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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전 목요일> 주님을 알아보는 비법
제1독서 : 1요한 3,7-10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화두로 삼아 묵상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셨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누군가를 집에 초대할 때는 뭔가 보여줄 만한 것이 있을 때입니다. 집이 넓다든지, 잘 꾸며놓았다든지, 아니면 음식을 잘 마련하였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여우도 집이 있고 참새도 둥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께는 이렇다할 거처가 없었지요. 그렇다고 좋은 가구가 있어서 자랑을 하겠습니까, 번쩍이는 차가 있겠습니까? 음식을 잘 하셨겠습니까? 옛말에 ‘홀아비는 이가 서말’이라고 했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 무슨 보여줄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한 순간에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무엇을 보았기에 이렇게 순식간에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한 10년 전 경기도 법원리 근처에 있는 봉쇄 수도회에서 한 주간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24시간 침묵으로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회였습니다. 이 수도회는 미국에 본원이 있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원을 만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24시간 침묵하며 기도하고 노동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수면은 여덟 시, 아홉 시에 하고 새벽 두시 반, 세시 경쯤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우리와는 생활 패턴이 다르지요. 새벽 시간을 오롯이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 때 한 주간을 지내면서 얻은 기억 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아주 뚜렷한 기억입니다. 바로 어느 외국인 수사 한 분입니다. 그 분은 그 곳 책임자도 아니고 그저 그냥 기도하고 노동하는 여러 수사들 중 한 분으로 그렇다고 제가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닙니다. 한 주 동안 한 마디 말도 나누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도 시간이 되어 한 십여 명 모여서 기도하면 그 분이 유독 빛이 나는 것입니다. 또 노동하는 시간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을 해도 시선은 꼭 그분에게 가서 멈춰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안드레아가 바로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예수님은 수도원의 수사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한 순간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얼른 자기 형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소개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단번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예수님 또한 즉시 베드로를 알아보고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요한1,42) 하시며 제자로 받아들이시지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확신과 기쁨으로 모든 것을 봉헌하고 투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와서 보아라.”(요한1,39)고 말씀하셨고 또 두 제자는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묻게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재미있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계속 함께 다녔고 같은 성당에서 신앙 생활도 꼭 같이 했습니다.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지요. 한 사람은 순탄한 인생 길을 걸었습니다. 가정도 평탄하고 사업도 잘 되고 신앙도 성숙되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점점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반면에 또 한 친구는 그렇게 순탄치가 못했습니다. 가정도, 사업도, 그리고 신앙도 별반 성장하지 못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성공한 친구는 모두가 좋아할 정도로 매사가 긍정적이었습니다. 매사에 희망적이고 겸손했지요. 그에 비해 다른 친구는 눈에 띄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으며 교만했습니다. 성당에 나와서 강론을 들어도 부정적인 성향이 강해서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이고 함께 하려고 애를 쓴 친구와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보아라.”(요한1,39)고 초대하셨을 때 와서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아주 간단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순응하는 사람은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순응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은 봐도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안드레아나 베드로만이 아니라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
<주님 공현 전 목/주님을 알아보는 비법- 이기양 신부님
2007. 1. 4. 오후 12: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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