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적은 글은 십자가를 주제로 강의했던 것 중에 하나인데,
2000년 - 2001년 무렵에 했던 강의입니다.
다행히 강의록 초고 중 하나가 하드에 저장되어 있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이론보다는 체험 중심의 강의입니다.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로 인한 우리의 구원>
여러분은 십자가, 십자고상을 볼 때 무슨 느낌이 듭니까?
각자 느낌이 다르겠지만, 더러는 하도 많이 보았던 것이라서, 별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십자고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적인 면을 빼고 순전히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다시 말해서 세속적으로만 본다면, 십자고상은 2천년 전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비참하게 죽은, 한 남자의 시신의 모습입니다.
사실 믿음없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은 모습... 밤에 꿈자리가 사나울 수 있습니다.
아마 보통 상황이라면 어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사람의 시신을 그대로 본떠서 벽에 걸어놓는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성당마다 걸어놓고, 집집마다 걸어놓고, 심지어는 목걸이로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닙니다.
믿음없는 사람들도 그것이 무슨 대단한 장신구라고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하여간에 이제 우리에겐 끔찍한 모습이 아니라 친숙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고상이 단순히 옛날 사형수의 시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에겐 구원의 상징이고, 희망의 상징이고,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께서 우리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고상을 집집마다 걸어놓고 그 앞에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고상...
너무 낯익은 모습이 되어서 느낌이 약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 고통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군인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별별 만행을 다 저질렀는데,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십자가형을 실험한 것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몇을 골라서 성서에 나오는대로 똑같이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매달아 놓은채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 있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달리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다
못을 박은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니까 체중을 못이겨서 손바닥이 쭉 찢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목에 못을 박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학적인 사인이 무엇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직접 사인... 그것은 질식사였습니다.
지금
흔히 보는 십자고상의 발밑에 고여 있는 발판은 사실 허리께에 있었고, 그것이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못에 박혀서 고정된 채, 수직으로 매달려 있고, 허리마저
고임목 때문에 불편한 상황에서,
갈비뼈가 허파를 압박해서 숨 쉬기 힘들게 만들고, 체중 때문에 몸은 점점 아래로 쳐지고, 그래서 숨 한 번 쉬기가 그렇게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고,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다가 결국에는 삼십분에 한 번 들이쉬고, 내쉬고, 그러다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때, 숨이 막혀 죽는 것입니다.
대개는 24시간까지도 매달려서 고통을 겪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5천대 이상의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이미 탈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과 세 시간 만에 숨이 끊어졌습니다.
당시
채찍은 끝에 납으로 된 추가 달려 있어서, 한 번
후려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그런 채찍이었습니다.
당시 그
관찰을 했던 나치 군의관은 보고서의 결론을 이렇게 썼습니다.
"십자가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이다."
신체적인
고통은 그렇다치고, 예수님의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루가복음
22장44절(본문에는 없고 각주에만 있지만)을 보면, "핏방울
같은 땀이 뚝뚝 흘러 땅에 떨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올리브
동산에서 기도할 때, 예수님은 극도의 고통을 이미 겪고 계셨습니다.
피땀을 흘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의학 전문가들이 말하더군요.
또 마태
복음 26장38절을 보면, "예수께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지금 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시 올리브 동산에서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근심과 번민에 싸여서 괴로와 죽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적인 고통...
그것은 제자들의 배신에서 오는 배신감, 고독감, 절망감 등등 여러가지였겠지만,
우리 죄많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속죄양으로서 대신 죽어야 하는 예수님의 그 정신적인 고통이 과연 무엇인지,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우리는 감히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마태 복음 27장46절의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는 예수님의 모습도 그 정신적인 고통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이 그렇게 큰 고통을 겪으신 이유는?...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어떤 사람 하나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든, 형제 자매든, 애인이든, 친구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불치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고,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의학적으로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그 사람을 살릴 방법이 없고, 다만
죽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할 때, 우리는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이 죽을 수는 있겠지만, 대신 죽을 능력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동안
우리 인간은 죄와 죽음의 시한부 인생들이었습니다.
완전히
불치병에 걸린 환자처럼 그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고,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끔찍한 모습의 사형수라고 해도, 십자고상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십자가,
그 자체로 끝났다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냥 그렇게 죽고 말았다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상황이 끝났다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대의 일로 끝났을 것이고, 천주교라는 종교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냥 옛날 이야기로 끝났을 것입니다.
십자가와
죽음 뒤에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했기 때문에 십자가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고, 승천하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재림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과 희망의 상징이 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들을 이겨낼 힘을 주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천주교라는 종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우리의
부활도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고,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없이 그냥 부활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구름 타고 내려와서 인간을 구제했다는 식의 옛날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을 묶어서 빠스카의 신비라고 부르는데, 이제
예수님의 십자고상을 벽에 걸어놓고 기도하는 신앙인들로서, 우리
삶의 빠스카 신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탓도 아닌데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많습니다.
