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행복과 성공을 스스로 정의하라!

2007. 10. 17. 오전 11:13:24

글자
   행복과 성공을 스스로 정의하라!
       
 

  삶을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 하고 싶은 단어가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나는 단번에 ‘행복’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내적인 평화의 소유자이고 싶다. 행복이 외부 환경에 좌우된다면 더 이상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지극한 만족감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다. 행복한 삶에도 슬픔, 실패, 후회, 아쉬움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 내가 타고난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환경에 대한 반응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완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에서 온다. 완전한 삶은 불가능하지만,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있다. 달라이 라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고통 받고 있고, 똑같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깊이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행복에의 추구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삶을 깊이 이해하면 행복할 수 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에 대한 얘기부터 할 것이다. 성공에 대한 얘기는 글의 마지막에 아주 짧게 덧붙일 것이지만, 행복에 대한 얘기는 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

행복과 성공에 관한 진실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다. 강연 때마다 행복을 느끼는 분들은 손을 들어달라는 질문을 하곤 하는데, 늘 20~30%의 사람들만 손을 든다. 50%를 초과한 적이 있지만 딱 한 번에 불과하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행복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행복은 나를 성찰하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행복감은 인류의 대다수가 느끼지 못하는 삶의 유토피아다. 이처럼 행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이다.

 둘째, 행복이 절대 미지의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10명이 모이면 한 명 이상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행복한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잘 생기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당신이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이 아닌 허깨비만 쫓아가게 된다.

 몇 년 전, ‘웰빙’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이 키운 것은 행복이 아니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만 있었을 뿐 무엇이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물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웰빙 바람이 키운 건 ‘웰빙산업’이었다. 웰빙 바람이 못한 일을 이제 해야 할 때다. 당신이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지금은 우리의 행복을 키워야 할 때다. 당신의 삶에 행복 바람이 불게 하라. 바람이 구름을 몰고 오듯이 행복 바람이 당신의 일상에 미소와 기쁨을 몰고 오게 하라.

 행복해지려면 자기 삶을 성찰해야 한다. 성찰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물음표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물음표가 있어야 느낌표가 따라온다. 강사로서 내가 할 일은 청중의 물음표를 끄집어내어 강연이 끝날 즈음에 느낌표로 바꾸는 일이다. 강연이 끝날 때에 느낌표가 아닌 마침표만 있으면 안 된다. 강연의 마침표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느낌표를 찍기 위해서는 성찰해야 한다. 특히 청중의 요구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삶의 강사이자, 곧 청중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은 청중의 입장이 되어 물음표의 정신으로 질문을 던져라. 좋은 질문이 훌륭한 답변을 만든다.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는 강사의 입장이 되어 그 물음에 답변을 하라. 스스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책이나 코치의 도움을 받는 것은 좋지만, 결국 답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성찰의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실천의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느낌표를 던지는 삶을 살자.
그런데,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말인가?

 “위를 채워야 식탐이 사라지는 게 아니며, 적을 없애야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만족스러운 조건들이 채워져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씨가 한 말임.)

 무엇이 행복인가? 이 질문을 두고 자꾸만 철학적 사유 속으로 들여가려는 스스로를 경계하며, 나 스스로 정의내린 행복은 다음의 3가지이다. 건강과 관계, 그리고 직업이 그것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나가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다. 요즘에는 스스로 정의내린 이 행복을 힘써 추구하는 중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지만, 효과는 놀랄 만하다.

1.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아플 때에 그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건강한 신체와 아름다운 정신을 갖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당연한 얘기라고 덮어두기 전에 당연한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건강을 원한다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기 전에,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BBC 다큐멘터리 <행복>에서는 ‘행복헌장 10계명’을 발표했는데, 제1계명이 건강을 위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운동을 하라. 일주일에 3회, 30분씩이면 충분하다.”

 건강은 신체를 포함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적 건강은 당연하고, 이제 영적 건강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에 대한 정의에 ‘영적 건강’을 추가했다. 지난 60년 동안 WHO의 건강에 대한 정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 맑고 역동적’이어야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BBC 행복위원회가 ‘행복헌장 10계명’에 제시한 건강은 물론 소극적인 의미인 신체적 건강을 다루었지만, 당신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까지 관리한다면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다.

