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기인 묵주기도.

2006. 9. 8. 오후 4: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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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무기인 묵주기도


성모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 평신도 사도직을 통해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성화되고, 그 거룩한 모습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거룩함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데, 그 최전방에 레지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속됨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레지오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하기에 명예와 물질의 위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세상에 안주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허약한 마음으로 인해 세상의 힘에 대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모님의 간구와 성모님이 성삼위 하느님께 향한 믿음에 의지해 세상에 도전해야 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우리들의 봉헌물과 세상을 향한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무기는 묵주기도입니다.

묵주기도의 기원

묵주기도는 일반적으로 성 도니미코에 의해 태어나고 보급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2세기경에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글을 모르는 문맹의 수도자들에게 수도자로서 바쳐야 할 150개의 시편 대신에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그 수만큼 드리도록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묵주기도는 "성령의 도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적으로 발전해갔습니다. 반복하는 기도 중에 50회씩 -초기에는 성모송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부분인 두 번째 부분이 아직 없었습니다. - 성모송의 3부분중 첫 부분인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부분을 주로 외워 읊었습니다.

13세기에 영광송의 삽입되었고, 16세기 경 칼카르의 카르투지오회의 엔리코 수사가 성모송과 성모송 사이에 주님의 기도를 삽입하면서 10회씩 15단으로 나누기를 제안하여 묵주의 기도문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묵주기도는 단지 소리내어 외서 하는 염경기도에 불과했으나 1410~1439년경에 쾰른의 카르투지오회의 한 수사와 프러시아의 도미니코에 의해 성모송 사이에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를 환기시키는 말들이 첨가되면서, 묵주기도는 단순한 염경기도를 넘어 관상기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 첨부된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말씀으로, 염경기도인 동시에 묵상기도가 된 이 "새 묵주기도"는 도미니코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1428-1478)에 의해 만들어진 묵주기도회의 형제들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그에 의해 50회씩 3번 드리는 묵주기도는 강생과 수난과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영광에 집중한 3가지 신비의 묵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또 다른 도미니코회의 알베르토 다 카스텔라노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를 환기시키는 말을 이미 선택된 15단의 신비에 대한 해석으로 간주하면서 "신비"에 관한 묵상들을 주님의 기도에 묶게 됩니다. 이렇게 단순화하면서 현재의 묵주기도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 비오 5세 교황님께서는 1569년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 교서에 최종 형식의 기도문을 확인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묵주기도를 봉헌하면서 그 신비들을 묵상하며 신비를 통해 구현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신비 안에 담긴 삶을 우리의 생활 안에서 모방하려고 합니다(1573년 제정된 묵주기도의 축일을 위한 미사 기도문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묵주기도 안에 드러난 신비가 단순히 성모님께만 국한되지 않고, 성모님이 이 세상에 낳아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즉 빛의 신비 -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성체성사 제정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공생활의 신비 - 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인 성녀들의 거룩한 영웅적인 삶 안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거룩한 여정인 하느님의 길’에 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용기를 얻게 되는데, 특별히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나 폼페이의 묵주기도 사도인 복자 바르톨로 론고가 살았던 묵주기도의 신비의 삶을 통해 묵주기도가 일반적인 기도를 성덕으로 올려주는 기도이며, 우리들의 영혼을 드높은 관상으로 들어 올려줄 수 있는 기도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악의 경향으로 향하는 세속에 대항하는 무기인 묵주기도를 통해 우리들이 세상을 더욱 성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3년 전교주일에 하신 담화를 통해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묵상할 때 우리는 교회 사명이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매일 묵주기도를 봉헌함으로써 레지오 마리애의 사명을 더욱 깨닫게 되므로 마음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묵주기도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날도 무더우니 그리스도를 담아 넣을 나의 육체를 위한 건강도 영혼을 더욱 거룩하게 할 기도도 하기 싫더군요. 그때 실천불교 의 홍보자라 일컬어지는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의 책 「기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무더위로 인해 습관적으로 무의미하게 기도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하느님께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분의 삶에 담긴 지혜를 그대로 인용할까 합니다.


기도에 필요한 에너지

전화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화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화선에는 전기가 들어와 있어야 한다. 선풍기는 냉장고, 책상 위의 작은 전구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도도 같은 원리로 실행된다. 기도를 할 때 믿음과 자비*, 사랑의 에너지는 전력 구실을 한다. 그러한 전력 없이 기도를 한다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 불자가 아닌 저 개인적인 가톨릭적 입장에서는 ‘자비’의 자리에 향주삼덕인 신(信)망(望)애(愛)의 희망으로 바꾸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마음챙김과 집중, 통찰의 에너지

우리는 기도드리는 대상을 떠올려 전화선을 연결했다. 이제 그 전선에 전류를 보내야만 한다.

기도에서 전류는 마음챙김과 집중, 통찰의 힘이 된다.

마음챙김은 의식을 현재에 집중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주의 깊게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과거를 생각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몸은 현재에 있어도 마음은 현재에 있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서 온전히 ‘지금, 여기’에 존재할 때, 기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묵주기도를 우리의 육체, 정신 그리고 영혼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육체와 영혼, 정신을 기도드리는 그 자리 그 시간에 함께 초대하여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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