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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게도 저희 살레시오 회원 가운데, 순교성인을 직계 선조로 모신 형제가 있습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5대손이지요.
성인께서는 최양업 신부님 부친이기도 합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그 형제에게서 최경환 성인의 삶과 신앙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더 안정된 신앙생활을 위해 안양 수리산 자락에 삶의 기반을 잡으셨던 최경환 성인께서는
즉시 교우촌을 건설하십니다.
모범적 신앙생활을 통해 성인께서는 오래 가지 않아 모든 마을 사람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십니다.
평소 순교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성인이셨기에 언제든지 순교할
마음의 태세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영광스런 순교의 때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자상하게 '순교 교육'을 시키며 '그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한밤중에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결박을 당하면서도, 심한 구타 가운데서도 성인께서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잘들 오셨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들이 많으셨습니까?
저희는 오래 전부터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조금 쉬십시오. 곧 식사를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요기하시는 동안 저희는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성인께서는 교우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한 다음,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다 함께 기쁜 얼굴로 순교의 길을 떠납시다"며 교우들을 독려하셨습니다.
해 뜰 무렵 성인은 포졸들을 깨워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포졸들에게는 잘 다려진 새 옷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최경환 성인과 40여명이나 되는 교우들은 마치 잔칫집에 가듯이,
단체 소풍이라도 가듯이 그렇게 순교의 길을 떠났습니다.
관헌으로 끌려가는 동안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신작로로 몰려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교도들' '천주학쟁이'라고 욕하며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징그러운 동물이라도 바라보듯이 우리 교우들을 쳐다봤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함께 기도를 바치며, 함께 성가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갈바리아산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우리 순교성인들 신앙,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찌 보면 너무도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정녕 놀라운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무고한 죽음, 그 비참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가장 적극적 추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천국을 일찌감치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는 제게, 아직 제 자신조차도 극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제게, 우리 순교성인들의 생애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인 죽음 앞에서 우리 순교성인들처럼 그리도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러 나가셨습니다.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죽음 앞에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순교를 통해서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쩌면 자청한 죽음, 예정된 죽음, 계획된 죽음,
준비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평생 이 마지막 순간, 장엄하게 낙화할 순교의 순간을
꿈꿔왔던 것입니다. 그들 평생에 걸친 순교자적 생애는 휘광이 칼날 아래 활짝 피어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쩌면 한 점 티 없는 어린 양이셨던 예수님,
순결한 봉헌제물이셨던 예수님 삶을 판에 박은 듯이 빼닮았던 가장 고결한 죽음이었습니다.
평화신문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