2.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행복을 원한다면 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관계는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행복의 비결이다. 관계를 위하여 어디까지 헌신할 마음이 있는가? 관계를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마음이 있다면 깨어진 모든 관계까지 회복할 수 있다. 관계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것은 곧 행복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행복헌장 10계명’ 중 관계와 관련된 항목은 무려 4가지에 이른다. 다음의 항목들을 보라.
- 대화를 나누라. 매주 온전히 한 시간은 배우자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라.
- 미소를 지으라.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라.
- 친구에게 전화하라.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하라.
-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라.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관계가 자연스레 좋아진다. 내가 정의하는 행복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준행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신명기 10:12~13)

3.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토머스 칼라일은 “자신의 천직을 찾은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또 다른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또 다른 행복이 필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행복과 직결된다. (하지만, 건강과 관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의 소원은 나의 직업과 사명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얘기는 드림레터의 1편부터 줄곧 언급해 온 얘기다. 그만큼 행복에 있어서도, 성공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너는 해야만 한다.’에 대하여 긍정하는 것보다 ‘나는 하고 싶다.’에 대한 것을 발견하라.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위의 세 가지는 나의 행복을 위하여 영원히 노력하고 싶은 일들이다. 당신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나만을 위한 특별한 지침이 아니다. 누구라도 이 세 가지만이라도 성취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다.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건강을 돌보지 않는 중이라면 당장 운동을 시작하자. 틀어진 관계가 있다면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자. 상처보다 더 큰 선물을 준비한다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자. 만약 지금 당신의 직장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에서 승부를 걸어라. 몰입과 성찰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꿈의 공장을 가동시켜라.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 어떤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언제 행복한지를 알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 순간을 자주 가져라.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면 자주 그 일을 주물럭거려라. 나는 프로야구를 볼 때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그래서 10월 10일 오후에는 대전에서 강연이 있었고, 11일 오전에는 서울에서 강연이 있었지만, 이 두 번의 강연 사이에 대구에서 열린 삼성 VS 한화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직접 관람했다. 고함을 지르느라 이튿날인 지금까지 목이 칼칼하지만, 양준혁의 멋진 투런 홈런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관람이었기에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행복은 궁극적인 성공이다. 삶에서의 행복과 직업적 일에서의 성공을 당신이 모두 성취하길 바란다. 당신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
 하나,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둘,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재능을 안겨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땅에 보내진 목적을 발견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현명한 질문이 아니다. 당연히 할 수 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무능해 보이는 이유는 자기가 가진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기준으로 줄을 서야할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방향을 찾아 그 곳으로 힘차게 달려갈 사람들이다. 우리의 직업적 성공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가 있을 수 없다. 흔히 수입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져보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의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No.1’이 아니라 ‘Only 1'이 되는 것이다. 결국 직업적 성공도 스스로 정의 내려야 한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 그와 나는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재능의 크기가 아니라 종류가 다르다는 말이다),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자신의 때가 오면 그 때 힘껏 피어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힘껏 피어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할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아! 난 왜 안 될까?’라는 비생산적인 궁금함을 내던져버리고, '나’라는 유일한 꽃을 힘껏 피우기 위해 ‘오늘 난 뭘 할까?’라는 생산적인 질문을 끌어안으라.

 우리 가 가져야할 것은 비교나 경쟁심이 아니라, 인정과 사랑이다.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면 내가 앉을 성공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부족의 심리’를 버려라. 대신 서로 돕고 도우면 함께 성공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풍요의 심리’를 갖자.

  나는 솔직히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사람들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커다란 성장의 간격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직업적 성공을 이뤄내는 사람들이다. 날마다 성장하여 스스로에게 행복과 직업적 성공을 선물하라. 그러면 당신의 존재 자체가 가족들과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것이다. 행복할 수 있으면 행복을 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자기 주변에 있었다. 파랑새를 찾으러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듯이 행복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만족스러운 환경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곳곳에 행복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내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여 널리 전파시키는 ‘행복유통업자’가 되고 싶다.

