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1,29-34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 | |
미사 때마다 영성체 직전에 바치는 신앙고백, 성체를 향해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고백합니다. 본당에서 청소년 미사 때는 이를 노래와 율동으로 바치는데, 그러다 보면 그 의미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하고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서 어린양을 아침저녁으로 한 마리씩 봉헌하였습니다. 안식일에는 두 배로 봉헌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어린양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없애는 희생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옛날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온 때에도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이를 기념합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어린양, 죄를 없애는 어린양을 매일, 매주, 또는 해마다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 봉헌은 우리 죄를 없애는 데는 부족하였습니다. 완전한 봉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서(7,27. 9,12)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는 단 한번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을 영원한 죄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셨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의 목숨까지 우리 죄의 대가로 내어 놓으신 희생으로 우리 죄는 이제 용서받았고, 하느님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값비싼 희생을 통해 죄로부터 자유인이 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본받아 나 자신을 희생 제물로, 세상을 위한 희생 제물로 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내가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의 몫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성체로 오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