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울뜨레야 개최

2008. 11. 19. 오후 2:49:34

글자
꾸르실료 운동은 이 땅에 상륙한 지 4 년이 조금 넘어서면서 급속도로 14개 교구에 전파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운동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여성 꾸르실료 또한 안동과 제주 교구를 제외한 전국 모든 교구에 뿌리를 내렸다. 따라서 교회의 모습도 수동적이며 침체된 상태 에서 능동적이고 활력에 넘치는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하느님의 자 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1요한 5, 4) 내는 끈질긴 생명력 그 자체였다. 마치 나무가 어떤 식으로든 씨앗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바로 그 씨앗 속에 특별한 열매를 맺게 하는 유전적인 특성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열매는 다른 열매와 구별될 수 있었다. 그 씨 앗은 꾸르실료 운동에 생명을 주었고 계속해서 지금도 꾸르실료 운동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꾸르실료 운동에 뒤이어 도입된 '보다 나은 세계 운동' (MBW : Movement for Better World), 성령 세미나, ME(Marrige Encounter) 등등 바야흐로 우리 한국 교회는 풍요로운 성령의 빛의 광장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꾸르실료 운동이 전국적으로 정착하면서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세계 만방의 주교들에 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 그대로였다.
"가톨릭 교회의 성스러운 교계 제도 안에 계시는 여러 주교님들께 에르바스 주교님은 교회 내의 복잡 다난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아직까지 알지 못한 가장 효과적이고 정교한 방 법으로 고안된 한 자루의 좋은 연장을 여러분의 수중에 쥐어 드립니다. 이것은 다름아닌 전투적 인 꾸르실리스따, 가톨릭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쇄신 운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 생활을 그리스도적으로 바꾸었고, 본당에는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액션 단체에는 생기를 불어넣었고,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성소를 개발한 업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알지 못한 가장 효과적이고 정교한 방법으로 고안된 한 자루의 좋은 연장'이 바로 꾸 르실료 운동이다. 이처럼 전국 울뜨레야는 교회에 활력을 심어주고 성직자와 수도자 및 신자들 에게 다 같이 신앙의 기쁨을 안겨주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것은 신앙의 혁명이었다. 1970년 10월 24일에 처음으로 열렸던 전국 울뜨레야는 꾸르실리스따들??3박 4일 간의 환희를 다시 한 번 재생시켜 줌으로써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크리스찬 활동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전진 기지 역할을 하였다. 특별히, 1971년 10월 9일 대구 효성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제2차 전국 울뜨레야는 꾸르실료 운동의 붐이 일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참석자만 해 도 제1차 전국 울뜨레야 때의 194명에 비해서 729명이나 되었고 교황대사 로톨리 대주교와 서 정길 대주교 등 무려 9명의 주교가 자리를 같이하여 한국 교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 하게 보여주었던 모임이기도 했다. 또 제2차 전국 울뜨레야에서는 결의문을 채택하여 일반의 관 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각종 매스컴에 꾸르실료 운동이 소개되고 보도 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꾸르실료 운동 역시 역사의 흐름에 많은 지장을 받은 바도 있다. 가령 1972년 10월 에는 이른바 '10월 유신'으로 전국 울뜨레야를 개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듬해 10월 24일 서 강대학교에서 제3차 전국 울뜨레야가 열렸는데, 이날은 제2차 전국 울뜨레야 때보다 더 많은 꾸 르실리스따들이 모여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꾸르실리스따들은 힘에 넘쳐 있었고 미래를 응시하 는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꾸르실리스따들의 현대적인 소명 의식을 말함으로써 심금을 울 렸고 교황대사 도세나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꾸르실리스따들의 교회에 대한 공헌을 높이 치하했 으며 대회 선언문도 채택되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꾸르실리스따 1,300명은 한결같이 꾸르실 료 운동이야말로 신앙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음을 실감했고 또한 꾸르실료 운동이 장차 한 국 교회에 공헌하게 될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79년 10월 9일 인천에서 열린 제8차 전국 울뜨레야에서


