.


감사의 1순위는 하느님이시다.
생명의 근원, 나의 근원, 대자연의 근원.
대자연: 해, 달, 별, 하늘, 공기, 물, 불,
땅, 풀과 나무, 오곡백과, 삼라만상.
이 대자연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런 마음으로 조용히 있다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 대자연을 오염시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이 무상으로 주신 이 선물, 잘 써야 하지 않겠는가?
공기오염(대기오염)을 시키면 되겠는가?
수질(강, 하천, 바다)을 오염시키면 되겠는가?
토질(땅)을 오염시키면 되겠는가?
안 되지. 그리 되면 큰일이지. 그럼 안 되지.
환경이 죽어 가면 되겠는가? 안 되지. 그럼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뭔가를 해야 되겠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과 교류하는 것이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기도문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스스로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묻고,
찾고, 결정하고, 결단하고,
실천에 옮기려는 것, 이것이 바로 교류하는 것이다.
어떤 방안, 대안: 쓰레기 줄이자,
1회용품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자.


감사의 제2순위는 부모님이시다.
어버이 노래: 눈물이 난다.
어버이: 아낌없이 주시는 분.
온갖 희생을 다 하시는 분.
양주동 박사의 어버이 노래: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고생하시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버이의 사랑은 가히 없어라.

이렇게 하느님과 교류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난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위해서 효도해야지.
전화라도 자주 해야지.
가끔 찾아가서 위로해 드려야지.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삶을 나누어야지.
얼마나 쓸쓸하시겠나?

우리 부모님, 오래 오래 사세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네요.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아니 계시다면,
이런 생각이 나겠지.

나도 좋은 부모가 되어야지.
우리 부모님은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지.

우리 자식들에게 잘 해 주어야지.
하느님,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얼른 아버지께 가게 해주세요.

하느님의 영원한 복락을 맛보게 해주세요.
하느님의 자비를 믿습니다.
하느님, 부탁합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살아있는 기도요,
참다운 기도요, 참다운 교류이다.
누구든지 이런 기도를 바칠 것을 권한다.

감사의 제3순위는 스승님, 친구이다.
인생의 참 스승: 별로 많지 않다.
참 스승을 꼽으라면 마땅히 떠오르는 분이 없다.
초등학교 선생님, 중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
대학교 선생님을 떠올리지만,
못된 선생님만 떠오르기도 한다.
그땐 왜 그렇게 때렸는지, 잘 되라고 때렸겠지
생각하다가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 제 성질 더러워서 때린 것이다.
학교가 마치 군대 같았다. 학생들이 많다보니
통제할 길이 때리는 것이 상책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동물 다루듯이 때렸다.
참 많이도 맞았다.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넘어왔는지 기적 같다.


학교 선생님: 옛날에는 참 무서운 존재,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요즘 선생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뭐 자승자박이요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지 학교에 가게 되면
학부모들이 돈 봉투를 들고 갔다.
선생님 고생 하시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봉투가 있으니까, 비리가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랑의 매를 들었어도 아무 문제가 안 되었는데,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 난다.
학부모가 선생님보다 더 위에 있다.
예전에는 학부모가 못 배워서 선생님의 권위가 높았는데,
요즘은 선생님이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부모가 가난해서 선생님의 권위가 높았는데,

요즘은 선생님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 것인지, 하여간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니까 선생이라는 것이 권위를 살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선생이라는 그릇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 권위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다 스승이다. 세 살 어린이도,
여든 할아버지도 다 스승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스승이 지천이다.
지천에 깔려있다. 돌맹이가 지천에 깔려있듯이
우리의 스승도 지천에 깔려있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걸 알아차릴 눈이 필요하다.
내 이웃, 내가 만나는 모든 분들이 우리의 스승이다.
그걸 알아보고 감사하자.


이제 친구에 대해서 알아보자.
친구, 참으로 고마운 존재.
상부상조하는 고마운 동반자이다.
친구가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놀이를 하더라도 친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골프를 치더라도 친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나이가 들면 친구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말동무를 해주고,
어려운 인생살이 살갑게 나눌 수 있는 친구,
대단히 중요하다.

외톨이가 되면 쓸쓸하고 우울하게 된다.
친구를 잘 새겨야 하고,
친구를 둔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을 다짐하자.


