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주일
[대림 제2주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르1,1-8)

제1독서<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아라.>(이사40,1-5.9-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화답송 시편 85(84),9ㄱㄴㄷ과 10.11-12.13-14(◎ 8 참조)
◎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제2독서<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베드3,8-14)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복음<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대림 제2주일 제1독서 (이사40,1-5.9-11)
"사막에 길을 곧게 내는 것, 골짜기를 모두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게 하는 것, 거친 곳을 평지로, 험한 곳을 평야로 만드는 것"(3-4)
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정지작업은 높은 것을 깎아내리고, 골짜기는 메우는 작업이다.
하느님 위에 올라간 영적 교만은 겸손으로, 죄악과 분열의 깊은 계곡은 회개를 통해 은총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거칠고 험한 곳은 주님께 반항하고 대들고, 제 마음대로 하던 마음인데, 그 마음을 겸손과 온유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주님의 영광'(이사40.5)이 드러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함께 보게 된다고 한다.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와 능력의 표징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시며,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시고 (이사40.9ㄹ~10ㄴ)상급과 보상이 무상으로 내린다(이사40,10ㄷ).
'상급'과 '보상'은 승리한 전사가 집으로 가져오는 노획물과 공물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주 하느님의 예루살렘 귀환이 승리의 행사로 묘사된다.
그분은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양무리)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이스라엘 백성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어미 양들(지도자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40.11).
이 목자와 양무리에 대한 시구는 시편 23.1~3과 유사하다. 목자는 대개 '임금'을 위한 비유로 쓰이며, '그의 양무리, 어린 양, 암컷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넓은 의미로 묘사한 것이다.
남부 유다의 성읍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에 수십 년동안 외면과 고통스런 상황으로 고난 받아온 사람들을 묘사한다.
예루살렘에로의 하느님의 귀환은 그들 모두, 특히 약한 자와 곤궁에 빠지고 궁핍한 자를 위한 목자의 외투 속 사랑을 가리킨다.
'젖먹이는 암컷들'은 '갓난 어린양들'과 함께 지내며 돌보는데, 양떼가 이동할 때마다 어린양들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 제 2독서(2베드3,8~14)에서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오며, 그날에 지구는
불에 의해 녹아버리며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주님의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1)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생활 개선; 경건 생활)
(2) 티없고 흠없는 사람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 상태
(3) 평화로이 그분 대전에 설 수 있다 ~양심의 평화를 누리며 주님 대전에 거리낌없이 설 수 있는 (주님 만날 수 있는) 자세.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 마음의 구유, 마음의 베들레헴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준비해야 한다.
대림제2주일 제2독서 (2베드3,8-14)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12-13)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주적 대심판이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신도들은 악이 횡행하고 거짓 교설이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의 재림의 날이 도래할 것을 기다리고 협조해야 한다.
여기서 '기다리고'에 해당하는 '프로스도콘타스'(prosdokontas)의 원형 '프로스도카오'(prosdokao)는 '(희망 중에) 기다리다'(사도 27,33)
즉 '바라고 기다리다'(루카 3,15)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본문에서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쓰였으며,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앞당기도록 하라'에 해당하는 '스퓨돈타스'(speudontas)의 원형 '스퓨도'(speudo)는 영어의 'speed'의 어원이 되는 말로서, 원래는 '빨리 하다','서두르다'(루카 2,16) 란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본절에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어 보이는 이유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려는 하느님의 뜻 때문이라는 3장 8-9절의 말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것은 신도들의 믿음과 선행이 그 날을 재촉할 수 있다는 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는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의 도래를 위해서는 최우선적 과제가 무엇보다도 선교인 것만은 사실이지만(마태 24,14), 재림의 때에 대한 준비는 '그 나라가 임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착하고 거룩하고 신심깊은 생활(2 베드3,11; 1베드 2,12), 회개와 순종(사도 3,19.22-23)의 삶도 더불어 준비해야 한다.
선교를 비롯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회개와 신심(경건)과 순종 등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및 거기에서의 영원한 삶이라는 궁극적인 성취를 앞당기는데 기여하는 요소들이다.
'그날이 오면'으로 번역된 '디 헨'(di hen)에서 전치사 '디아'(dia)의 축약형 '디'(di)는 본문에서 목적격을 수반하고 있는데, 이것은 '~때문에'라는 원인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그날 때문에' 즉 '주님의 재림이 임하였기 때문에'란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철학의 스토아 사상에서 그려지듯, 우주의 주기적인 대화재와 같은 자연 순환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주권적인 의지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버릴 것입니다.
'원소'(element)에 해당하는 '스토이케이아'(stoicheia)는 '스토이케이온'(stoicheion)의 복수형이다.
