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성인 순교화

2014. 6. 24. 오후 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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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당시 박회봉(이시도로) 주임신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 문학진(토마스)교수에게 '103위 순교복자 성화' 제작을 위뢰하였다.

작가는 10개월에 걸쳐 전례(오기선 신부),역사(유홍렬박사), 복식(석주선 선생) 등 전문가의 폭 넓은 자문과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한 분 한 분의 표정을 특색 있게 나타냈다.

시대와 신분이 각각 다른 순교자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천국의 개선을 기다리며 기쁨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움과 감격스러움을 안겨준다.

아름다운 도봉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삼아 향토적 정서를 만들어 냈으며 김대건 신부를

중심으로 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는 인물 상의 표정에서 성령이 충만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또한,굳이 서양의 천사처럼 날개를 그리지 않고도 바람에 나부끼는 옷 고름의 곡선만으로 비상할 수 있는 한국 비천상(飛天像)의 미학을 잘 담아 내고 있다. 이 성화는 1977년 7월 15일, 김수환 추기경의 축성으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그 후, 1984년 5월 6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이 성화에 모셔진 103위 순교복자 모두가 성인품에 오름으로써 '103위 순교성인화'가 되었다.

이 작품이 처음 제작될 때에는 명동 대성당이 소장하고 있는 '79위 복자성화' (1926년, 프랑스인 쥬스타니안 제작)와 같이 앵베르(라우렌시오) 주교를 중심으로 순교 복자들이 좌우 대칭으로 호위하고 있는 구도였다.

그러나 작가의 대부(代父)인 박갑성 교수 (당시 서강대 철학과 교수, 장발 선생의 제자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역임)가 "외국인이 중앙에 있으면 주체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고 한 말을 듣고 작가는 중앙에 있었던 앵베르 주교와 김대건 신부의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그 당시에는 이 일이 '쿠테타'(Coup d E tat)라고 말 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가 날로 자생력을 확보해 가는 것처럼 성미술에 있어서도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하나의 큰 결실(토착화) 이었다.

이 작품이 여의도 103위 시성식장에 나들이 다녀옴으로써 화면 곳곳에 박락 현상이 생긴 것을 1966년 8월 작가가 직접 혜화동성당에 방문하여 전면적으로 화면 보수를 하였다.

103위 순교성인화..... 원본이 혜화동성당에 소장되어있다.

원 본

가 로 330cm

세 로 285cm

1 호

가 로 91cm

세 로 79cm

2 호

가 로 66cm

세 로 58cm

3 호

가 로 48cm

세 로 43cm

4 호

가 로 38cm

세 로 33cm

5 호

가 로 29cm

세 로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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