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자 요한은 많은 군중 속에 함께 있던 예수님을 자신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일, 즉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는 일에 충실하고 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알아 뵐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할 때 그 일이 비록 하찮은 일일지라도 그 일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사람, 즉 하느님의 영광을 볼 줄 알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유명한 은수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여행 중 어느 수도원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그곳 수도자들이 은수자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청하자 그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수도원에는 하느님을 닮은 수도자가 한 분 계십니다.” 그러자 그곳 수도자들은 놀라며 누굴까 하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마음속으로 ‘혹시 나 아닐까?’, ‘혹시 원장 수사인가?’, ‘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하며 모두들 궁금해 했지만 은수자는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수도자들이 은수자에게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들이 하도 조르자 은수자는 “여러분 가운데 하느님을 닮은 사람은 주방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던 수사입니다.”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설마! 그럴리가!’ 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어서 부엌 아궁이에 불이나 지피는 그가 하느님을 닮을 사람이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은수자는 다른 수도자들에게 “그는 비록 부엌데기 수사이지만 이미 하느님의 침묵과 겸손을 보았습니다.”하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이후 수도원의 모든 수사들이 주방의 불 당번이던 수사를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엌데기 수사는 그 시선과 관심을 견디어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소박한 일을 침묵 중에 더 이상 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도 하찮은 부엌데기 수사의 침묵과 겸손에 대해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았던 그는 이미 하느님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 안에 맡겨진 삶을 통해 하느님을 배우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똑같은 사물과 자연환경을 보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색채의 조화를 바라보고, 음악 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을 들으며, 시인은 그 안에 펼쳐진 말을 하나하나 뽑아내 노래를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마음이 울렁거립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일이 어떤 것이든 그 일에 충실하며 깊이 들어가 머물기만 한다면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고, 하느님을 뜻을 볼 수 있고 닮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올 한 해에는 하느님의 성령이 다른 이의 마음에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주셨던 바대로 자신의 삶에서 충실하다면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성령이 사람들 마음 안에서 숨 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 자신도 하느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의 사랑이 타오르는 것을 보게 하소서. 아멘.” |
나는 성령께서 저 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 이회진 신부님 /2007.01.03
2007. 1. 3. 오후 10: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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