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2009. 6. 10. 오전 1:42:12

글자
 
 
2009.5.31일 주일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매주일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미사를 근무를 핑게삼아 불참하였습니다.
 
대축일은 일반축일보다 중요하여 꼭 미사를 참례하여야하는데 그 날은 성령대축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마음 안에 불타 오를때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고자 부활절이후부터 성령강림대축일까지
 
매일 새벽미사를 꼬박꼬박 다니며 성령께서 제에게 오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매일미사를 꼬박 꼬박 나가면서 오시는 성령께서 나에게 무었을 하여 주
 
실 건지 또한 내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었인지를 돌이켜 봅니다.
 
실재적으로 내가 구하고 원하였던 것은 육적인 것이지 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내가 당시에 갖고있었던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혼란에서의 해방을 성령께서 저에게 오시어 자질구례한 고툥에서의
 
해방을 원하였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였던 것과는 달리 성경의 복음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
 
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
 
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1-23)
 
 
위 요한복음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즉 성령을 주시며  사도들이 가야 할 사명까지도 말씀해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제들은 베드로로부터 내려오는 사죄권의 임무를 계승받아 교회내에서 사죄권을 행사합니다.
 
또한 성령강림을 통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위하여 헌신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평화'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전쟁이 없는 상태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주시는 신적평화'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적평화 상태의 세상구현은 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신 다음,
 
세례자 요한이 붙잡힌 다음에 나타나시어 다음과 같이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이 말씀은
 
그 분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중심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 각 인간에게 선포하시는 말씀이며, 이 말씀이 세상에 구
 
현 될 때 비로소 하느님나라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완의 나라인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져 노력합니다.
 
예수께서도 당시의 사회 지도층과 지배계층과의 깊은 괴리로 인하여 붙잡히시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군중들은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 군중들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였던 그들이 아닙니까?
 
그들이 돌아서서 예수를 사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인간이 갖고있는 마음의 변덕과 현실의 계산에 약삭빠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갖고있는 나약함과 죄의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그 분께서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을 사도들로하여금 세상끝까지 전파되도록  성령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평화로운 세상, 하느님 나라가 구현될 수 있도록.....
 
우리는 항상 사제를 위하여 기도드려야할 것입니다.
 
또한 사제가 이야기하는 말씀의 뜻, 즉 내포된 핵심이 무었인지를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락방에 숨었던 제자들이 성령강림을 통하여 죽음도 불사하는 용기를 갖고 복음을 선포한 열정은 바로 성령
 
의 활동이었으며 그 성령께서는 언제나 세상 안에 활동하고 계심을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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