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삶
-사목헌장 9항 -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죽음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죽음은 인간을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꿈과 희망, 초월을 향한 염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비참함과 무한을 지향하는 초월적 희망 말입니다. 이것은 몸과 정신, 육체와 영혼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현실의 조건에서 늘 제약을 받고 그리고 제약은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정신력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목헌장 8항은 현대 세계에 나타난 불균형을, 9항에는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언급했습니다. 불균형은 개인적, 심리적, 가정, 종족, 계층 또는 국가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이기심과 분열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때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때, ‘구조 조정’ 새로은 사회 현상을 맞았습니다. ‘구조 조정’이라는 말은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조 조정은 성서적 표현으로는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왔다.”라는 말씀은 바로 세상에 대한, 종교에 대한, 신앙에 대한 근원적 구조 조정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리 외치셨어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빌라도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사건과 실로암 탑이 무너져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은 얘기를 통해(루가 13,1-5)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 인위적 재난은 바로 회개를 촉구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순과 불균형의 한 예로,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 돈을 버는 미국의 무기 산업, 그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교회는 낙태를 꾸짖고 단죄하며 생명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상의 무기 공장으로 돈을 버는 미국의 범죄와 돈으로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허구성이라고나 할까요. 때문에 경제 위기와 함께 교회의 자세도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시대를 고발하고 꿈을 간직한다는 것은 곧 창조적 구원의 삶이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