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리 집안사람들 모두 어느 파티에 참석하게 된 날.
메어리는 가족 모두에게 최고급 옷을 사입도록 해주었다. 모두들 왕족다운 멋을 풍겼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오랫동안 빼앗은 것은 매기였다.
분홍빛 장미 꽃봉오리들이 수놓아져 있는 드레스를 입은 이제는 더이상 어린소녀가 아닌 그녀.
랠프신부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검정색 수단.
그것은 그에게 더없이 잘 어울리는 남성용 저녁 의상이었다.
<랠프 신부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이나 그 이후에도 매기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으며 저녁 내내 일부러 그녀를 못 본체했다. 마음이 상한 그녀는 응접실에서 틈만 나면 그를 찾으려고 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로서는 만약 그가 매기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관심을 나타내게 되었을 경우 서로의 평판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싶어서 조바심을 쳤다.
매기와 마찬가지로 그도 춤을 추지 않았고 매기와 다름없이 그도 많은 시선을 끌었는데 그들은 그 방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오늘밤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미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는데 거기 모인 다른 모든 젊은 여자들보다 그녀가 훨씬 빛이 난다는 사실에 그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날 새벽 메어리와 랠프 신부의 대화 중..
< "난 당신을 매기에게 빼앗겨야 했지만 그 애가 결코 당신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놓았어요."
"왜 매기를 그토록 미워하죠?"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을 텐데요. 당신이 그 애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건 사랑이 아녜요! 그 애는 내 인생의 장미꽃일 뿐, 내가 절대로 소유할 수 없는 아이에요.
매기는 하나의 개념에 불과해요, 메어리. 단지 개념이라구요!"
... 중략 ...
그녀의 말이 옳다.
위선자! 철저한 위선자!
성직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그 두 가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 아니다, 둘다 아니다, 성직자와 남자는 공존할 수가 없으니- 인간이 되려면 성직자는 될 수 없다.
어찌하여 나는 메어리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을까?
그녀가 짐작하거나 알 만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직 덧없음과 외루움뿐, 의심과 고통,
난 그것을 억제하고 지배하고 굴복시킬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긴 세월을 소모했다.
누군가 공동묘지 쪽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났다. 분명 매기였다.
"매기! 울지마!"
그녀에게 다가가 이슬이 내린 잔디밭에 앉으면서 그가 말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랠프 신부가 건네 주는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았다.
"넌 그 화려한 옷을 갈아 입지 않았구나. 자정 때부터 계속 여기 있었니?"
"네."
"매기! 대체 왜그래?"
"신부님은 오늘밤 나한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어요."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자 매기. 날 봐.
파티에서 넌 누구보다도 예쁜 소녀였단다. 그리고 내가 드로게다를 지나칠 만큼 자주 방문한다는 것도 이미 모두들 알고 있었고. 나는 성직자란다. 그래서 난 의심을 살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데 사람들이 과연 순수하게 이해해 줄는지도 모르겠구나. 신부치고는 난 꽤 젊고 못생기지도 않았으니."
"신부님!"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안심해. 그건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구나.
너도 알 테지만 넌 이제 젊은 아가씨야. 하지만 넌 아직 나에 대한 네 애정을 숨기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고,
그래서 만일 남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속에서 내가 너한테 얘기를 걸지 않도록 조심을 하지 않았다면 넌 충분히 남들의 오해를 살 만큼 나를 쳐다봤겠지."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이내 옆모습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네, 알겠어요 신부님. 전 그걸 전혀 몰랐어요."
"자, 이젠 집에 가서 쉬어야 하지 않니?"
"저 갈게요. 사람들이 신부님을 이해해 주기를 바래요. 신부님은 결백하시니까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은 메어리의 야비한 조롱보다도 그의 영혼에 더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래, 매기 네 말이 맞아. 난 그렇지 않아."
그는 벌떡 일어서며 묘하게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감돌았다.
"안녕히 가세요. 신부님."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수그려 그 손에 키스를 했다.
"잘 가라. 매기.">
그날 새벽.
랠프신부를 사랑했던 메어리는 랠프 신부와 교회에 그녀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하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그리고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매기와의 관계를 끊어버릴 것을 요구하며...
그 유언장을 본 랠프.
1천 3백만 파운드라, 그것은 정말 매기가 나타나기 전에 그가 노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출현과 함께 그는 매기가 상속받을 재산을 냉혹하게 속여 빼앗으려는 그런 싸움을 계속할 수가 없어 단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의 재산이 얼마였는지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는 실제보다 10분의 1도 안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1천 3백만 파운드!
