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

2023. 2. 5. 오전 5: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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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일 일요일


[연중 제5주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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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리라.>(이사58,7-10)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화답송시편 112(111),4-5.6-7.89(4)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네.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2독서<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였습니다.>(1코린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연중 제5주일 제1독서(이사58,7-10)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 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7~9)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단식은 1년에 1회였다. 유다력으로 7월 1일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로서 모든 백성이 화제(火祭)를 드리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단식함으로써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날이었다 (레위23,26-3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의 규정 외에도 그들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자주 단식일을 정하여 단식하곤 하였다(판관20,26 ; 1사무7,6 ; 31,13 ; 즈가8,18-19 ; 에스4,16). 더욱이 예루살렘 성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이래로 그들은 무려 칠십년 동안이나 오월과 칠월에 날짜를 정해놓고 특별 단식을 했다(즈카7,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형식적인 단식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는 단식은 유다 백성이 전멸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테르를 위시하여 전 유다 백성이 행했던 단식(에스4,16), 이방 니느웨 백성들이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듣고 했던 단식(요나3,5-10), 그리고 역시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들은 아합이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했던 단식(1열왕21,27-29)등과 같은 회개가 동반된 진실한 단식이었다.


반면에 이사야 58장 3절에 제시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단식은 마치 이방인들의 자녀를 불살라드려 우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 했듯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여 하느님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 의식적 행위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심령으로 통회하며 회개에 부합된 자세를 취하는 자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사57,15)을 깨닫지 못하였다.


죄에 대한 쓰라린 뉘우침과 진실한 삶의 변화를 지향하고 수반함이 없이 하느님의 축복을 끌어내기 위한 단식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책망하셨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단식에 대한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밥을 굶거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것은 혹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속죄일에 하는 단식의 영원한 규정 (레위16,31; 23,26-32)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단식의 외적 규정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밥을 굶어 자신의 육체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본문에 제시된 것처럼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단식을 하는 목적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 위함인데, 자신은 정작 자신의 자비를 기대하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억압하고 학대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모습이며,그런 삶을 사는 자가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사야 58장 6~7절에는 바른 단식을 하는 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 각각 네가지씩 나열되어 있다. 이사야서 58장 6절의 네가지 한 마디로 '자유'이며, 이사야서 58장 7절 네 가지'실천적 자비'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경험한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탈출20,2; 신명8,2`4; 예레29,10; 이사53,1~12; 55,1~7).


'불의한 결박'이란 주인 혹은 권세자가 종이나 백성들에게 부당하게 채운 족쇄나 결박 지칭한다.

'멍에'(mota; 모타) 소나 나귀의 목에 지운 멍에 혹은 소의 코뚜레 같은 것으로서 사람이 힘있는 짐승을 몰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힘을 지닌 자가 힘 없는 자들, 곧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하는 비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다 생생하게 전한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는 자들과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는자들 사이에 서서 그것을 중단시키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억압받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 '레추침'(retsutsim)의 원형 '라차츠'(ratsats)는 원래 강한 타격을 가하여 산산조각으로 박살내 버리는 것 의미한다. 권세자에게 압제와 학대를 당하고 삶의 모든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불쌍한 사람들 말한다(판관10,8 ; 2역대16,10 ; 아모4,1).


'자유롭게'에 해당하는 '호프쉼'(hopshim)이란 표현은 '펼치다','해방하다'등의 의미를 지닌 '하파쉬'(hapash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일반적으로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된 상태 의미한다(탈출21,2).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구조적, 제도적 부조리로 얼룩져 있었고, 기득권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착취를 합리화하던 상황을 전제 하고 있다.

이들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부조리한 멍에를 벗겨내며 육체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단식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사야서 58절 7절에서는 단식의 참된 정신 가운데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열거법을 사용해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의식주라는 인간 생존을 위한 3대 필수 조건과 혈육(골육)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열거되고 있다.


'굶주린 이' 영적인 의미 보다는 문자적 의미가 더 강하다. '굶주인 이' 해당하는 '라라에브'(laraeb)의 기본형 '라에브'(laeb)는  단지 한두끼 굶어 배고픈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여러 끼니를 걸러 배가 고파 쓰릴 정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야고2,16).


'떠도는 이들' 단순히 집이 없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국가와 집을 잃고 떠돌며 방황하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부당한 채권 독촉 따위로 집을 전당잡혀 빼앗기고 쫓겨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고 간혹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부는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일이므로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에게 숙소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건져준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알아야 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돈이 없어서 옷을 사 입지 못하거나 또는 입고 있는 옷마저 빚을 갚지 못한 이유로 빼앗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탈출22,26).

