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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 3 주일. 2006. 12. 17. 토평동.
스바 3, 14-18. 필리 4, 4-7. 루카 3, 10-18.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강론하고 있다고 여기며 들으면 됩니다. 대림 3주, 자선 주일에 과연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세례자 요한은 가진 것을 나누고, 다른 이들의 것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더 요구하지 말며,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떤 영웅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기본에 충실하자고 말하는 것이죠. 살아야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놓치거나 하지 않는 삶을 처음으로 돌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군중)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세리)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자신의 봉급으로 만족하라.”(군인)(루카 3, 11-14)
특별한 용단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본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 초월적인 삶을 살면서도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개를 부르짖던 요한은 회개란 사회 속에서 여러 사람들 간의 관계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네가 회개한다고 한다면 다른 이와 맺고 있는 관계의 삶에서 실천하라’는 것이죠.
오늘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세리와 군인들에게 답변하는 요한의 가르침을 들여다봅니다.
당시의 세금 제도는 징세권을 경매에 붙여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세관장)에게 주었고, 그는 이 징세권을 이용해서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들을 고용해서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며 이익을 남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당시 조세제도는 세리들을 뇌물과 부패의 구조 속에 살게 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직한 세리들이 겪게 될 상황은 오늘에 비추어서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야 사업이 잘 이루어지는 구조를 맛본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세리들이 처한 현실에 적응하는 모습이나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세리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인들은 부패한 구조 속에서 세리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봉급 이외에 부당한 이익(과외 돈)을 취하기도 하고, 힘을 이용해서 강탈, 갈취를 일삼기도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현실에 묻히지 말고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라는 것이고,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기본으로 살아야 하는 삶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변화의 몸짓,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보여지는 모습 속에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오늘 복음 전의 상황이 생략되었지만)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줄을 서 세례를 받으려는 이들에게 “독사의 족속들아”(루카 3, 7)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은총이란 잘 살아보려 회개하는 이들 사이에 은근 슬쩍 껴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나의 변화된 삶은 주님을 기다리는 행복에서 비롯된 적극적, 긍정적 삶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주님을 믿기에, 주님을 기다리기에 ‘기꺼이’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삶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타인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참 각박해졌다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를 조금 더 감추고 지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나의 가족을 위해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도무지 나 혼자서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다른 이들도 배려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내 안의 ‘너그러운 마음을 끄집어내라’(필리 4, 5)고 가르칩니다. 내 안에는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고운 심성이 있습니다. 살다보니 세상과 경쟁하느라 그것이 가려지고 감추며 살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너그러운 마음, 사랑의 마음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베푸는 삶을 일부러 드러내면서 뻐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사랑의 삶이 향기로 피어나게 하라는 것이죠.
내가 그동안 내 안에서 끄집어낸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분노, 복수, 다툼, 비난, 모욕, 험담, 나태, 싸움, 빈정거림 등등 이런 류의 것은 아니었습니까? 이런 것이 나를 평화로이 만들었을 리 만무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라”(필리 4, 4)고, 그것도 강조해서 거듭 말하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너그러운 마음, 자비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오늘 내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의 너그러운 마음은 무엇을 내어줄지, 차분히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듯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 10.12.14)라고 주님께 묻고, 자기 자신에게도 물어야 하겠습니다. .......... 부스러기: 오늘 9시 미사는 교사의 강론이었는데, 교사가 자선 주일이라며 예로 든 어린이 성가가 맘에 와 닿아서 올립니다.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느님 그 향기 받으시듯 이 예물 보셔요. 먹고 싶어 죽겠는 걸 사먹지 않고 이 날을 기다리며 모았댔어요.
멜키세덱 정성을 받으신 하느님 그 마음 받으시듯 이 예물 보셔요. 반짝반짝 새 동전을 꽁꽁 가지고 오늘을 손꼽으며 기다렸어요.
먹고 싶어 죽겠는 걸 사먹지 않고 주님께 드릴 기쁨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 주님께 드리려고 반짝이는 새 동전을 가지고 주님 만날 날을 손꼽는 마음, 이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주님께 봉헌하듯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참으며 자선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
다해 대림 제 3 주일./‘너그러운 마음을 끄집어내라’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7. 오후 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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