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그 해 가을이었다.
친구들과 인천의 작약도로 캠핑을 가기로 결정한 날,
나는 몹시 괴로웠다.
캠핑에 드는 비용 2천환(당시)을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당시 용산 철도국의 기관사였다.
호구책에도 미치지 못하는 빠듯한 박봉으로
아들의 캠핑 비용을 댄다는 것은 무리였고
이를 모를리 없는 나였다.
나는 여러모로 궁리를 했다.
책을 산다고 할까?
그러다가 문득 한가지 나쁜 생각을 했다.
그날이 바로 아버지의 월급닐이란 것을 알았을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월급날이면 의례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 있는 허름한 술집,
강원도 집에서 막소주를 몇잔 마시고
한달 동안 밀린 술값을 갚고 아주 기분 좋게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하며
비틀걸음으로 귀가하시는 것이 습관이었다.
아버지에겐 그때가 풍진 세상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도 그날만은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묵인했다.
외상값을 제한 월급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이날만은 모처럼만에 평화가 찾아온다.
아버지는 음치목소리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를
삼절까지 부르시고 우리들을 앉혀놓고 일장 훈계를 한다음
당신의 방으로가 편안한 잠에 빠지는 것이 순서였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병환이 나셔서
시골 친정에 갔기 때문에 집안에는 어린 동생만이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요란하게 코를 골으셨다.
나는 이때다 싶어 독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방의 미닫이를 살그머니 열었다.
아버지는 잠꼬대까지 하셨다. 술냄새가 역겹게 풍겼다.
나는 한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옷도 채 벗지 않고 잠들어 계신
아버지의 윗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러나 없었다. 가슴의 박동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셔서 "요 망칙한놈!"하며
호통을 칠것 같아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아야 했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가슴에서 허벅지에서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흘러내렸다.
속주머니를 뒤졌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곤히 잠들어 계셨다.
겉주머니를 뒤졌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첫 작업(?)에 실패한 나는 다시 아랫쪽 주머니와 뒷 주머니까지
모조리 뒤졌으나 거기에도 월급봉투는 보이질 않았다.
베개밑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버지가 몸을 움직여야 할텐데
움직일 기세가 엿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살그머니 베개 속에 손을 들여 밀었다.
문득 잡히는 것이 있었다. 신문지 같았다. 신문지는 제법 두터웠고
그건 돌돌 말려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 시간이 여간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코를 골면서 몸을 뒤척이셨다.
빼낸 신문뭉치는 여러겹으로 쌓여있었고 나는 그걸 한겹한겹 풀어 보았다.
예상한대로 아버지의 빈약한 월급이 거기 있었다.
나는 그 돈 가운데 계산하기 힘든 잔돈으로 2천환을 손에 넣고
나머지는 표나지 않게 신문지로 싸 원위치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처럼 다리에 힘을 뺀채
뒷걸음을 쳐 방문 미닫이를 소리나지 않게 열었다.
아!
그때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아버지의 미간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미간 사이가 일순간 찡그려지면서 꿈틀대더니
감긴 두 눈 틈 사이에 눈물방울이 아롱지는
모습을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아버지는 과연 잠들어 계셨을까?
아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한번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시간에 잠들지 않고 계셨다.
아들의 캠핑 비용 하나 못 대는 당신의 무능과 자책감,
그리고 아들의 회개를 긴 시간동안 침묵으로 기다리셨다는 것을...
그때 아버지가 가졌던 나에 대한 배신과
분노는 과연 어떤 색깔이었을까?
훗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때 나는 아버지의 수첩을 보았다.
거기에 깨알같이 정자로 쓴 이런 글을 보았다.
"너의 방종과 무식과 허영이
이 애비에게 얼마나 잠 못 이루는
시간을 갖게 했는가.
또 탄식의 시간을 얼마나 갖게 했는가."
<김광한 소설집 "수단자락에 묻은 달빛"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