겉옷을 이불삼아 사는 사람이 그것을 빼앗기는 날에는 잠을 잘때 살을 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를 근동 지방에서는 맞이해야 한다.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본문은 가족 및 친척이 어려움을 당했을 경우 그것을 모른체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하느님 앞에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은 인간됨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당시에 흔히 자행되고 있었다.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마치 새벽의 태양빛이 온 땅에 자욱한 흑암을 순식간에 몰아내듯이 하느님의 축복이 사람들을 짓누르는 어둡고 고통스런 삶의 형편들을 뒤바꾸어주며 그야말로 광명한 삶, 복되고 은혜로운 충족한 삶이 되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여기서의 상처는 파괴된 인간관계나 무너진 성읍, 실제적인 질병을 의미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하느님께서는 신속히 그 모든 것을 권능으로 치유하시고 회복해 주신다.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진실하게 단식을 행하는 자의 영적 안전과 보호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행진할 때에 하느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을 호위해 주셨듯이 주님의 종의 대속적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의로움으로 말미암아(이사53,11; 54,17) 어떠한 영적인 적들의 공격도 안전하게 막아낼 수 있는 영적 갑옷과 방패를 말한다.


'주님의 영광'이란 하느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포괄하는 표현이다. 참된 단식을 실천하는 자들을 약탈자의 공격으로부터 막으시고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의미로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면' 해당하는 단어 '레샤우아으'의 원형 '슈아으'(shuah)는 구약성경에서 21회 사용된 단어로서 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그 어려움을 탈피하기위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나 여기 있다'에 해당하는 '힌네니'(hineni)는 '보라! 나를' 이라는 의미인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백성이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에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 보이시며 그에게 도움과 소망과 위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20230205일 일요일

[연중 제5주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고 재어 볼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일까요?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수를 통계 내어 가늠하면 되겠습니까?

교회의 여러 성사들에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수로 판단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우리 믿음의 정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 사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시작 부분으로 행복 선언(마태 5,3-12 참조)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고 전합니다(5,1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산에서, 성당에서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이 산을 내려가기가 두렵습니다.

비록 잠깐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에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산에서 내려간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에 가서 예수님을 전하였는데 그의 말을 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사도 17,32 참조).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맨 처음 코린토에 갔을 때

자신은 약하였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두렵고 떨렸다고 하였습니다(1코린 2,3 참조).

우리는 예수님께 들은 생명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에서 내려와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자가 아닌 듯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자의 본분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소금의 비유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냅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세상 안에서 참되게 증언하며 세상을 맛나고 풍요롭게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아 주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야고 1,27 참조)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우리의 인생이 신자의 맛과 본분을 잃지 않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하며 용기를 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5주일

 

사람의 으로는 하늘의 생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 5,13-16) 

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세상에서 소금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로하느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금입니다.

 

(레위 2,13)  13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

우리가 바치는 제물예물은하느님과 맺은 계약 곡 구원의 계약그 말씀에 의한 예물이어야 합니다.

 

(탈출 30, 35) 35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 소금그 계약의 말씀으로 깨끗해지고 거룩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은? - 노아에게 약속하신 무지개 계약입니다사람은 악하기 마련이기에(창세8,21) 하느닌께서 대신 화살을 맞으시고 사람들을 용서하시겠다는 그 무지개 계약입니다.

무지개레인(말씀보우(계약

 

(창세 9, 15-16)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하늘의 대속으로 악인들을 살리시겠다는 그 무지개 계약그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영원히 변하지 않는 계약의 소금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완성하지 못한 하느님의 율법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대신 완성하신 그 진리가 영원한 계약입니다그 계약의 말씀을 받은 이그가 말씀을 갖은소금이 되는그래서 너희는 소금이다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 그 계약구원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그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의 핍박무시를 견디지 못해 조롱거리로 남게 되는-그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2베드 3, 3) 3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마지막 때에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빛은 어둠을 물리칩니다빛은 티끌()을 드러냅니다말씀이 우리의 생명입니다.(요한1,1~) 말씀을 받으면 내 안에 티끌()이 드러납니다그리고 그 말씀으로 그 죄어둠이 사라지게 됩니다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예수님입니다.

무지개 계약하늘의 죽음그 예수님의 죽음그 계약의 말씀으로 깨끗해지고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크시고 자비하심을 놓치면 안됩니다.

 

(1요한 3, 20)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느님의 사랑의 빛을 믿는 이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하시는 것입니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 등불올리브를 찧어서 짠 그 기름을 태워서 비추는 것이 등불입니다.(레위24,2)

올리브는 하느님을 뜻합니다하늘의 대속 그 사랑의 빛이 등불입니다.

 

등경-교회 

(묵시1,20) 20 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황금 등잔대의 신비는 이러하다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고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

교회에서 하늘의 죽음그 사랑의 빛을 비추어 사람들을 비추라 하십니다그 하늘의 빛으로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나의 착한 행실그 빛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칭찬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착한일구원의 빛을 주면대속의 용서로 구원(용서)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하느님을 찬양하겠지요.

그 하느님의 빛을 주는 것그 것이 착한행실좋은 일입니다그것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계명지킴실천입니다.하느님의 칭찬(구원)보다 사람의 칭찬이 좋아 그 사람의 일만을 한다면 영원히 땅(지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 땅의 삶을 살면서땅의 사랑제물 그 모든 것이 사라질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하늘을 향한다면.....

다시사람의 의로움선으로 구원받는 것임을 안다면 그 하느님의 사랑그 빛-말씀(소금)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녹아지는 소금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태워 빛을 낼 수 없는 어둠()의 존재일 뿐입니다그래서 모든 사람(어둠)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1,9) 그 빛을 받아드리는 이들이 빛입니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아멘 -*^^*-






연중 제5주일 복음 (마태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3)


하느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밝히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 역할에 대한 가르침이다.