수환 추기경은 꾸르실료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꾸르실료가 한국에 도입된 지 12년, 길다면 길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은 세월 동안에 꾸르실료 운동이 우리 나라에서 참으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꾸르실료가 이처럼 전국적으로 회원을 가지 고 발전한 것은 전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꾸르실료만 그 동안에 발전 해 온 것이 아니라 꾸르실료가 발전하면서 한국 교회가 꾸르실료를 통해서 크게 발전을 해왔습 니다. 꾸르실료를 통해 모든 분들의 신앙심이 깊어졌고, 이 꾸르실료 운동이 우리 나라 신자들 의 신앙 교육에 크게 이바지했고, 우리의 생활 전체를 새롭게 쇄신하는 활력소를 가져왔다고 봅 니다. 또한 꾸르실료 도입은 평신도 사도직 활동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참으로 생동하는 교회 를 이룩해 주었습니다. 진정 지난 12년 동안에 꾸르실료가 우리 교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남 겼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꾸르실리스따는 3,500여 명, 그 후 1년이 지난 1980년 10월 9일 대전 충무 체육관에서 열린 제9차 전국 울뜨레야에는 5,000여 명의 꾸르실리스따가 참석하여 교회를 놀라 게 하였다. 그들은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요한 1, 8) 왔다. 이처럼 전국 울뜨 레야에 참석하는 꾸르실리스따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숫자가 많아졌고 외부에서 보면 어떤 정치 세력 집단의 모임으로까지 보여졌다. 그리하여 정보 기관에서는 부랴부랴 꾸르실료 운동을 내사 하기 시작했고 주의깊게 꾸르실료 운동의 방향을 가늠하기도 했다. 바로 이 무렵, 매년 전국 울뜨레야를 개최하는 것은 어쩌면 그 성과에 비해 낭비적인 요소가 크고, 나아가 교구간의 조화 를 깨트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대두되었다. 한편 그런 의견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 는 의견도 만만찮았고 혹시 정보 기관이 여론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이때쯤에 일 어난 흐름이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는 1984년까지는 전국 울뜨레야 개최를 잠 정적으로 보류해야만 했다. 그것은 꾸르실리스따들에게 많은 실망과 의구심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87년 5월 5일 한국 꾸르실료 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제10차 전 국 울뜨레야가 대구 실내 체육관에서 '성체와 교회'를 주제로 개최되었다. 전국의 3만 8천여 명 의 꾸르실리스따 중 1만 5천여 명이란 엄청난 숫자의 꾸르실리스따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제9차 이후 7년 만에 감격의 재회를 하였다. 이날 전국 울뜨레야에는 윤공희 대주교, 이문희 대주교 를 포함하여 7명의 주교와 100여 명에 이르는 사제 및 해외 한인 교회 꾸르실리스따들이 자리를 함께하였는데, 이 행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사랑을 나누는 한 형제 자매임을 뜨겁게 체 험한 감격의 현장이었다. 제10차 전국 울뜨레야 개최 책임을 맡았던 대구대교구 꾸르실료 사무 국 주간 최윤수 형제는 그날의 감격을 이렇게 전한다. "꼭두새벽부터 밀려 들어오는 형제 자매 님들의 가벼운 발걸음하며, 대형 버스들의 대열 속에서도 오가는 반가운 인사가 마치 멀리 떨어 져 있던 혈육들이 서로 만난 것처럼 정다웠고, 열광하는 꾸르실리스따들의 환호 소리는 우리 모 두가 진정 하느님의 귀한 자녀요 한 형제 자매임을 드러내는 뜨거운 응답이었습니다."
꾸르실료가 20주년 성년이 됨을 기념하는 이 자리는 또한 4,13 호헌 발표 이후의 현시국을 개선 시키기 위해 정의와 평화를 드높이 외치자고 꾸르실리스따들이 결의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조규철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성숙한 단계에 접어든 한국 꾸르실료 운동을 되돌아보며 꾸르실료 이후의 활성화 문제 등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 고 분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김옥균 주교는 세례 갱신식에 앞서 행한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강조하였다. "오늘날 사회는 불 의와 폭력과 부정 부패, 격심한 빈부차, 윤리 도덕의 타락성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를 빰칠 정도 라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직자들이 나라의 민주화와 정의 구현을 위해 단식 기도하고 있 는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이 사회의 타락을 막고, 사람들을 하느님 께로 인도하는 역할은 우리 꾸르실리스따들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통감하는 신 앙 선언문과 결의를 다지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이 대회는 막을 내렸다.
제11차 전국 울뜨레야는 1982년에 열린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제13차 총회에서 4~5년에 한 번씩 꾸르실료를 열자고 논의한 대로 5년 뒤인 1992년 9월 27일 서울 올림픽 공원 제1체육관에서 열 렸다. 한국에 꾸르실료 운동이 도입된 지 25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는 김수환 추기경, 교황 대사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 이병호 주교, 이갑수 주교 등 고위 성직자와 50여 명의 사제와 1만 5천여 명의 꾸르실리스따들이 참석하였다. 제1차 꾸르실료 수료자이며 한국 꾸르실료 협의 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문창준 형제가 참석하였고, 또한 9월 24~26일 서울에서 열린 제7차 아시 아 태평양 지역 꾸르실료 총회에 참석했던 베트남의 반 투앙 대주교를 비롯한 각국 대표 100여 명과 꾸르실료 운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에두아르도 보닌 형제가 자리를 함께하여 기쁨을 더 해 주었다.