이 단어는 '진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테이코'(steicho)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일련의 어떤 것'(series)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단어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일련의 어떤 것을 이루는 기본 요소', '원소' 혹은 '첫째 원리'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우주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던, 흙과 물과 공기 혹은 더 나아가서 '천체'등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본문은 우주 만물을 이루는 모든 기본 기본 요소들이 빠짐없이 해체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불에 타 녹아버릴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10절에는 '불에 타 스러지며'로 나온다. '(뜨거운) 불에' 해당하는 '카우수메나'(kausumena)는 '불태워버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카우소오'(kauso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불태워지면서'라는 뜻이다.
'스러지며'에 해당하는 '뤼테세타이'(lythesetai),'뤼테손타이'(lythesontai)는 묶인 것을 '풀다', '느슨하게 놓아주다', '분해하다','해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뤼오'(lyo)의 직설법 미래 수동태로서 철저하게 해체되어 버릴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12절에는 '녹아버릴' 것이라는 단어 '테케타이'(teketai : shall melt)가 더 첨부되어 있다.
즉 본문는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불에 타면서 해체되어 버릴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천지 만물의 대변혁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어지는 종말의 대심판이 장엄하게 전개될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기다리고 있습니다(13)
베드로 사도는 거짓 교사들의 교설의 유혹에 맞서 확고한 재림 신앙을 가지며, 그에 합당한 생활을 권면하는 1장 12절~3장 13절의 마지막 구절인 본절에서, 신도들에게 재림 및 종말에 관한 약속에 근거하여, 의로움이 실현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최종적으로 권면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에 해당하는 '프로스도코멘'(prosdokomen)은 '희망 중에 기다리다' '바라고 기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프로스도카오'(prosdokao)의 직설법 현재 시제로서, 신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희망 중에 기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금의 현 세계가 해체되어 소멸된다(10절과 12절) 하더라도, 신도들은 그 후에 도래할 새로운 세상을 희망할 수 있고, 그 희망이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 없는 불신자들과는 다르다.
성도가 새 하늘과 새 땅을 희망 중에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하느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이사야 예언서 65장 17절에서, 하느님은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고 약속하셨고, 이사야 예언서 66장 22절에서는, "정녕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서 있을 것처럼, 너희 후손들과 너희 의 이름도 그렇게 서 있으리라." 고 약속하셨다.
즉 베드로 사도는 전혀 성경적 근거도 없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공허한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실효성 있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로움'(의)로 번역된 '디카이오쉬네'(dikaiosyne)는 주격 단수이며, '깃든'(거주하는)으로 번역된 '카토이케이'(katoikei)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의로움이 깃든' 혹은 '의가 거주하다'는 것은 불의와 부정이 가득 찬 이 세상과 대조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거하고 있는 그곳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견고하게 계속된다.
세상은 심판 가운데 멸망하지만, 믿는 자들 곧 '착하고 거룩하고 신심깊은 생활'로 주님의 날을 기다리던 자들에게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얻게 될 희망이 있음을 본문은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재림시의 그토록 엄청나고 끔찍한 대변혁의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롭고 안전한 새 세계의 창조를 위한 서곡(序曲)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는 마태오 복음 13장 41-43절, 19장 28절, 사도행전 3장 19-23절, 요한 묵시록 21장 1-2절, 5절, 10-27절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대림 제2주일 복음 (마르1,1-8)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4)
여기서 '회개'로 번역된 '메타노이아스'(metanoias; repentance)의 원형 '메타노이아'(metanoia)의 동사형 '메타오에오'(metanoeo)에서 '메타'(meta)는 '다르게'라는 의미이고, '노에오'(noeo)는 '생각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원어로 볼 때, '회개'는 '다시 생각함'이라는 뜻이다. 즉 '회개'는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는 단순히 마음만 바꾸는 변화가 아니라, 행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음의 변화(change of mind; 마태3,8; 2코린7,10)를 말한다.
사실 구약적 관점에서 '회개하다'(에제13,22)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슈브'(shub)는 '인간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회개'의 이러한 의미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1장 3절과 4절에서 두번씩이나 사용한 '광야에서'에 해당하는 '엔 테 에레모'(en te eremo; in the desert)라는 구절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즉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께서 계약 관계를 맺은 최초의 장소를 의미하는 '광야'(시나이 광야)에로의 돌이킴이라는 구약적 회개의 의미를 자신의 복음에 적용시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세례'로 번역된 '밥티스마'(baptisma)는 '담그다'는 뜻의 동사 '밥티조'(baptizo) 에서 파생되었으며, 이것은 원칙적으로 몸을 완전히 담그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물에 담그는 것이나 정결 예식으로서의 씻음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만(레위15,5~16), 회개의 의미로서 물에 담그는 것이나 씻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서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 개종자를 물 속에 담금으로써 죄의 회개와 개종 의식을 하기도 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도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원칙적으로는 오늘날 세례 성사가 가지는 죄사함의 은총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당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정결함을 받기 위한, 문자 그대로 '회개의 세례'였다.
그래서 사도행전 19장 2절 이하를 보면,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이 사도 바오로에 의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사도19,5)
2020년 12월 6일 [대림 제2주일]
어제 저는 어느 형제님에게서 기쁜소식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구역의 눈초리가 따가왔던 저에게 너무나 힘이 되는 소식이였습니다. 그 기쁨을 잠시 먼저 나누고 시작하렵니다.
