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누구인가 / 박완서
사람 노릇의 근본을 설한 걸로 보면 유교로도 부족함이 없는 데
왜 그리스도를 따로 믿어야 됐는지,
종교(宗敎)는 문자 그대로 으뜸가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할 때
유교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신앙으로서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유교에는 고통 중에 기도하고 매달리고 의논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없다.
아무리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쓰는 도덕적인 인간이라도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매달리고 기도하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특히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했다.
내가 죽을 때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가족이나 친지가 죽어갈 때도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희망을 갖고 싶어한다.
안 죽게 해 달라고 매달릴 때도 절대자를 찾게 되지만,
마침내는 죽음의 손에 목숨을 내맡길 때도 이 세상에 내 뜻으로
온 것이 아니듯이 거두어가는 손길을 느끼고 그 손길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
죽을 때 우아하게 죽고 싶어서, 행복할 때 감사하고,
불행할 때 기도하고 싶어서,
자신의 존재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의지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유교적인 집안이라고 기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6.25때 북으로 끌려간 오빠의 생사를 모를 때 엄마는 새벽이고, 밤이고,
끼니때고 아무 데나 대고 빌고 또 빌었다.
부뚜막에 오빠의 밥그릇에다 밥을 담아놓고도 빌었고,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도 빌었고, 하늘 보고 북두칠성한테도 빌었다.
까치가 짖으면 고마워서 까치한테도 두 손을 모았고,
까마귀가 짖으면 까마귀한테 삿대질을 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분이 이성을 잃으니
미친 사람 같아서 집안 식구를 불안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엄마의 정성은 무위로 돌아갔다.
엄마는 그 후 절에 다니시면서 마음을 달래시다가,
말년에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셨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돌게 하는 게 아니라 바로잡아주는 것이고,
바로 잡는다는 건 중심을 잡아주는 일이 아닐까.
종교의 다름은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자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게 당연하고,
자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자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그는 누구인가-박완서
2007. 4. 26. 오후 9: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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