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는 조선천주교회의 장래를 위해 자신과 같은 현지인 성직자의 확보가 대단히 중요한 일임을 생각하고 몇 명의 소년들을 선발하여 신학생 예비 교육을 시켰다.
이들중 이만돌(바울리노), 김요한, 임 빈첸시오는 페레올 주교의 명에 의해 신병으로 활동의 제한을 받던 다블뤼 주교에게 라틴어와 교양 지식 을 약 4년간 받은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최양업 신부는 1854년 3월 황해를 건너 조선 대목구로 잠입한 장수(Jansou,楊) 신부가 타고 온 중국 배편에 자신이 선발하고 예비 교육을 해오던 소년 3명(이만돌,김요한,임 빈첸시오)을 조선 대목구의 신학생으로 유학을 보냈다. 5월 19일 파리 외방전교회의
홍콩 경리부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1년 정도 머문 후 이듬해(1855년) 6월 페낭신학교로 유학 조치되었다 .이들 중 이만돌(바울리노)은 페낭 생활에 적응치 못하고 결국 1년 4개월 만인 1856년 10월 페낭을 떠나 홍콩으로 돌아왔고, 1861년김 요한과 임 빈첸시오는 페낭에서 7년간 공부한후 1863년 6월 귀국하여 4월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지 4년 만에 조,그들이 유학을 떠난 후에 설립된 배론의 '성 요셉 신학교' 에서 상급 과정의 교육을 받으며 사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귀국한(旋風)에 휘말려 서 선 전역을 엄습한 병인대박해의 선풍품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출국 당시 연령: 이만돌(바울리노) 23세, 김요한 20세, 임 빈첸시오 18세.
최양업신부와 3명의신학생
2012. 6. 26. 오후 5: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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