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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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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디도서 3,1-7 사랑하는 그대여, 통치자들과 지배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언제나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백성이 되라고 교우들에게 깨우쳐 주시오. 그리고 누구를 헐뜯거나 싸움질을 하지 말고 온순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도록 가르치시오. 우리도 전에는 미련했고 순종할 줄 몰랐고 자주 잘못된 길로 빠졌고 온갖 욕정과 쾌락의 종이 되었고 악과 시기로 세월을 보냈고 남에게 증오를 받았고 서로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와 사랑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올바른 일을 했다고 해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 나게 하시고 새롭게 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총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상속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 루가 17,11-19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며칠 전에 명동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배가 너무나도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면서 식당을 찾았지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명동이라 그런지 음식점 역시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많더군요.
‘소머리 국밥을 먹을까? 아니면 자장면? 아니면 라면에 김밥? 아.. 돈가스도 있다.’
이렇게 한식, 중식, 분식, 양식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한 가지 더 있지요. ‘단식’이라고…….
저는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예전에 서울 가톨릭대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칼국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역시 그곳은 예전처럼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하겠구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칼국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문했던 칼국수가 나왔고요, 저는 입으로 호호 불면서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에 맛본 맛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맛있었는데, 그냥 어느 칼국수 집에서 먹는 맛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칼국수도 약간 남기고요, 서비스로 주는 밥은 손도 못 대고 나오고 말았지요.
나오면서 ‘왜 음식 맛이 달라졌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식당 안의 그 많은 손님들은 그 칼국수를 너무나도 맛있게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음식 맛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제 입맛이 달라진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누구와 함께 이 식당에 왔느냐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네요. 즉, 예전에 이곳 식당을 찾았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왔었지만, 이렇게 혼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하다 보니 밥맛이 없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렇게 맛없는 것도 맛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안에서 어려울 때에는 그래도 남들과 하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기게 되면 다른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때가 많고요, 또한 왜 이렇게 바쁜 일들도 많이 생겨서 남들과 함께 할 시간조차 나지 않는 것인지요.
오늘 복음을 봐도 그렇지요.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치유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치유의 은혜를 받고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자기를 치유해 준 주님께 감사의 인사도 하지 않고 말이지요. 왜 이렇게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일까요?
사실 그들은 ‘나병’이라는 큰 병이 있었을 때에는 그래도 함께 다니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과도 함께 했었지요. 그런데 치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는 또 다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려서도 안 되고, 또한 비록 자신을 치유해주었지만 이방인들과 어울렸던 예수님을 만나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으로 치유를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올림으로써 마음의 치유라는 은총까지 받게 됩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면 이렇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도 없게 되면서 사는 재미도 못 느낄 것입니다. 물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것들이 의외로 많을껄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늘 함께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물론, 나를 위해서도 함께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자기만 깨끗한 척 하지 맙시다.
어느 날 문득(정용철, 좋은생각 2004.11)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한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는 그를 믿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의심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그는 나의 사랑을 까마득히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나는 고마워하고 있는데 그는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떠나기 위해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는 더 머물기 위해 애쓴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벌써 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저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내 이름과 그의 이름이 다르듯, 내 하루와 그의 하루가 다르듯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