감사의 제4순위는 이웃이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만든 사람, 법을 만든 사람,
공무원들,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 종교계, 문화계,
정치계, 사회계, 출판계, 법조계, 문화계, 예술계,
의료계 등의 모든 사람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느님이나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이 기도다.
고맙다고 뭐 외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음미하고 관상하고
관조하고 응시하고 감동하고 감탄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쉽게 비판하거나 욕을 하지 않게 된다.
감사를 하다보면 마음 저 밑바닥에서 뭔가가 올라온다.
그걸 의식하자. 하느님의 음성, 말씀이시다.



되풀이기도(반복기도):

하느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하느님, 미안합니다.




봉헌의 기도:

자신을 하느님께 모두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생명을 도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 똑똑한 머리를 주신 하느님께 지성,
생각을 모두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 따뜻한 가슴을 주신 하느님께 감성,
심성을 모두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 굳건한 팔, 다리를 주신 하느님께 힘,
목숨을 모두 바치는 것이다.

모두 바치면서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가 도움을 준다. 그분은 이렇게 봉헌하였다.

봉헌의 기도

주님, 저를 받아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제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제가 모두 바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제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 이제 그 모든 것을 도로 바쳐드립니다.
받아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의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저는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다만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만족하옵니다.

샤를 드 푸코가 도움을 준다.

의탁의 기도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시던지 저는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느님께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제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화살기도: 짧게 화살을 쏘듯이 하느님께 쏘아 올리는 것이다.
표현이 재미있다. 화살기도.
시위대에서 화살이 날아가면 얼마나 빨리 가는가?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있다. 예쁜 지향을 가지고 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감사의 지향을 가지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좋으십니다.
하느님, 멋쟁이이십니다.
하느님, 최고입니다.
또 예를 들면, 어떤 청원의 지향을 가지고,
하느님, 시험 보는 누구에게 위로해 주세요.
하느님, 아파서 병원 가는 누구에게 힘을 주세요.
하느님, 취직 시험 보는 누구를 도와주세요.
하느님, 김장 하는 누구를 도와주세요.
하느님, 본당 레지오 성지순례 잘 가게 해주세요.
하느님, 얼른 도와주소서.


삼종기도: 아침 점심 저녁에 종을 쳤다.

옛날에 종을 치는 것은 시간을 알리는 것이다. 그때 기도를 바친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성모송)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송)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나이다. (성모송)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우리 마음에 허락하소서.우리 주 그리스도의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2단계라고 했다.


기도의 3단계: 마음의 기도

이 단계는 우리의 감정을 싣는 것이다.
희노애락 감정이 있다.
감정이입의 단계이다. 이심전심의 단계이다.
하느님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마음으로 응답한다.
아버지...부르면서, 감정이 흘러서 눈물이 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예수님, 수난을 생각하면서 저절로 감정이 이입되어
엉엉 울면서 기도한다. 이런 사람 많다.
누가 있으면 안 되니까, 산으로 가서 엉엉 운다.
통곡의 기도를 바친다.

프: 산에 가서 펑펑 울었다.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울려서
그냥 다닐 수가 없었다.
항상 눈물을 흘리면서 살았다.
이런 기도를 일컬어서 정감의 기도, 감정의 기도라고 한다.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 기쁨이 샘솟아 오를 땐 어떻게 진정이 안 된다.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고, 갑자가 마음이 동하면 깽깽이를
들고서 악기로 사용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얼굴이 환하게
밝아오면서 기도한다.

이렇게 마음을 실어서 하는 기도를 정감의 기도라 한다.
여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해서
이 기도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이 기도를 해야 속이 후련하다.
성령기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기도 하는 사람 많다.
예수님을 진짜 마음을 실어서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상황과 똑같이 느껴보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밤잠을 못자고 같이 고생한다.
예수님이 수난하신 것을 생각하면 밤잠을 못자고 같이 수난한다.
오호통재로다.


조심할 일:

우리의 마음, 감정은 기복이 심하다.
좋은 감정도 있지만, 나쁜 감정도 많다.
나쁜 감정에는 삐지는 것, 미워하는 것, 시기하는 것,
질투하는 것, 증오하는 것, 나쁘게 생각하는 것,
적개심을 품는 것, 원망하는 것.....
감정기도, 정감기도에서 이런 나쁜 감정을
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게, 만나는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내리고
비우고 정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숙제다.
감정을 가지되, 나쁜 감정을 조절하고 없애는 것.


정리: 정감기도:

마음으로 하는 기도. 뜨거운 마음으로. 감정을 실어서 한다.
혼자서 하는 것이 좋다. 주위의 분위기가 좋으면,

예: 달밤에, 산위에서, 산속에서, 별을 바라보면서,
호젓한 길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맑은 창공을 쳐다보면서,
운전하면서, 바닷가를 거닐면서, 꽃들을 바라보면서,
산보를 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던지, 속삭이던지,
눈물을 흘리던지, 한숨을 쉬어가면서, 가슴을 쳐가면서,
울면서, 웃으면서, 껑충껑충 뛰면서 기도한다.

