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첫 연습을 한 날이 작년 10월 2일이니, 광장동성당 성가대에 들어온지도 벌써 10개월이 지났습니다.
성가대에서의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음악적으로, 신앙적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하고 기뻤던 순간은...
중고등학생 시절, 개신교 교회 학생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며 경험했던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광장동성당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며 다시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얼마전 TV '무릎팍도사'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한비야님께서 '누가 나에게 왜 이 일을 하느냐 물으면...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고 하신 말씀이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는 이유는 "성가를 부르면 제 가슴이 뛰고 감동을 받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음 하나, 박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가가 주는 감동과 감격을 잃어버리는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기교 보다는, 성가를 부르는 제 마음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인터넷카페에서 공감이 되는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성당 성가대 지휘자께서 '지휘대를 내려오며'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인데...발췌해서 옮겨봅니다.
첼로나 피아노, 혼과 바순 같은 악기의 연주도 아름답지만
저는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유일하게, 사람은 그의 소리에 詩를 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와 고저와 장단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데,
거기다가 ‘언어’까지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저는 사람의 노래 중에서 독창보다는 이중창이나 4중창, 합창이 좋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부르려면 남을 배려해야 하고 나를 절제해야 합니다.
이때의 절제는 없어짐이 아니라 엄연히, 뚜렷이 나의 소리를 간직하면서도
오히려 또렷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노래를 하면서 서로의 눈빛을 읽는다거나 마음을 읽는 일은 보는 이도 즐겁게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독창과 합창을 늘 해 왔었습니다.
성가대는 청년시절부터 해 왔었고 지휘자로서는 벌써 23년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자랑하기보다 시행착오와 오만의 시간이었던 순간이 더 많았고,
끝에서 되돌아 보니 온통, 매 순간이 ‘감사와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성가단원들은 수도자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합니다.
성가대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스랍들처럼,
전능하신 하느님을 향하여 ‘거룩하시다’라고 소리쳐 찬양하는 천사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경험에 의하면 말이나 노래는,
더구나 성가는 자신의 신앙, 즉 자신이 믿고 찬미하고 간구하는
믿음과 희망의 정도만큼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십 여년 전 어느 날, 연습 중에 갑자기 번개처럼
단원들의 소리가 소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제 귀에 들리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173번 Veni Jesu 였습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을 '오시라'고 노래하면서도,
정작 성가대원들 자신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만 내고있음이 구역질날 정도로 고통스럽게 들렸습니다.
그 날 대원들에게 이 말을 하고 난 후 몇몇 단원들은 눈물을 흘렸고,
역시 소리도 아주 깊고 좋은 소리를 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들의 고백이 언어로 만들어지고, 온 몸에 들어온 공기에 실려 성대를 울려 소리가 되며,
이 울림은 성당 안의 공기를 진동하여 파장을 타고 드디어 신자들의 심장을 진동시킵니다.
바로 그 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마음과 신앙이 없는, 하느님과 함께 한 삶이 없는 성가대의 특송은 그야말로
'성가’가 아닌 자신들을 뽐내기 위한 '노래’ 나 '소음’ 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