비록 교회가 돈이 많다고는 하나 1천 3백만 파운드는 바티칸 입장에서도 감히 코웃음을 칠 일이 아니었다.
야심가득한 랠프는 결심을 하게된다.
(훗날, 메어리의 유산으로 교회에 내어준 것이 랠프 신부가 추기경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 된다.)
<길리에 남아서 매기가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것을 본다는 것은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보지 않으면 잊게 되리라.
그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오직 아픔을 느꼈다. 그럴 만한 여지는 없었으니 배신의 고통이랄 수는 없다.
다만 그녀를 떠나야 한다는 고통!
갑자기 랠프 신부가 미친 듯 웃어제쳤다.
"왜 그래요, 신부님?"
"난 너를 팔아버렸단다. 매기야! 은전 1천 3백만 개를 받고 말이다."
"나를 팔아요?"
"이를테면 그렇다는 얘기야. 이리 와서 앉아. 우리들이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신부님 얘기는 내가 나이를 먹고 사람들이 우리들에 대해 수군거릴지 모른다는 거죠?"
"꼭 그런 것만은 아냐. 내가 떠날 거라는 거지."
"언제요?"
"며칠 안에..."
"아, 신부님! 그럼 전.. 프랭크(첫째 오빠가 떠남)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질 거예요."
"나에게는 평생 그 어느 것보다도 더 힘들지. 위안이 없으니까.. 너한테는 적어도 가족이 있지만..."
"신부님한테는 하느님이 계시잖아요?"
"그래, 매기야. 네 말이 맞다. 너도 어른이 다 됐구나."
"한 달만 있으면 전 열일곱이 돼요, 신부님."
" 17년동안 넌 줄곧 고생을 했구나.. 넌 한가한 때는 무슨 생각을 하지?"
"음, 오빠들과 동생들, 아빠, 메어리아줌마, 그리고 승마와 날씨, 채소밭, 그리고 내일은 뭘 할까 하는 거지요."
" 넌 남편을 만날 꿈을 갖고 있니?"
"아뇨! 내가 아기를 심고 싶을 때가 되면 (순진한 매기는 이렇게 표현함;;ㅋ) 구해야겠지요.
아기한테 아버지가 없다면 좋지 않아요."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무지와 도덕이 묘하게 복합된 존재였다.
이윽고 그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 손으로 그녀의 턱을 받치며 내려다 보았다.
"매기야! 난 너를 좀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는 걸 얼마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단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얘기를 할 때 넌 사실대로 얘기해 주지 않았어."
"저는...."
그녀는 더듬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넌 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얘기하지 않았어. 내가 떠나는 것이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르겠다.
넌 사춘기의 연애에 빠지기는 했지만 열일곱 살의 나이치고는 어른답지 못해. 그렇지 않니?
그런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나도 알지. 나도 많이 괴로워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녀는 뭔가 얘기하려고 했으나 끝내 눈물을 떨구었고 머리를 저었다.
" 내 말 들어봐 매기. 그건 한때의 감정에 지나지 않아.
네가 여자가 되면 네 남편이 될 남자를 만날 것이고 넌 살기에 바빠서 내 생각 따윈 하지 않게 될거야.
그저 너를 도와준 옛 친구로나 기억을 하겠지.
매기야! 네가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널 사랑한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건 남자로서 사랑한다는 뜻이 아냐.
난 성직자이지 남자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에 대한 꿈으로 머릿속을 채우지 마.
난 떠날거고 이곳을 잠깐 들를 일도 없을 것 같아."
무거운 짐에 눌리운 듯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지만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만약.. 성직자가 아니었다면 말이예요, 신부님은 저하고 결혼했을까요?"
문득 그는 신부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매기, 이제는 날 신부라고 부르지 마라. 내이름은 랠프야!"
그것은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이 결코 되어주지 못했다.
비록 그녀를 안고 있기는 했어도 그는 키스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그의 가슴 아래쪽에서 그녀의 작고 뾰족한 젖가슴이 닿는 야릇하고 난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두 팔이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타고 올라가 그에게 바짝 다가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애인으로서 누구한테도 키스를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으며 매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팔을 목에서 떼어내고는 어둠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린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 매기야!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구나."
아무 말 없이 그녀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4부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