조반니 블라이티스 교황대사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착실하게 전달된 그리스도의 가르 침이 꾸르실료 운동에 앞장선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감화와 힘의 원천이 되고 꾸르실리스따들이 진정한 크리스찬 생활에 충만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기도하시며, 우리 모두가 구원의 복음에 대 한 확고부동한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 그 신앙을 전파하는 책임을 지도록 당부하 셨다"고 하며 참석자 모두에게 교황 강복을 전해 주었다. 꾸르실료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보닌 형제는 축사를 통하여, 꾸르실료 운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큰 무게를 지탱해 주 는 교회 건물의 주춧돌과 같다며, 이 운동이 더욱 발전하여 회원들이 나날이 늘어가도록 기도하 며 주님께 감사하자고 말했다.
또한 25주년 기념 미사 강론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은 꾸르실료 운동이 6만 6천여 명으로 늘어난 꾸르실리스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준 신앙 쇄신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25년 간 꾸르실료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 봉사해 온 모든 이들??감사와 격려를 전하였다. 이어 대회의 주제인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느님의 질문을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가 어 디에 서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강조하였으며, 순교 선열들의 믿음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랑을 깨 닫고 이웃을 사랑하며 기도하는 꾸르실리스따가 되기를 당부하였다.
이 울뜨레야에서 채택한 신앙 선언문은 꾸르실료 25주년을 맞아 전국의 모든 꾸르실리스따들이 "너 어디 있느냐?"는 주제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새 시대에 부응하며 새 시대 를 복음화하기 위한 신앙 생활의 지표를 다짐으로 담아낸 것이었다.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회장 김성진 형제가 대회사에서 밝힌 대로 당시 한국 교회는 교세가 270만 명으로 늘어났지만 성장이 점차 둔화되고 냉담자가 늘어나며 꾸르실료의 열기가 식어간다고 걱정하는 여론이 일어 '꾸르실 료 공의회'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자연히 꾸르실료 이후의 생활을 위한 질적 향상에 관심을 쏟아야 함을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 현실을 직시하고 순교 선열들의 정신을 본받으며 성찬의 정신을 생활로 실천할 것과 황금 만능, 인명 경시 풍조와 환 경 파괴 등 사회 현상을 주목하고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등 구체적인 실 천 사항들을 채택하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97년 10월 5일에, 제11차 울뜨레야가 열렸던 장소인 서울 올림픽 공원 제 1체육관에서 제12차 전국 울뜨레야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 행사에는 전국 14개 교구의 꾸르실리 스따들은 물론 해외 한인 교회 꾸르실리스따들과, 때맞춰 서울에서 열린 꾸르실료 세계대회에 참석하였던 세계 각국 대표 200여 명 등 모두 1만 5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각 대륙의 한인 교회 로 퍼져나간 꾸르실료 운동과 국제 무대에 서게 된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 였다. 1994년 7월 꾸르실료 세계 협의회 의장국이 된 우리 나라는 이 해에 제5차 꾸르실료 세계 대회를 서울에서 열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 꾸르실료 운동이 도입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경축하여 열린 이 울뜨레야는 꾸르 실료 운동이 도입되던 60년대 당시를 회고하고 장년을 맞이하는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쇄신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따라서 꾸르실료 운동이 처한 현실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고 꾸르실 리스따로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자는 뜻으로 그 주제를 '자, 일어나 바로 서라'라고 정하였다. 이 울뜨레야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교황대사, 김옥균 주교, 대만의 류 첸충 주교, 아르헨티나의 레알레 주교와 세계대회에 참석하였던 각국의 지도신부와 각 교구 지 도신부 등 70여 명의 성직자들이 참석하였다.
국무원장 명의로 전달된 메시지를 통해 교황은 서울에서 열리는 꾸르실료 세계대회와 한국 꾸르 실료 도입 30주년을 함께 기뻐하며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이때 꾸르실리스따들이 복음화를 위해 더욱 투신해 줄 것을 당부하고 강복을 전하였다. 교황대사는 축하의 인사를 하며 논어의 말씀을 인용, 인생에서 30세가 미래의 행로를 결정하는 바탕이 되는 중요한 시기이듯 꾸르실료 운동 30주년도 "일어나 바로 서야" 할 특별한 시기임을 강조하며 한국 교회가 광활한 대륙 아시 아를 밝히는 "동방의 빛"이 될 것을 당부하였다.
장엄 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한국 교회 발전에 있어 꾸르실리스따의 봉사 와 희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였다"며 숨은 노고를 치하하고 "마냐니따 때 만 난 주님과의 그 감동을 깊이 간직하여 이 세상 끝까지 꾸르실리스따로서의 사명을 다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날 채택한 5개 항의 탑?선언문을 보면, 꾸르실료 30주년을 돌아보면서 꾸르실 료 영성의 기초가 되는 자기 성찰을 끊임없이 해나가며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투신할 것을 거듭 다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최된 전국 울뜨레야 상황을 요약하면 앞의 〈표 4〉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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