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랍니다

2001. 2. 20. 오전 1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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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어젯밤..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몇 자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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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그리워진 레지오 사람들..

 

 

 

익히 아시고 계시겠지만.. 저는 어제부로 꼬미시움 단장 자리에서 물러난 안젤랍니다.

 

아직 서두만 꺼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져 오네요.

 

 

 

참..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레지오에서 사는 일, 하루 하루가 신나고 재밌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15년이란 시간을 이곳에 있었더군요..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나만 어찌나 잘났다고 생각했는지, 늘 고개 뻣뻣이 들고 대들었던 일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술먹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던 단장들의 등을 쳐주던 일, 지금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밤새워 얘기하던 일들..MT촌의 그 냄새나는 담요나 열린마당 가서 온종일 벗겨내던 감자껍질 같은 것들까지..  

 

 

 

아마.. 레지오 생활을 얘기하자면 몇 날 밤을 꼬박 얘기해도 모자를 것입니다.

 

 

 

기쁘고 좋았던 일만큼, 힘들고 상처받은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잃게 될 것보다 그로 인해 조금 더 성장할 저를 생각하며 견뎌왔습니다.  때론.. 레지오만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졌을 거란 투정도 해보았지만, 아마 그랬다면 그 이상으로 소중한 여러분이나 15년이란 시간동안의 추억을 포기해야만 했을 겁니다.  

 

비록.. 아주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까닭에..

 

제가 레지오에서 있었던 시간들이 더 가치있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어떤 단장님께서 내 삶에 대해 reset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누르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 땐… 너무도 힘겨운 시간이 무거워서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낭패스런 어느 순간마다 아마.. 몇 번쯤 더 되돌리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좋았던 일은 좋았던 대로, 나빴던 일은 또.. 그런채로.. 그 분께서..

 

나이기에 허락하신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떠나면서..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다 기억하고 싶었고, 또 좋은 일도, 어려움도 다 헤아려줄 수 있다면 하고 바랬었습니다.  그렇게 다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제 그릇에 절망하기도 하고, 이만큼 밖에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조금쯤.. 원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음과 같지 않게 화를 내야할 때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단원들의 참석률이 현저히 낮을 때.. 쳐진 어깨로 앉은 단장들의 얼굴을 보기가 안쓰러워.. 되려 나무란 적도 많았습니다.

 

 

 

어느 단장의 표현대로, 싸우나에 단식원인 회관에서 행사 준비에 이방 저방을 뛰어 다니는 단장들을 볼 때마다, 내 손이 마이더스의 손이라도 되든지, 아님.. 복권에라도 당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답니다.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단장들이 배로 일해야 하거나, 혹은 괜한 꾸지람을 들어야 했을 때, 그럴 땐 정말 어찌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하지만.. 잘함과 못함, 실수와 부족함까지도 모두 저의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아니었다면 훨씬 잘해낼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전임 꼬미시움 단장님이나 이번 신임 단장님 뿐만 아니라 후배단장들을 보면서도 나보다 낫다란 생각에, 괜한 열등감에 시달린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족한 대로 제가 가진 색깔과 향기로, 저이기에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에..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잘 못했던 일들이 많아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실수투성이의 제게 주어졌던 지난 2년의 삶이 너무나 기쁩니다.

 

 

 

제가 그랬다면, 아마 여러분은 더 많은 것들을 갖고 계실 겁니다.

 

유승준만큼 춤을 잘 추거나, 김희선만큼 이쁘진 않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에겐, 또 저에겐 각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비록 다른사람이 훨씬 잘해낸다고 할 지라도- 분명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 분께서 우리 각자를 어디로 부르셨는지.. 우리 각자의 성소를 살펴보는 기회를 꼭 갖게 되길 바랍니다.  

 

제 좁은 안목에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가진 그 무한한 가능성이 보였으니, 실제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흠…

 

 

 

그렇죠??

 

 

 

사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가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답니다. 레지오를 하게된 것도, 나가는 일도.. 모두 말이지요.. 그런데.. 슬슬..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레지오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레지오를 들어내는 일이었음을 깨달았어요.. (10년 이상을 봉사자로 살아왔으면서도..마음이 이렇다는 건.. 결국 내 욕심으로 살아왔구나 싶어 부끄런 마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레지오가 좋았고, 그래서 떠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닌듯 합니다. )

 

 

 

하지만,  이렇게 나와있는 지금,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던 것처럼.. 그 분께서는.. 내가 이제 있어야 할 곳을 알려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가..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펑펑 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나네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아마도.. 그 노래처럼.. 우리는 매일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혹.. 지운 듯 잊으며 살게 된다고 해도..

 

어느 곳에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실.. 레지오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늘 따뜻할 것 같습니다.

 

 

 

그저 여러분께 미안하고 고마왔다는 인사를 전한다는 것이 길어졌습니다.

 

 

 

나일 먹으면 말이 많아진다더니.. 아마 그런 모양입니다.

 

 

 

늘... 여러분이 행복하시길 기도할께요

 

언젠가.. 제가 단원이던 시절의 지도수녀님께서 저처럼 이임하실 때에 하셨던 말씀을.. 저도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에 눈뜨며 바치는.. 첫기도에 늘.. 레지오를 기억하겠다구요..

 

 

 

 

 

 

 

 

 

 

 

 

 

추신: 지금까지 과연 몇 자나 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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