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의 하느님 섬김 3

2006. 8. 2. 오후 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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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의 하느님 섬김 3


이번 9월도 지난 8월에 이어 레지오의 하느님 섬김(봉사)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지난달에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의 말씀, 즉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교본이 하느님의 섬김에 있어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선택하면서, 그 말씀을 사셨던 인물로 특별히 교본이 왜 소화 데레사를 거론하고 있는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Teresia) 동정학자는 마태오 복음 7장 13,14절 말씀처럼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외형적으로는 불편하고 힘들어 보이나 하느님의 길인 ‘작고 좁은 길’을 선택하면서 세상을 본받지 않았으며 하느님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여 세상과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며갈 레지오 단원들은 하느님을 섬김으로 맞닿게 될 고통과 그 노고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3. 노고와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된다.(2코린 11, 27)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코린토 후서)은 초대 교회의 선교 상황과 사도 바오로 자신의 선교 활동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를 담고 있으며, 삼위일체 신앙(13,13)을 가장 명백하게 전해주는 성경이기도 합니다.

학자들 간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코린토 후서는 1-9장은 ‘화해의 편지’ 10-13장은 ‘눈물의 편지’로 구성되었습니다.

‘눈물의 편지’는 에페소에서 55~57년 사이에, 눈물의 편지보다 6개월 뒤에 ‘화해의 편지’가 마케도니아에서 쓰여졌다고 봅니다. 눈물의 편지, 화해의 편지라 말하는 것처럼 사도 바오로의 편지 중에 서간만큼 격양되고 흥분되 어조로 쓴 편지는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문제로 티도와 다른 협조자 한 사람과 코린토 교회에 파견되었을 때, 코린토 교회는 거짓 사도로 인해 바오로를 부정하고 그의 파견자들을 거부하면서 그와 그의 협조자들을 심한 모욕과 비난을 받고 에페소로 떠나게 됩니다. 그로인해 슬픔에 싸인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과 코린토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교본이 인용한 코린토 후서 11장 27절(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은 그의 고난과 수고를 잘 드러내 줍니다.


희랍어로 ‘고통을 겪다’라는 단어 Πἀσχω(파스코)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을 경험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어떤 것’은 주로 나쁜 일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를 그리스도 또는 복음을 위해 겪는 괴로움(2코린 1,7; 2티모 3,12)을 의미할 때 사용하면서(말씀의 네트워크, 고난 편 참조), 하느님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2티모 3,12)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단원들은 하느님을 위해 겪어야 할 모든 고통을 애써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고난을 하느님의 좁은 길로 들어 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만큼 그분의 ‘축복’으로 이해하고, 당신으로 인한 고통을 겪을 때 하느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1베드 4,13-19).


이런 고통의 영성적 이해는 많은 성인의 삶 안에서도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들만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면서 많은 노고와 고난을 느끼셨겠습니까? 교본이 거론하듯 ‘최근의 사태’(레지오 훈화집 42쪽 참조, 최경용 신부님은 자신의 저서 ‘레지오 마리애 훈화집’에서 「최근의 사태」를 중국 공산당으로 인해 레지오 마리애가 겪는 중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은 1937년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하였으나 발전하지 못하다가 47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이든 맥그래드(Aedan McGrath) 신부에 의해 3년만에 3개의 세나뚜스가 설립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49년부터 중국 공산당 정권을 잡으면서 가톨릭을 박해하고, 선교사들의 추방하였고, 그로인해 중국교회는 많은 어려움이 겪게 되었는데, 특별히 레지오 단원들은 57년 로만 가톨릭에 거슬러 중국에서 결성된 ‘애국 가톨릭교회’를 반대하던 레지오 단원들 2만 명이 투옥되고 그중 2천명이 순교하였습니다.)는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태리에 있는 동안 알고 지냈던 베트남 신부는 서품을 받은 지 10년이 넘었으면서도 여권 상의 직업은 농부이며, 영어 교사이며, 정부에서는 신학생으로만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그 이유는 정부가 그를 신부가 된 사실을 알면 신부들 간의 친교와 주교와의 만남을 억압하는 사회주의 국가 상황에서 종교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 내전과 부정부패로 인한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위한 증거의 삶을 살다가 미사 중이나 봉성체 중에 살해당한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이태리에 있을 때 함께 사귀게 된 콜롬비아 친구신부가 어느 날 자신의 신학교 동기인  음악을 참으로 사랑하던 신부가 미사 퇴장 중에 정부에 대한 올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총으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성하듯 오열하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의 죽음은 나의 아픔이고 고통이며 우리의 죽음인 듯 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영웅적인 행위는 성실한 레지오 단원이라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숨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번쯤 인내와 용기를 요구하는 사도직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악의 세력이 행하는 듯 벌이는 비난과 모욕, 비웃음과 그의 거만한 태도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은 마치 그 상황이 하느님의 선물인양 기쁘게 받아야 하며, 육체적 피로와 비신앙적인 태도로 인한 그들 타락 행위를 통해 겪는 영혼의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해 가면서 레지오 단원이 짊어질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지고 간다면, 하느님이 간절히 원하시고 성모님이 함께 하신 그 사랑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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