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한 감동과 동시에 자책감을 느끼면서
새삼스럽게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실천하면서 살다 가면 되는 거야"
인생 50이면 아쉽기 그지 없는 나이다.
그러나 그는 대개들이 그러하듯 보기 딱하고 구차한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남은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며 제자들을 위해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미련과 희한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이제 겨우 본격적으로 활동할 나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끝나려고 단칸 셋방에서 고생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는가.
어려웠던 미국유학 기간과 박사학위가 너무도 아깝다.
그는 모 대학교에 15년을 재직했다고 하니 약관 35세에 교수가 된 천재였다.
당년 50세면 태어난 시대가 50년대 말 또는 60년대 초.
따라서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했는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형편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하며 오직 자력으로 학교를 마쳤다 하니 말이다.
그래선지 어려운 제자들에 무심하지 않았다는데.
그러한 그가 재테크에 능하고 관심이 많아 큰 재산을 축적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며 어려운 제자들을 도왔다.
지난 겨울방학 때 동료 의사에게 암치료를 받으면서 이미 늦었음을 알았고
남은 시간이 한 학기 강의가 가능하다며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멋있고 유익한 마지막 강의를 위하여 매 시간마다 철저히 준비했다.
빠진 머리를 가발로 가리고 전신의 극심한 고통을 진통제로 버티며
매주 9시간씩 한 번도 빠짐없이 훌륭히 한 학기 강의를 마쳤다.
제자들이 말기암 환자를 끝내 몰라 봤으니 숨기려 한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마지막 강의 후 제자들 모두 일일이 다독이며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방학에 외국에 가면 언어공부만 말고 넓은 견문을 위해 여행을 꼭 다니라고
여름방학을 잘 보내고 새학기에 만나자 웃으며 말했지만 그로선 유언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헤어진 후 입원했고 한달 여 후인 7월25일 조용히 떠났다.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알고 놀라 급히 병원을 찾은 것은 2일 전인 23일
부인은 부조금 전액을 어려운 학생을 위한 단체에 기부하라 유언을 지켰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 대학교수였지만
그에게 크게 감동하는 한편 몹씨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훨씬 젊은 그가 산 삶에 비해 나의 삶이 너무도 보잘것 없어 한심해서이다.
그도 나도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했고 예수를 믿는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어쩌다 난 이렇듯 부끄러운 삶이 되었는지....
손교수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