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올-
주님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로 인해 안식일 논쟁에 휘말리게 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셨으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두려 한다고 크게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것이며, 자신도 하느님과 같이 존경받아 마땅한 신적 존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주장을 증거해 주는 세례자 요한의 증거와, 당신이 스스로 행하신 기적들을 그 증거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복음을 보면 주님에 대해 증거해 주는 또 다른 증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 스스로 주님임을 알고 환영하여 증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무나 완악하여 주님의 주장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께서 스스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5가지 증거들을 제시하셨습니다. 오늘복음인 요한 5,30-47을 보면 주님은 자신에 대한 5가지 증거, 즉 [아버지(32,37), 세례자 요한(33), 기적들(36), 성서(39), 모세(46)]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증거들은 그것을 듣는 청중들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은 주님이 제시하는 증거들을 보고 주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I. 심판과 증거
어제 묵상한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고 있다고 말씀이시며, 또한 주님께서 하시는 심판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고 공정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항상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끔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에는 피고가 아무리 혼자 옳다고 주장해도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 경우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다른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율법에서도(신명 19,15) 한 사람의 증인으로는 재판을 열지 못하고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만 재판을 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으니 그의 증언은 분명히 참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너 주님은 이제 당신의 신성을 지지해 주는 5가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증거: 세례자 요한
주님께서 가장 먼저 제시한 증인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서 그에게 질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며, 자기 뒤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바로 이 분이 자신이 말했던 그 분이었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거니시는 것을 보고, "세상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그의 증거를 듣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주님을 따라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신성에 대해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사람의 증거에 큰 마음을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증거보다는 하느님의 증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의 주님에 대한 증거는 당시 상황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하나의 증거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혹시 유다인들 중에서 소수라도 그가 전하는 증거를 믿고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 중에서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서 주님을 따른 사람들도 있었음을 성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세례자 요한의 증거를 출발점으로 삼아 복음을 선교하는 생활로 들어가십니다. 주님은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서 "세상을 비취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세례자 요한은 어두운 세상에 진리이신 주님을 비추어 주는 등불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의 증거에 열광하여 짐시 그 증거를 받아들였으나 결국에는 그 증거를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2. 둘째 증거: 주님께서 하시는 일
주님에게는 두번째 증거로 세례자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세례자 요한의 증거는 위대한 증거였으며, 그 증거는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례자 요한의 증거를 궁극적인 권위로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의 증거보다 하느님의 증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두번째 증거를 설명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성취하라고 맡겨주신 일인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증거가 된다."... 이 증거 내용에서 주님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기적과 사역)"이 자신의 신성을 증거해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사화들은 하느님께서 주님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증거해 주는 강력한 증거들임에 들림없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주님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행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들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강력하게 증거해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도 주님께서 38년이나 된 병자를 말씀 한 마디로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유다인들이 솔직한 마음으로 이러한 사건들을 대했었다면,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바라보지 않았으므로 주님은 유다인들의 완악한 마음을 단죄하셨습니다.
3. 아버지의 증거
주님은 당신 자신에 대한 증거(증인)로 제시한 세번째 증인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오늘복음에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전부터 항상 주님에 대해서 증거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으며, 하느님의 형상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모세와 그와 함께 시나이 산에 있었던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애 33,11). 특히 모세의 경우에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과 1:1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또 기록으로도 남겼습니다. 또한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진정으로 모세의 제자였다면 그들 역시 주님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음성과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불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었다면 주님 안에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복음에서 보면, 유다인들에게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들어 있지 않다."고 견책하셨습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주님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지 못했으며, 그들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없었다(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바로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당시 그들의 불신앙은 이미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와같이 당시 유다인들은 자기들만의 집단적 애고이즘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4. 성서의 증거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이 제시한 네번째 증거는 "성서"이었습니다. 주님은 유다인들이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유다인들은 진리와 영생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고 묵상했습니다. 주님은 이 성서가 바로 당신 자신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만일 유다인들이 진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묵상했다면, 분면히 성서를 통해서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를 읽거나 연구할 때에 문자에 매여있었고 미신적인 자세를 가지고 성서를 읽었기에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핵심 내용인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 오경과 시편, 그리고 역사서와 예언서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예고해 주고 있었기에 누구든지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대했다면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성서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는 커녕 오히려 주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님은 암탉이 그 병아리를 날개에 품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품으려고 여러 번 그 백성들을 모으셨습니다(루가 13,34).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이 제공하는 안식의 그늘로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5. 모세의 증거
유다인들은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모세5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모세의 율법을 좆는 제자들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말을 할 때마다 모세를 인용하였고, 자신들이 모세의 추종자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고소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신뢰했던 모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현재형을 사용해서 지금 모세가 검사가 되어 그들을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말씀의 이 직설적인 말씀에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그들이 평생동안 소망을 둔 모세에게 고발을 당할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주님이 싫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가 기록한 성서를 잘못 해석했고, 또한 모세의 글을 잘못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의 글을 신중하게 읽었다면 그들은 주님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뒤에 오실 "한 예언자"가 오실 것이라고 분명히 예고했습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이 이러한 모세의 글을 알고 믿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또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모세가 전한 근본 사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죄를 범했으므로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모세로 부터 고소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II. 오늘복음의 묵상 마무리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주님께서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동동되게 여긴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당신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것이며, 당신 역시 하느님과 같은 존경을 받아야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주님은 이를 증거해주는 다섯가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복음에서 그 다섯가지 증거, 즉 세례자 요한의 증거와, 주님이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아버지의 증거와 성서의 증거,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의 증거까지 모두 묵상했습니다.
이러한 완벽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불신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결심을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을 신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식인 정도로 보면서, 자기보다 더 많이 아는 지식인(인간, 인성)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굳이 증거할 필요조차 없으시면서도 굳이 다섯가지의 증거를 내세우며 말씀하신 뜻은, 당시 유다인들의 잘못된 신앙심을 고쳐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좀 더 깊이 묵상해 보면 당시 유다인들의 잘못된 신앙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선량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증거로서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신 내용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나 찬양 받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의 관심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찬사를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주님은 유다인들의 마음 안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느님이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 형식을 중시했으며, 문자에 매달린 종교 생활에만 매우 열심을 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속에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보고,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미신, 불신, 무지의 결과는 하느님의 아들, 즉 메시아를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결론입니다.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당신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보다 그들 자신의 영광을 더 추구하는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만일 당신께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왔다면, 예를들어 왕이나, 유명한 랍비나 선생, 또는 기타 다른 유명한 권위자의 이름을 빌어 그들에게 나타났었다면, 그들은 주님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의 권위보다 세상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당시 유다인과 그리 크게 다를바가 없습니다. 울들도 우리의 생각과 행위를 지지해 주는 세상의 권위를 더 귀중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느님의 뜻에 맞추려 하지 않고, 우리들의 뜻에 맞는 종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과 같이 지금의 우리들도 우리가 만든 여러 가지 기준들로 인해 오히려 성서의 정신을 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모든 예언자들을 자기들 집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는 하느님의 종교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만든 종교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보다 자기 개인이나 집단의 영광을 더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내의 이단들에게 엄숙한 경고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하느님의 증거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이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반드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