 

당신이 좋아하는 단어 10개를 적어보라

  행복은 이력서의 근사한 경력보다는 삶의 순간마다 느끼는 만족과 여유에 있다. 사람들은 행복이나 영혼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쓸 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춥고 외로울 때, 이력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작가인 애너 퀸들런은 '기어오다가 과자를 집는 데 온 정신을 쏟는 아가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라고 했다. 여유를 잃고 무언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한 동안 아가를 지켜보라는 제안은 무의미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 아가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주위의 나뭇잎사귀에 있을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는 즐거운 과정은 팽개쳐버리고, 정상을 향하여 숨 가쁘게 전진하는 이들이 과연 등산의 기쁨을 알까? 정상을 향하되 오르고 있는 산길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새소리를 듣고,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향기를 들이킬 수 있어야 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길의 분위기를 느끼며, 오가는 사람들과 미소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즐거운 일이라 생각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지금처럼 너무 바쁜 삶의 방식으로는 이러한 행복들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삶의 여백을 만들고, 그걸 사랑하고, 진짜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삶에다가 지금 쉼표 하나를 찍자.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낱말을 10개만 적어보자. 생각만 해서는 곤란하다. 깨끗한 흰 종이를 가져와서 중간에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원을 하나 그려라. 그 안에 ‘나’라는 글자를 적어 넣어라.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며, 내가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내가 좋아하는 단어 10개를 생각해 보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단어들과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생각하여 10개를 적어보라.

 아마도 곧 당신의 머리는 이런 저런 다른 생각들로 채워질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니 집중력이 없다고 자책하지 마라. 그럴 땐 다시 ‘나’라고 써진 그 작은 원을 들여다보라. 지금은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 자신이 원하는 단어 10개를 적어 보자. 자기만의 조용한 장소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이 일을 하라. 깨끗한 흰 종이를 바라보는 동안에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10가지의 단어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내 가 좋아하는 12개의 단어들이다. 10개만 적자고 말했지만, 12개를 적었다. 중요한 건 숫자 ‘10’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상관없을 것 같다. 이 12개의 단어들을 가만히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시간 약속을 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시간의 제약 없이 나는 춤을 춘다. 이 낱말들과 함께 춤을 춘다. 마음껏 재즈를 듣기도 하고, 갑자기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열정과 꿈을 더욱 키워가기도 한다. 여행을 계획해 두었다가, 다음 주의 약속이 없는 날에 훌쩍 떠나기도 한다. 10가지 단어 중에 처음 3가지 단어만 소개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10개의 단어를 적은 다음에는 그 단어들을 편하게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생각으로 간략히 글로 적어 두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1. 재즈 Jazz
 나는 종종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재즈 뮤지션으로 태어 날거야.” 이 말은 진심이다. 나는 재즈가 좋다. 지금도 콜트레인의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를 내 방 가득히 채워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친구는 재즈가 왜 좋은지 얘기해 달라고 한다. 그러면,
 “가장 듣기 편한 5, 60년대 재즈를 얘기해 줄게. 리듬 파트는 드럼과 베이스가 맡고, 멜로디는 피아노와 색소폰이 맡거든.” 하는 식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재즈 전도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빌 에반스(Bill Evans)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말한다.
 “재즈와 선철학은 비슷해. 이것은 경험되어야 알 수 있지 설명되어질 수가 없어. 말이란 이성의 아이야. 그래서 그것이 설명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지성의 잣대로 분석하려 하지만, 그것은 타당하지 않아. Jazz는 Feeling이기 때문이야.”라고.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 맘속을 한없이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매일 비가 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Jazz...

 눈을 감아본다. 그리곤 내 귓가에 Jazzy하게 흐르는(잔잔히 흐르는) Jazz를 느낀다.

  둥둥거리는 베이스 소리! 그 리듬에 마음을 기울여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피아노소리가 은은하게 베이스의 저음을 감싸 안는다. 건반 위를 흐르는 뮤지션의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 할 즈음, 또 다른 멜로디 악기인 테너색소폰의 혼이 담긴 감미로운 소리가 내 맘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비 오는 날의 Jazzy함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조금은 차분함으로 내 맘속에 평정을 찾고
 조금은 부드러움으로 내 모진 인격을 다듬어나가고
 조금은 우울함으로 내 삶속의 발견치 못한 기쁨을 찾으며
 조금씩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며 낭만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약간의 냉정함으로 내 할 일들을 찾아 나서며
 잔잔한 명상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는 그런 것인가 보다.

