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 거룩한 성체

2005. 11. 11. 오후 3: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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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 거룩한 성체

 




 

 

  모테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  =

'귀하신 몸' Motet-Ave verum corpus K.618 


1791년, 35세 때의 작품으로,

유명한 레퀴엠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비참하게 죽은 천재의 마지막 기도를 담은 종교 합창곡이다.


합창이 그리는 화성의 아름다움과 높고 낮게 기복하는 선율의 변화는,

듣는 이에게 신에 대한 강한 기도의 마음을불러 일으킨다.

성자에게 고개를 숙여 무릎을 꿇고 마음으로부터의 기도를 바치는 곡이다.



=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5세,6세 때부터 이미 모차르트는 피아노곡을 작곡했고

7세 때는 바이올린 소나타 몇 곡, 8세 때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가 8세 때 작곡한 첫 번째 교향곡에는 현재 K-16이라는 번호가 붙어 있다.

K이란 쾨헬 번호의 약기로서, 쾨헬은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이자

모차르트 연구가였던 루드비히 퀴헬을 가리킨다.

그는 모차르트의 전 작품을 정리해 작품번호를 매겼다.


13세부터 15세 봄까지는 대망의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당시 유럽 음악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명실공히 유럽 제 1의 음악가로서 성장해 갔다.


프랑스 파리에서 익힌 우아한 로코코 스타일의 선율미와

이탈리아에서 체험한 기술적인 구성력으로 모차르트는

매일매일 엄청난 숫자의 작품을 써냈다.


그의 작품의 섬세하고 장식적인 아름다움은

그 무렵에 습득한 특징이라고 볼 수있다.

다시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15세의 모차르트는

마침 그 곳을 찾아온 '교향곡의 아버지'하이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한편 독창적인 악상이나 기법도 더욱 무르익어가

바야흐로 대가의 면모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고용주였던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이탈리아 음악가들에 심취해 모차르트의 음악을 과소평가했으므로

그는 어머니와 더불어 다시 뮌헨, 만하임 등을 여행했다.


Noli Me Tangere


모차르트의 이른 죽음이 라이벌 살리에리의

독살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설도 이제까지 파다했지만

현재는 그 설을 부정하는 쪽이 더 우세하다.


1791년 여름, 잿빛 망토로 온몸을 휘감은

키 크고 깡마른 한 사내가 모차르트를 찾아왔다.

왠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사내는 죽은이에게 바치는

<진혼곡>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모차르트는 몹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면서도

비상한 정열을 기울여 그 곡을 작곡했으나 끝내 완성을 못 보고

그 해 12월 5일 생을 마감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말할 수없이 수려하며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을 노래한다.

즐거운 가락 속에도 한가닥 애수를 품고 있으니

문득 여성적으로 느껴지는가 하면,

돌연 전장에 나가는 기사인 양 결연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길지는 않았을 망정 그가 몸소 겪은 고난에 찬 인생의 기록이기라도 한 듯이....

그의 음악을 가리켜

명암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Corpus - Vienna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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