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3주간 목요일 |
2006-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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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
믿으신 분
위기와 상실감의 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마리아처럼.
마리아께서 처음 수태고지를 받고 아기를 낳기까지 그분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다. 어떤 육체적 접촉도 없이 자기 몸에 생명이 잉태되는 신비와 마주하면서 마리아께서도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듯이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도 어쩌면 이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내가 애기를 벤 걸까?" "이게 뭔가?"
하느님의 현존, 성령의 함께하심도 잠시뿐, 늘 똑 같은 일상현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마리아께서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 정말 말도 안되는 이 처녀임신은 임신초기 성모님께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이다. 마치 어둔 터널을 지나가는 듯, 빨리 터널을 벗어나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는 밝은 곳으로 빠져나가고 싶은 충동들을 문득 문득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시기에 엘리사벳이 들려준 말씀은 처녀 마리아께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를 찾아주시다니!" "태중의 아기도 당신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지는 못한다. 아니 생애 거의 대부분을 하느님의 부재감 속에서 살아간다. 마리아께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태고지, 엘리사벳 방문, 출산시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의 방문, 이집트로의 피난 등등 생애 주요한 계기외에는 마리아께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해 답답한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거나, 비참한 몰골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모든 것이 허무일 수도 있다는 엄청난 상실감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분의 현존을 느끼기 위해, 그분의 확신에 찬 음성을 듣기 위해 희망의 끈, 믿음의 끈을 붙잡았을 것이다.
하느님께 희망을 둔다는 건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반대로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냥 믿기만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신이란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커다란 의구심과 늘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말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 말에 용기를 얻고 마음에 희망이 솟구친다면, 우리도 믿어서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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