감정을 싣는 것이 중요하다.
한참을 울면 뭔가 응어리가 뚫린다.
기쁨에 겨우면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러댄다.


기도의 4단계: 정신의 기도

정신을 집중하는 단계이다.
어떤 주제에 정신을 집중하는 기도를 묵상기도라 한다.
근데, 정신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고요해야 하고, 수련해야 한다.
단 시간 안에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꾸준히 1년을 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다.
근데, 이 과정을 거쳐서 이 기도를 터득한
사람은 홀로 서는 사람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홀로 교류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 집중한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집중한다.
서양 사람들은 적극적인 방법,
긍정적인 방법으로 묵상을 한다.
예를 들면, 한 주제에 집중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기에 집중한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서 가득 채운다고나 할까?
동양 사람들은 부정적인 방법, 소극적인 방법으로 묵상을 한다.

즉 집중하지 않고, 잡생각을 하나씩 비우려고 한다.
불순물을 제거한다고나 할까?
버리고 비워서 맑게 하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은 이런 방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좋아하고,
집중하기 보다는 비움을 좋아한다.
텅 빔을 좋아한다.


또 맑고 순수한 생각을 하고,
단순한 생각으로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는 기도를 관상기도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다.”고 했다.

맑고 순수한 정신,
순일한 정신,
단순한 정신,
일념의 정신으로 하느님을 현재화시키는 것,

하느님을 언제 어디서나 의식하는 일...
하느님을 앉으나 서나 의식하는 일...
하느님을 오며 가며 의식하는 일...
하느님을 밤이나 낮이나 의식하는 일...
하느님을 사나 죽으나 의식하는 일...
하느님을 늘, 매양, 항상 지금 여기서 의식하는 일...
이것이 관상기도이다.


이런 기도방법을 터득한 사람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그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현존하여 계시니,
항상 교류하는 것이다.


-호흡기도:

호흡을 할 때마다 뭔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성령을 의식하는 것이다.
들숨: 성령께서 오신다.
날숨: 나쁜 것들을 내뱉는다. 탐욕, 이기심, 교만, 분노 등.
조용히 숨을 지켜본다, 응시한다, 관조한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깊게 쉬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 관조할 수도 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조용히 관찰한다. 성찰한다. 반성한다.
성서의 어떤 주제를 떠올리면서 머물 수 있다.
예: 중풍병자의 믿음, 나환자의 감사행위, 예수님의 여러 말씀들...


-비움의 기도:

약간 불교적인 느낌이 든다.
정신에 들어있는 일체의 잡념을 비우는 것이다.
비우면 정신이 통일되고, 성령이 들어오신다.
모든 지적인 활동을 중지하고,
마음을 무심으로 놓으면서 비어나간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성령이 꽉 차 오른다.
전율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으로 족하다.
공상, 망상, 잡념을 효과적으로 몰아내어야
성령이 들어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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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묵상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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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죄를 짓지 마라” l 이수철 신부님2007.03.2507.03.27조회 32[강론] 자신에게 돌을 던져라[최종현신부님]07.03.27조회 32[강론] 사순 특강 1... 인생의 운명 [박장원 신부님] 2007.03.2507.03.27조회 34[강론] 그대의 이름은[류해욱신부님]07.03.27조회 34[강론] 나는 용서 받은 죄인[박영봉신부님]07.03.27조회 32[강론] 발씻김[류해욱신부님]07.03.27조회 33[강론]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문호영신부님] 2007.03.2507.03.27조회 32[강론] 영적인생[이인주신부님]07.03.27조회 322007.03.25 /[묵상] 간음하다 잡힌 여자[유광수신부님]07.03.27조회 32[강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한다[서공석신부님] 2007.03.2507.03.27조회 32[강론] 새로운 탈출[백성환신부님]07.03.27조회 322007.03.25 /07.03.27조회 32[강론]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유영봉신부님] 2007.03.2507.03.27조회 32[강론] 용서하시는 예수님[이재회신부님]07.03.27조회 322007.03.25 /[강론] 용서와 자비를 통해 주시는 새로움[조욱현 신부님]07.03.27조회 30[강론] '간음하다 잡힌 여자' ㅣ유광수신부님 / 2007.03.2507.03.27조회 31예수님 없었던 것으로 하세요.07.03.27조회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