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이름은
- 요한 8,2-11에 대한 단상
내 마음은 그대를 향해
불꽃처럼 타오르는데
그대
왜 내게 오지 않는가?
오라 나에게로.
그대의 방황이 이토록
가슴 저미게 아파 오는데
그대
왜 고요히 서 있는가?
오라 내 가슴으로.
바람 숭숭 난
그대의 가슴을 안아줄 사람
하나 없는데
그대 왜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가?
오라 내 마음 안으로.
눈물 가득한 그대
찢어진 그대의 가슴
추스를 수도 없는 그대의 마음을 바라보며
슬픔이 차 오르는데
기회를 놓칠세라 그대를 끌고 와
내가 가르친 사랑과
모세의 율법을 사이에 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사람들의 마음
그대가 당하는 수치심은
안중에도 없는
돌처럼 굳은 마음을 보며
분노가 아닌 연민을 느끼네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는
그대를 향한 그들의 고발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오고야 말 부메랑
그대들 가운데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들어라
생각을 스치는 바람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하나둘씩 떠나가는 사람들
햇살은 눈부시게 밝은데
홀로 서 있는 그대
그대를 단죄하던 자들은 아무도 없는가?
땅바닥에 굽혀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나의 외로운 마음을 그대 알고 있는가?
오라 그대여
그대에게 내 마음을 주나니
내 마음을 지니고
그대여 가라
사순 제 5주일. 부활을 2주 남겨놓고 오늘 듣는 말씀들의 주제는 희망입니다. 희망은 과거에 매여 있지 않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요. 제 2 이사야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주님의 희망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회한에 머물지 말고 내일을 향해 쏴라는 격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서 교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면서 격려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지난 날 그가 바리사이로서 지니고 있던 모든 영예를 잃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희망, 그분의 부활의 힘을 알고 그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복음에서는 당시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이제 새로운 희망으로 살게 되리라는 용서와 위로의 말씀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마음, 사랑과 외로운 마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 그 자체였지요. 그런데 사랑이 많으면 외로움도 그만큼 큰가봅니다.
오늘 복음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우리도 희망으로 나아가기로 해요.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청하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장면을 떠올려 봐요. 성전 뜰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늘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며 사랑과 용서를 말씀하셨지요.
그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하나를 데리고 옵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겁에 질린 여인 하나를 끌고 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현장에서 잡혀 왔으니 여인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거의 반나신으로 떨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여인의 수치와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그분을 고발할 더없이 좋은 구실을 찾은 것이지요. 만약 예수께서 돌로 치라고 하면 당신이 지금까지 행한 사랑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한낱 말뿐인 것이 되고, 그분은 창녀와 세리 등 죄인들의 친구로서의 모습을 잃게 됩니다. 반대로 그분이 돌로 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 모세 법을 깨는 것이고, 그분은 당시 중죄 중 하나였던 간음죄도 허용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몸을 구부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인 슬픔에 잠긴 예수님. 참으로 외로운 한 인간 예수의 모습에서 사랑의 마음, 연민의 마음을 느껴보세요. 그분의 마음은 이미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끌려 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여인에게 가 계십니다. 사람들이 대답을 재촉하자 그때서야 예수님은 고개를 드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지요. 그들의 교묘한 올가미를 피하시는 지혜로운 이 말씀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분은 다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 많은 여인을 구하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몸을 굽히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오래 머무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들이 스쳐갔을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때로 목소리를 높여서 누구를 단죄하지는 않는지요? 그 사람은 너무도 분명한 죄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 사람도 죄를 짓는 것을 내가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우리도 속으로 여인에게 죄를 묻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몸을 굽히신 그 모습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연민 가득한 예수님의 외로운 모습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께서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그분은 시간을 끌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것이에요.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면 다른 사람에게 돌을 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을 움직여 한 여인을 구하십니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시끄럽던 성전 뜰이 조용해졌을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이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여인이 느꼈을 마음도 헤아려보시고요.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으시면서 가슴을 울리는 느낌이 있다면 그 느낌 안에서 오래 머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주시는 위로의 말씀으로 느껴지시면 그 위로 안에 머무십시오.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처럼 여인에게 다가가서 위로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가만히 여인의 어깨를 안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여인은 새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거룩함을 낳지요. 그 거룩함은 누구를 단죄하는 완고함이 아니라, 돌 같이 굳은 마음도 살려내는 부드러운 힘이에요. 다른 이가 궁지에 빠지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눈을 쳐드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럴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기다림입니다. 외로운 여인을 자신의 외로움으로 치유해주시고 안아주시는 너그러움이고, 사랑으로 빛나는 새로운 삶으로의 파견이에요.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빛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며, 더 많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분의 마음을 청하기로 해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오라 그대여 / 그대에게 내 마음을 주나니 / 내 마음을 지니고 / 그대여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