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화기에 서양 문물과 함께 전래된 천주교.
천주교의 역사는 종교사이기 전에 곧 우리나라의 근대사이다.
1785년 신유박해로 첫 순교자가 나온 이래 수십 년이 지나도록 조선의 천주교는 여전히 어둠의 역사였다.
그 안에서 희망의 등불을 켜든 이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이다.
그는 어릴 적에 중국으로 신학공부를 떠나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어렵게 국내로 귀국하였으나 불과 1년 만에 순교의 길을 떠났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관문효시라는 참형을 받은 김대건 신부를 우리는 피의 순교자라고 부른다.
그 뒤를 이어 조선 천주교의 기틀을 닦은 이가 있으니 바로
최양업 신부(1821-1861)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고 불리는데. 당시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 서양 신부들이 가기 어려운 곳들을 전담하다시피 했기에 매년 7천리 이상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며 12년간 사목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피의 순교로서 굳은 신앙의 상징이 된 김대건 신부.
그리고 그 누구보다 조선 천주교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최양업 신부.
조선 천주교의 시작을 피와 땀으로 지켜낸
조선 최초의 두 사제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굳은 신념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되새겨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