 2002 년 1월 17일에 나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었다. 에반(EVAN) 레코드샵의 재즈 코너에서 한 시간 가량 재즈를 들으며 놀았다. 여기는 재즈와 클래식 코너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재즈 코너에 들어가면 감미로운 재즈 멜로디가 흐르고 있다. 재즈 잡지를 읽으며, 비치해 둔 CD 플레이어를 통해 재즈를 들었다. 아무런 근심도 없이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참 좋았다.

  재즈를 들으면 행복해진다. 기분이 우울하다가도 콜맨 호킨스와 듀크 앨링턴의 ‘Limbo Jazz'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웃고 만다. 강연이 끝난 후, 10분간의 쉼을 활용해 듣는 재즈는 내 머릿속을 맑게 해 다음 강연을 열정적으로 맞이하게 해 준다. 재즈는 내게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2. 사람들
 나는 사람이 좋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슬펐던 순간은 모두 사람들과 있을 때다. 나는 책이 무척 좋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이 사람들이 더 좋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과 있는 시간보다 독서하는 시간이 더 좋다는 사람들을 대할 때, 측은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서로 다른 것이 사람이기에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무튼 나는 사람이 더 좋다. 밥 버포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람들의 조직체가 단순히 책에서 읽은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더할 나위 없이 지적 자극을 준다고 생각한다.”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사람들과 함께 할 때만이 멋진 이력서가 줄 수 없는 그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그 평안과 행복은 책도 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랑만큼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은 책을 사랑할 수 있지만, 책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나는 사랑 받고 싶기 때문에 내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책보다는 사랑 가득한 사람이 더욱 좋다. 책이 사랑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지은이의 사람을 향한 사랑이 책에 묻어난 것이다.

  물론 어쩌다가 사람들이 미워질 때도 있다. 배신당하고 불의한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끝은 미움이 아니라 다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에 잘못 접근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이지 사랑 자체에 상처를 낼 수 있는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 나는 친구가 좋다. 그들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할 때 제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다. 함께 할 때마다 행복한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가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하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좋아질 때도 있다. 물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일 편하고 그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내 이웃의 반경을 정해 놓고, 그 반경 안의 사람들만 사랑하는 이 땅의 작은 교제 권을 벗어나 천국 교제를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기엔 나의 인격이 부족하여 두렵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이 명하신 사랑의 길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지만 추구하는 마음까지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생각들을 종합하면, 나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사람은 아마도 눈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 위엔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좋아하는 대상이 힘들어할 때, 눈물이 나게 될 테니까.

3. 책
 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복잡한 버스 안에서도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한 손엔 책을 든다. 밤거리에서도 책을 읽는다. 가로등이 등 뒤에 있으면 책을 내 쪽으로 비스듬히 세워 읽고, 걷다가 다음 가로등이 더 밝으면 이번엔 책을 앞쪽으로 비스듬히 세워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전봇대에 박은 것도 여러 번이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웃는다. 상관없다. 나는 책 읽는 게 좋으니까.

 나에게는 빚이 있다. 대부분이 책값이다. 빚은 모두 털어버려야 하지만 아니, 아예 빚을 만들지 말아야 하지만, 젊을 때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기엔 나는 너무 가난했다. 톨스토이는 가난을 벗어나는 두 가지 방법이 하나는 부자가 되는 것, 하나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책 부자가 되기로 했다. 사실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다. 멋지게 투자를 한 거다. 아주 괜찮은 투자가 되어 나중의 나를 부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내 방엔 책이 많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책이 있다. 경제 경영, 철학, 사회학, 미술, 재즈, 영화, 자기 관리, 영어, 기독교, 인문 교양, 역사, 건강 등 주제도 다양한 편이다. 오늘도 아침에 책을 읽었다.

 책은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친구 말이다.
&bnsp;책은 훌륭한 스승이다. 내게 깨달음과 지혜를 한 아름 안겨다 주는 스승이다.
 그리고 책은 내게 행복 그 자체다.

 

맺으며...

  당신을 지배하는 사상은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닮아있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 당신의 사유를 구속하고 있다. 그래서 더 멋진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더 멋진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당신의 사유는 당신의 삶을 지배한다. 더 멋진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 아름답고 밝은 생각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이 어제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결론!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보보의 드림레터>가 당신의 사유를 확장시키고, 삶의 방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