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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전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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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포도주 - 땀과 노동의 결실 본당 신자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예물을 바치고 싶다며 찾아왔다. 35세의 소박한 부인이었다. 미장업을 하는 남편과 두 자녀를 돌보고 도시락집 또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신자였다. 열 돈짜리 금을 내놓으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가져왔다고 하였다. “영세한지 얼마나 되셨지요?” “5년 되었습니다. 당시 성당 건물도 없던 천막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후 모든 일이 잘되었습니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전셋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까지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은혜지요. 남편은 신자가 아니어서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해 제가 모은 것을 적지만 감사의 표시로 드립니다.” 성실한 신자의 예물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이 열 돈짜리 금이야말로 노동의 결실이요 땀의 소산이 아닌가. 온갖 애환과 피눈물이 섞여 있지 않겠는가. 이 예물은 봉헌자의 마음이요, 정성이며, 생명이요, 진정한 봉헌이 아니겠는가.
주님의 식탁 준비 최후만찬 당시의 준비 상황을 생각해 보라. 해방절이 다가왔다. 회식할 장소가 필요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장소를 일러주었다. 제자들은 명령대로 해방절 회식을 준비하였다. 저녁때가 되어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음식을 잡숫고 계셨다(마르 14,12-21 참조). 여기서 회식의 중심인물은 누구였는가? 그리스도였다. 중심행사는? 식사였다. 음식의 종류는 빵과 포도주였고 예수님 말씀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오늘의 미사도 같은 상황이며 같은 뜻을 전하고 있다. 성당의 중심부분은 제대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제대를 중심으로 모인다. 제대는 제사와 감사의 중심이며 예수 친히 최후만찬을 거행한 식탁이다. 거룩하고 순결한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제대를 흰 보로 덮고 그 위에 십자가와 촛불을 켠다. 촛불은 부활, 생명, 봉헌, 제사, 사랑을 표시한다. 제대 위에는 성체포, 성작과 성작 수건, 미사전례서 등을 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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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해 둔다. 이 모든 준비는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며 ‘주님의 식탁’(1고린 10,21)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미사 중 봉헌이란 말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자신의 죽음을 지칭한 것이다. 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또는 ‘계약의 피’로서 바친 봉헌행위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1고린 11,26) 이 봉헌된 살과 피의 형상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실 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봉헌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예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형제와 공동체에 대한 배려요 준비이다. 그리스도께서 참 사제로서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제헌하며 우리도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예식에는 봉헌이란 말 대신 ‘예물 준비’라고 표현하였다. 물론 지금도 봉헌의 의미가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예물 준비 예식 원래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데는 아무런 예식도 없었다. 초기 호교론자이며 순교자인 유스티노(167년경 사망)는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가 끝난 후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왔다고 하였다. 1세기 이후부터 점차 신자들이 예물을 들고 제대를 향하여 행렬하였고 사제나 부제가 그것을 받았다. 5세기경에 시편과 따름노래(Antiphona)를 노래하며 행렬하였다. 중세기에 행렬이 없어졌다가 현행 예식대로 새로이 실시하고 있다. 화폐의 발달로 11세기에 헌금이 시작되었다. 빵과 포도주 외에 금전이나 다른 예물도 바쳤다. 추수감사절 미사에는 농산물이 넘치도록 쌓였다. 이 모든 예물은 인간의 노동으로 생산된 것이다. 가난한 형제들과 교회를 위한 금전이나 혹 다른 예물도 교우들이 직접 바치는 것이 좋다. 이런 물질적인 희사는 이웃을 돕자는 사랑의 발로이다. 좀더 넓게 보면 세상과 교회를 위한 책임 이행이다. 그러나 헌금은 감사송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끝내도록 주의할 것이다. - 새 미사 해설 중에서 - | ||
성찬전례 (빵과 포도주,주님의 식탁준비,예물 준비 예식)
2004. 10. 4. 오후 2: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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