*형제님의 굿뉴스 메일을 요약하면 *
늘 좋은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늘 무엇인가가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올 초부터 게시판 묵상나눔을 보기 시작하였고 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마음이 콩닥거립니다.
어디선가 먼 곳에서 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을 읽고 다시 읽고 받아 적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어려울 때 힘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 용기를 내 봅니다 감사합니다.
저와 같은 뜻,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힘이 나는지~저도 메일주신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힘내라고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마르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前, 그분의 구원의 길을 알려줄 使者를 보내실 것인데~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 하느님의 뜻, 그분의 말씀을 거스른, 그 잘못된 길을 가는 그 길에서 돌아서는 悔改를 하라고 선포한 것이다.
회개(悔改 메타노이아),-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 율법의 그 자기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다. 십ㄷ자가 사건 이후는 하느님께서 기억하시지 않으신단다. 왜? 예수님께서 그 죄를 다(全部) 대속 하셨으니까.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 구약의 엘리야의 모습이다.
(2열왕1,8) 8 그들이 대답하였다. “몸에는 털이 많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른 사람이었습니다.” 임금은 “틀림없이 티스베 사람 엘리야다!”
= 이 엘리야를 구약의 마지막 장절에서 다시~
(말라3,23)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이미 승천한 엘리야가 아닌 그가 한 일, 곧 당시 유대인들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도 받고, 바알이 준다는 땅의 복도 받을 속셈으로 양다리를 걸치며 절뚝거리는 신앙을 살았기에 하느님의 진노로 땅에 가뭄이 왔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땅에 하늘의 물, 즉 생명수인 말씀이 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혼자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함께 “어느신이 살아 계시어 불의 응답을 주시는가” 대결을 하는데~
바알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없자~
(1열왕18,28-30 37-38)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땅의 복을 받기 위한 사람의 관습에 따른 자기희생, 열심한 종교행위이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자기 앞으로 다가 오라고 말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다가 오자 그는 허물어진 야훼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엘리야는 12지파의 數대로 돌12개로 제단을 고쳐쌓고 준비한 번제물과 장작위에 물4동이를 붓고(12-하늘의 완성, 물, 말씀 4-땅) 그렇게 하느님의 뜻대로 준비를 한다음~)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 그렇듯 하느님의 제단, 그 하느님의 뜻을 다시 세우고 알리는 그 소리를 내라고, 그 일을 하라고 말라기 이후 400년뒤 세례자 요한을 보내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400년이 지나도록 ~ 하늘의 복도 받고, 땅의 복도 받으려는 그 양다리의 절뚝거리는 신앙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죽어야 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구원자 그리스도를 보내실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 기쁜 소식인 당신의 뜻을 미리 알리시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롇자요한을 보내신 것이다.
(말라3,24)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우리의 모든 죄로 죽으실 그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 그 소리를 내어라 하신 것이다.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신 하느님이시기에~ 그래서 그 죄를 해결하여 당신의 진노를 풀어 줄, 그리고 잘못한 그 자녀들이 회개(돌아오도록) 하도록, 그래서 대속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자녀(죄인)들의 화해를 위한 그 구원의 일, 하느님과 그분의 자녀(죄인)들 사이의 중개자, 곧 죽어야할 그 죄인들 대신 죽어줄 그리스도의 소식을 미리 전하라고, 소리 내라고 먼저 세례자 요한을 보내신 것이다.
(골로1,22)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 요한의 물 세례- 죄를 고백하며 그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세례(洗禮)를 자신들의 열심한 행위에 한가지 더 추가 시키는 것이 유대인들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했던 것이다.(마태3,7참조)
(1베드3,21) 21 세례는 몸의 때(죄)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 ‘바른 양심이 되도록 하라’가 아닌 ‘바른 양심을 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어 더러운 良心이 깨끗해 지는 그 바른 양심이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가 말하는 새하늘과 새땅을 기다리는 티도 흠도 없는 사람이다. 성령세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보내신다 약속하신 당신의 영, 곧 대속의 그리스도의 영을 진리로 받는, 믿는 것이다(요한14,16~21참조)
(1요한4,2)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靈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사람의 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음을 믿는 것(요한1,14) 그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속죄 제물로 오셨음을 믿는 것, 그 하느님의 말씀(약속)을 주었을 때 마음이 콩닥거리는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의 그 사람의 말이 줄 수 없는 기쁨이다.
(히브10,15-18)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십자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하느님께서 기억하시지 않는 죄를 끄집어내는 것, (죄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대속하신 하느님의 용서, 사랑을 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헌금이 아닌 내 뜻을 위해 예물로 드리는 것, 모두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에페4,30참조)
꼭 기억합시다. ~
(루가11,10.13)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오소서 성령이시여~ 천주의 성령님! 저희를 의탁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