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2008. 4. 21. 오전 1:25:02

글자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새순이 돋아났습니다.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하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단풍잎 다섯 손이 나왔습니다.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벗꽃이 눈송이처럼 활짝 피었습니다.
죽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수양버들에 연두색 잎이 돋아나 축 늘러졌습니다.
 
어느새 봄이 되어 
죽었던 만물들이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예수님만 부활이 있는 줄 알았더니
세상 만물들도 부활이 있었습니다.
매년 일어나는 일들이
올해는 왜 새롭게 느껴지는 걸까요.
오십을 넘기려하는 세월의 무상함 때문일까요?
 
사년 전 친한 견진친구 하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또 친한 견친친구 하나가
겨우내 암과 투병하여 부활하는가 했더니 ....
 
청천벽력이라는 말 실감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에
놀란 가슴 새가슴 되어 불안하고 초조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원망하고 싶습니다.
 
법 없이도 살만큼
착하고 진실 되게 살던 친구였는데...
성령기도회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고 기쁘게 봉사하며
하느님 찬미하며 살던 친구였는데...
 
소화안된다하여 병원갔더니 암이라...
수술하여 겨우내 항암치료하며 좋아졌다하더니
어느새 재발되어
또다시 힘든 항암치료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예수님! 말해보세요.
성모님! 말해보세요.
봄이되어 만물이 살아나는 계절에
내 친구는 왜 살아나지 못합니까?
 
지하실에서 요꼬 공장하면서
먼지 풀풀 날리며 털실 뽑아
추우나 더우나 쉐터 짜서 납품하며 열심히 살던 친구였습니다.
 
남에게 피해 안주고 죄짓지 않고
아이 셋 키우며 시집식구 뒷바라지하며 열심히 살았던 친구였습니다.
 
이제 곧 좋은 집으로 이사하여
깨끗하고 편하게 살아보려고
아파트도 장만하여 몇일 후면 이사하려 했는데...
가을이면 서른 넘은 아들 장가들이려 했던 친구였는데...
말해보세요.
왜 이토록 고통스러워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서른셋 젊은나이에 예수님도
하느님 뜻에 따라 일찍 가셨지만
그래도 육신으로 다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부활할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죽음은 먼 곳 남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아픕니다.
 
엊그제는 성당 동생인 글라라의 남편 프란치스코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는데...
 
견진 친구 소피아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병실에 누워서
묵주 돌리며 아버지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고통 중에 있는걸 보니 
답답한 제 가슴을 움켜 잡아봅니다.
긴 한숨을 내쉬어 보지만 그래도 답답함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담긴 말은 생명력이 있다는데...
사랑이 담긴 말을 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어 준다는데...
생명이 다급한 친구에게 사랑이 담긴 말을 해 준다면
사랑의 신비를 맛 보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원천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사랑이 담긴 말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면....
예수님의 사랑이 제 입을 통하여 전해진다면...
삶의 갈망을 느끼는 친구에게
삶의 뿌리가 되살아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오늘 막상 친구를 만나보니
사랑의 말을 전하기는 커녕
생명의 말을 불어 넣어 주기는 커녕
너무 안타까워 할 말을 잃은 체
아무말도 못하고 눈시울만 적시다 왔습니다.
 
프란치스코와 소피아를 보니
그래도 다급한 마음에 원망은 어디로 가버리고
예수님 성모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계신 우리아버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두사람 다 봉헌합니다.
아빠!  엄마!  도와 주세요. 제발 도와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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