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어느 노인의 유서 파일
존경하는 자식님들께 !
감히 천한 이 애비 놈이 세태(世態) 탓인지, 겨울 탓인지,
부쩍 자진(自盡)하고픈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고상한 말로 쓰자니 자진이지 바로 자살이지요.
'방귀를 자주 뀌면 똥싼다'는 속어처럼 제 마음을 저도 주체할 수 없어 자살을 결단하기 전에
이 욕된 글을 미리 컴 속에 남겨둡니다.
"아니, 자식에게 경어를 쓰다니, 애비 놈이 치매에 걸렸나" 하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제 머리는 명경 같이 맑습니다"
'님'이란 존칭을 빼먹으면, 혹시 젊은 님들로부터 몰매를 맞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과거사를 정리 못하는 수구 반동이라며 요사히 힘께나 쓰는 젊은이들이
다 죽어 가는 늙은이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있지 않습니까.
보시다 시피 요즘 늙은이들이 어디 사람 축에 끼일 수나 있나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죽고 나면, 자식님 보다는 내 또래의 친구와 이웃의 늙은이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60대 이상의 집에서 쉬어야할 폐인들이 보기를 바래고 쓰는 것이지요.
이왕에 자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 국감 때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인용해 보면,
2000년에는 노인 자살자가 전체 자살자의 19.7%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그 비율이 28.0%에 달해 '자살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61세 이상 노인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죽지 아니하려 하여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왜 참지 못하고 죽음을 자초합니까.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노인복지에 대해 ‘경제적 지원’만을 강조하는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없다' 고 지적하며
'노인자살은 핵가족 문제와 노인들이 처한 개인적 상실감, 경제적 어려움까지 얽힌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일으킨 문제' 라면서 '무너진 가족제도의 개선에서부터
노인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까지 총체적으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황혼자살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위 교수 분의 견해가 일면 타당합니다만,
최근에 갑작스레 노인들의 자살율이 높아진 원인의 하나가
국가 권력이 앞장서서 노인들을 모욕하고 멸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박 교수가 외면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선택된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비하하니 대책이 없고,
고뇌 끝에 자살할 수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너희들도 늙지 않는가 보자'고 하여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요즘은 이런 울분의 토로도 공허하다는 실망이
더욱 노인들을 염세주의자로 만든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지요.
가진자와 권력자들은 늙어도 명성이 남고, 쌓아놓은 부가 그들의 노년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 줄 것이기에 입을 다물고 구름 위에서 노는 신선처럼
만년을 유유자적하고 있지요. 그들 축에 끼지 못하는 나는 '전철역과 파고다 공원에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늙은들에게 당부합니다.
부디 늙은이들이여!
젊은 님들이 아무리 늙은 놈이라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고개를 쳐들고, 댓거리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소'하고 찬성의 박수를 쳐야합니다.
그래야 남은 여생이 덜 괴롭습니다" 라고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말입니다.
제 한 몸 죽어 5백만 늙은이들이 젊은 님의 궁박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 어찌 가치 있는 희생이 아니겠습니까.
이 늙은 놈이 그래도 오기가 있어, 국정을 농단하는 젊은 님들을 향해 온갖 방법으로
악을 써 보았지만 누구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 없습디다.
그래서 죽음을 담보로 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 [ 꽥 ] 소리 몇 마디 하려는 것입니다.
"3백5십만 예비노인들이여, 그리고 5백만 노들이여 !
이 늙은 놈이 보기엔 지금 정권과 사회가 [고래장 법]을 만들려는
수순을 밟는 것 같은 징후가 보입니다. 비록 우리 몸둥이가 쇄진하여 내일 죽을지언정
오늘 우리 힘 모아 젊은 님들과 맞섭시다"
요즘 젊은이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니 현대판 '고래장 법'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말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하는 자들을 보면 박노천시 사상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말입니다.
언젠가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모 여성의원은 여당의 정모 의장이 말한
노인 폄하 발언을 두고 논평하며 '정 의장의 발언은 노년층에 대한 단순한 경시를 넘어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 살아있는 증인, 살아있는 공헌자들에 대한 결례이며 모독' 이라고 말하고
'명색이 여당의 의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겨도 되는 일인가' 라고 비판했습니다.
그 때, 우리 늙은이들이 '살아있는 역사' '살아있는 증인' '살아있는 공헌자' 라는 말이
얼마나 이 늙은 놈을 감동시켰는지 모른답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식님이여!