'너희는 소금이다'에 해당하는 '휘메이스 에스테 토 할라스 테스 게스' (hymeis este to hallas tes ges;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에서 '에스테'(este)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동사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복수형이다.


여기서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이 교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경할 수 없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되라'는 명령법이 쓰이지 않고, '~이다'라는 직설법이 사용된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세상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금의 역할을 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고, 이미 하느님의 통치권 안에 속한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당위성과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소금에 해당하는 '할라스'(hallas; salt)는 성경이나 유대 문헌과 관련하여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첫째,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물, 불, 곡식, 의복 등과 같이 삶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없는 세상은 영적 생명이 끊어진 세상이다.


둘째, 방부제의 역할을 한다.

생선과 고기를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부패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세상이 부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째,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빛이라는 빛의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맛의 미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녹아서 맛을 내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도 겸손하게 자신을 숨기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

유대 문헌에 보면 치통도 소금으로 고치고, 신생아도 소금으로 문질러 그 몸을 깨끗하게 했듯이 이 세상의 환부를 치료하는 역할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해야만 한다.


다섯째, 정결한 희생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은 방부제의 역할과 더불어 제물을 정결하게 하는 소금을 뿌렸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 위에 뿌려져서 타서 없어지는 소금처럼 정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   


한편, '세상의'에 해당하는 '테스 게스'(tes ges; of the earth)에서 '게스'(ges)는 하늘과 대조되는 입장에서의 '땅',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혹은 '사람','인류'라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는 '게'(ge)의 소유격이다.

따라서 '세상의 소금'이라는 표현은 '땅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된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소금을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해 지역의 늪 지역에서 채취하거나 땅에서 암염을 캐내어 사용했으므로, '테스 게스'는 땅에서 채취하는 팔레스티나 특유의 소금 생산 방법을 반영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 가운데서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민 의식과 자기식의 의(義)와 거룩함을 주장하며, 이방인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불결한 자로 취급하며 멀리했던 유다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들은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의 문장에서 서두에 나오는 '만약'(그러나)에 해당하는 '에안'(ean)은 여기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서술할 때 쓰이는 '호탄'(hotan)처럼, '~할 때면 언제나'(whenever) 혹은 '~하는 즉시'(as soon as)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그 즉시' 혹은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예외없이 언제나'라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처럼 정제된 순도가 높은 소금이 아니라 땅에서 채취한 불순물이 많은 암염을 사용했는데, 잘못 보관하면 염분은 빠져나가 버리고 찌꺼기만 남아 짠 맛을 도무지 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처럼 염분이 사라져 버린 소금은 전혀 가치가 없게 되듯이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삶이 되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짓밟힐'에 해당하는 '카타파테이스타이'(katapateisthai; and to be trodden; and trampled)는 부정사 현재 수동형이다.

여기서 수동형이 사용된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밟히게 됨을 보여 주고, 부정사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항상 밟힌다'는 뜻이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길에 버려지기도 했으며, 가옥의 옥상에 뿌려 흙을 딱딱하게 굳도록 만들어 평평한 휴식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사람으로부터 짓밟힐 정도로 무가치하고 비참해지게 된다는 말이다.





202325(가해)연중 제5주일 <생명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서울대교구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복음의 앞 문맥을 살펴보면, 산상수훈 담화문을 시작하는 참 행복(진복팔단)’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이 오늘의 복음 구절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하신 다음에

바로 오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말씀이 이어지기에,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참 행복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금과 빛은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성경의 전통에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은유입니다.

예로부터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첨가물일 뿐만 아니라, 염장(鹽藏) 을 통해 식료품을 오래 저장하는 데에 필수적인 물품이었습니다.

은 신약성경, 구약성경을 막론하고 익숙하고 중요한 은유인데, 신약성경이 아직 쓰여 지기 전인 예수님 당대에는 유일한 성경이었던 구약성경에서는 이 주로 하느님, 메시아,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토라(율법), 성전, 예루살렘등을 가리키는 은유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세상의 소금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중인 당대의 유다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너희는이라는 희랍어 원문 표현에서 강조법을 써서 “(예수님 당신을 따르는) 바로 너희 자신이 빛과 소금이라는 뜻으로 너희를 강조하여 표현하십니다.

뒤이어지는 산상수훈 담화문(마태 5,17-7,12)의 가르침들이 말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세상의 소금세상의 빛의 모습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 담화문 대신에, ‘을 모티브로 오늘 제1독서를 복음과 연결 지어 읽어 보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는 길은, ‘굶주린 이에게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주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가 뛰어난 말이나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뛰어난 언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복음 선포하셨듯이(2독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화려함을 자랑하기 바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적으로) 뛰어난 능력이나 인간적인 드러남으로써 이 되는 게 아니라, 이웃들에게 애덕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거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촉구하십니다.

 

 

 

연중 제5주일(마태오5,13-16) [오늘의 말씀] 6월 8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마태오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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