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시간에 자주 접했던 "순교자의 피와 땀으로 십자가의 신비를~"로 시작되는 <시복시성기도문>에서 한국천주교회가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시복의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평화신문사설과 복자의 정의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시복재판개정에 즈음한 평화신문 사설입니다 : 2004년7월11일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복재판 교회법정이 열렸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그 대상이다. 이번 시복재판은 이미 보도된대로 한국에서 처음이라는 기록외에 한국인 손으로 선정한 순교자를 한국인으로만 구성한 법정에서 열렸다. 중략 ~ ~
이번 시복재판 관계자들은 124명 가운데 122명의 순교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한다. 중략 ~ ~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시복이나 시성 대상에 오른 분들은 이미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그 자격을 인정받은 분들이라 할 수 있다. 중략 ~ ~
이번 시복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자기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셨던 순교자들의삶을 따라 배우는 값진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시복재판 준비 작업에 참여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현재 시복재판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 모든분들께 하느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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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 로마 가톨릭에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믿어져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사람, 즉 공경할 만한 성도[可敬者]에게 붙이는 존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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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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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성인(準聖人).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이같은 존칭에는 가경자(可敬者) ·복자 ·복녀 ·성인(聖人) 등이 있다. 여복자는 복녀(福女), 여성인은 성녀(聖女)로 특별히 구별하여 호칭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과 의탁(依託)이 있었는데, 차차 그들을 기념하는 날이 달력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대박해가 끝날 무렵, 그러한 공경이 신앙의 증거자에게로까지 확대되었고, 마침내는 뛰어난 그리스도교도의 덕행을 보인 사람들과 교회의 교의(敎義)를 발전시킨 학자, 성직자들에 대한 공경이 일반화되어갔다. 그 후 교회법(敎會法)은 이들을 공식적으로 현양(顯揚)하는 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덕행이나 순교의 사실이 분명하고, 또 그에게 의탁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우선 가경자로 추대하고, 나중에 다시 이들 중에서 시복 후보자를 뽑아 그 지역 주교(主敎)가 복자 ·복녀위(位)의 시복(諡福)을 신청한다. 그러면 재판소가 설치되고 그의 덕행이나 신앙을 위한 죽음 등의 증거를 수집하고, 그것을 전례위원회(典禮委員會)로 보낸다. 위원회에서는 이를 심의하여 교황에게 품신(稟申)하는데 보통 기적이라고 믿어지는 사례가 입증되면 복자 ·복녀의 품(品)을 받는다. 교항은 최종적인 심사를 주재하여, 시복(諡福)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시복된 사람을 남자의 경우에는 복자라 하고 여자인 경우는 복녀라고 부른다. 복자 ·복녀에 대한 공경 권역(圈域)은 어떤 도시나 교구(敎區), 지역 등지에 국한된다.
시복된 사람에 대한 그 이상의 기적이 확인되면 다시 시복의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 교황이 시성(諡聖)을 하여 성인(聖人)으로 추대한다. 한국에는 가톨릭 전래의 초기부터 겪은 박해의 결과로 1925년에 기해(己亥) ·병오(丙午)박해 때 순교자 79위의 시복을 시초로, 1968년에는 병인(丙寅)박해 때의 순교자 24위가 시복됨으로써 최초의 내국인 신부(神父) 김대건(안드레아)을 비롯한 103명의 복자 ·복녀가 탄생했으며, 그 103위가 1984년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