제가 힘께나 오를 때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일제치하에서 자랐습니다..
일본 천황이 울먹이며 항복하는 비참한 라디오 육성을,
광복의 태극기가 방방곡곡 물결치는 환희를,
좌우익 단체들의 투쟁과 반란을 직접 보았습니다.
6.25 동란의 골육상잔 때는 중 1년으로 고향에서 북 체제의 모순을 경험하였습니다.
감격의 수복을, 4.19를 장면 정부를, 군사정권의 창출을 체험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386세대들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겠지요.
그래서 우리 늙은이들을 위 전씨가 '역사의 증인' "살아있는 역사'이라고 지적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이지요.
6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과 경제건설의 시대에는 젊은 님들은 아기걸음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그래도 흰쌀밥에 우유와 고기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아니 하였습니까.
초근목피의 아픔을 잘 아는 우리는 젊은 님들을 보다 풍족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건설현장에서, 기계소음 속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밤낮 구별 없이 땀흘리며 일 하였습니다.
이 어찌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이요 근대화의 공헌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겠습니까.
젊은님이여!
그대들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총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여 온 나라가 감격에 벅찼던 시대를 아십니까.
그 후, 저는 요, 이십대 후반으로 제가 다니던 H합섬(주)이 단일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일억불 수출탑 상을 받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답니다.
비록 말단 공원이었지만, 가슴에 달고 있는 회사 뺏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이런 긍지를 386이여! 그대들이 이해나 하겠는지요.
그 때 당시 대선이 3번 있었는데, 여러분이 인권 탄압과 반공의 괴수로 부정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63년 5대 대선에서 윤보선후보에게 15만 여 표 차로 승리하였는데 투표율은 85%였고,
67년 6대 대선에서는 역시 윤보선 후보에게 백 십여만 표차로 이겼는데 투표율은 83.6%이었습니다.
71년에 있은 제7대 대선에서는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김대중 후보에게는 백만표 이상으로 승리하였는데
투표율은 79.8%이었습니다.
이 선거들에 관권이 동원되고 돈이 뿌려지는 것을 이 늙은 놈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독재라 하지만 100%찬성을 강제하는 북처럼 인권이 무시당하지도 아니하였고,
유권자의 50% 이상이 임의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인권보다 먼저 자식들을 굶기지 아니하는 것이 우선이고,
자식들에게 메마른 강토를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생의 목표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천사 같이 티 없는 자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오로지 그들의 미래를 위해 내한 몸 뼈빠지게 일하였습니다.
386 그대들이 자랑하는 80년대가 늙은이들로 치면 60년대 쯤 시기입니다.
--만약 그 당시 탄핵문제가 있었다 해도 우리들은 그대들을 가슴에 안고 촛불을 쥐여 준 채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자식의 눈에 갈등과 충돌의 기억을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탄핵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적법이고,
헌재의 결정도 적법이며, 대통령도 우리가 뽑고, 국회의원도 우리가 뽑은 대표임을 알고,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듣던 '국회를 해산하라'든 구호가 과연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혼돈의 세대에 꼬마로 촛불시위의 참여한 일을 상기하며,
기성세대를 불신할 것이고, 정치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낄 것입니다. 더욱 정치는 이성의 대상이지
감성의 대상이 아닌데 하고 자기 혐오와 고뇌에 빠질 것입니다.
또 왜 내가 특정정치인을 정치보다 더 사랑하였는지에 대한 잘못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생활과 경제를 요리하는 수단입니다.
정치는 머리로 판단할 일이지 감정으로 처리할 수단이 아닙니다.
노사모가 왜 생겼는지, 박사모가 왜 생겨야 하는 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노무현이가, 박근혜가 자기자식보다 더 귀중하단 말입니까.
사랑하면, 잘못이 있어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잘하면, 좋아하고, 못하면 싫어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성이요, 머리이며, 정치란 물건입니다.
이성은 미래입니다. 조상을 위한 미래가 아닙니다.
자식과 후손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 우리가 추구하여야하는 정치의 길입니다.
내 후손에게 현수막에 걸린 김정일지도자가 비를 맞는다고 울며불며 철거하는
북 체제의 인민으로 종속시킬 어떤 일에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유서는 계속될 것입니다.
출처 : Tong - 물보라님의 ♠ 감동 ♠ 명언수첩 ♠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