삼풍 백화점, 성수대교, 씨랜드, 항공기 추락 사고, 열차 전복사고, 지진, 태풍, 그리고 각종 질병, 사업 실패....수도 없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자기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통이라면, 그냥 죄에 대한 보속이려니 생각하고 견디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자기 죄가 아닌 사고나 불행을 겪을 때, 도대체 누구를 탓하고 누구의 죄를 물어야 합니까?
사고라면
그 사고의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처벌한다고 불행이 없어집니까?
또 각종 불치병, 중병에 걸린 경우에 누구에게 책임을 묻습니까? 세상 암환자들이 다 죄에 대한 보속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든 일들을 구약의 욥처럼, 마귀의 장난으로 겪는 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마귀보다 힘이 센 존재입니다.
마귀의 장난이라면 정말 믿음으로 극복하고 물리칠 일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장난도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냥
현실은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다가,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 기대해야 하겠습니까?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라면, 이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나,' 바로
나를 구원하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가는 천당 못지 않게, 살아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성당에 다니고, 기도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죄가 아닌데 겪어야 하는 고통,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런 불행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원망하며 신앙을 잃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거나, 아니면, 무능하거나, 아니면 무관심할 것이다"라고 단정 짓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 삶에 주어지는 많은 십자가들,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고통을 극복하고 물리칠 힘은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요.
제가 있는 본당에 아주 열심한 신자가 한 분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나 사회적으로나 항상 열심히 봉사하는, 모범적인 분입니다.
저희
본당에서 정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분입니다.
그 집은 그리 잘사는 집은 아닌데, 약간의 자기 논 외에도 남의 논과 밭을 소작하면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집입니다.
그런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흔히 보는 일이지만, 부모에게는 큰 걱정거리지요.
그리고 큰 딸이 무슨 병에 걸려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치료를 할 수 없는 그런 병이라고 하더군요. 역시
부모 입장에서는 커다란 걱정거리입니다.
아직 대학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데, 그 딸들의 앞날도 걱정이라면 걱정일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그분이 밭에서 일을 하다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과도한
노동의 탓에 몸이 많이 허약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초상 치르는 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늘 웃고 삽니다.
레지오 단장까지 맡고 있는데, 그 팀에 들어가 보면 늘 분위기가 밝고 좋습니다.
지난주에 레지오 회합에 안오셨길래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녁미사가 끝나자마자 그 집에 갔습니다.
보리를
건조기에 넣고 건조중인데, 자동으로
온도 설정이 되어 있던 기계가 멈춰야 할때 멈추지 않고 과열이
되어서 다 타버렸습니다.
읍에 있는 소방차 다섯 대가 다 달려갔는데도 보리가 전부 다 탔고, 건조기도 타버렸습니다. 창고와 집이 타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습니다.
어쩌면
연속되는 십자가에 한숨을 쉬고 있을 만도 한데, 그분은
태연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재산
피해는 팔백만원 정도인데, 시골에서는 정말 큰돈이지요.
기계 제작사와 협상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아마 보상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며칠
뒤에 들은 이야기는, 불이 난
바로 그 장소에 휘발유통, 가스통, 산소통이 줄줄이 있었는데, 불이
옮겨 붙지 않고 그 자리에서 딱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만일 불길이 그 통들로 옮겨 붙었다면 동네 전체가 다 날아갔겠지요. 그분은 불이 나서 피해 입은 것을 애통해 하지는 않고, 기적적으로 불이 더 이상 크게 번지지 않은 것에 더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십자가의 고통을 무력화시킵니다.
저희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얼마 앞둔 7년전 성금요일날 아침에,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코란도라나 뭐라나 큰 찝차가 횡단보도를 지나면서 어머니를
치어서 두 다리를 몽땅 부스러뜨렸습니다. 대수술을
여러차례 받았고, 한 오년간 병원에 누워 계셨습니다.
지금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걷지는 못하게 되셨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던 어머니인데, 이제 여생을 편히 쉬셔도 될 만한데, 평생의 고생이 아직도 계속된다니, 정말 속터질 일입니다.
저는 그
당시 전주 효자동 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있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날마다 밤에 병원에 가서 어머니 병실을 지켰습니다.
그해 가을에 제가 전주 성심여고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오전과 저녁에는 본당에서 보좌신부로서의 일을 다 하고, 오후에는 성심여고에 가서 수업을 하고, 밤에는 병원에 가서 병실을 지키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형이 하던 가게는 그 사고 덕에 망해버렸고, 온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활을 날마다 하다가 너무 무리가 되었는지, 그해 12월초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정형외과로 옮긴 뒤였습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모자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 신부의 모습...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하느님께 "해도 너무 한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른 식구들이나 문병 온 사람들은 참 기막힐 노릇이라고 눈물지었지만, 강인한
분이셨던 어머니는 활짝 웃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의 그 밝은 웃음을 보면서, 욥기의 한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욥기 2장10절)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을 흔히 담금질로 비유합니다.
철광석을 용광로에서 녹여서 쇳물을 받은 다음 주형에 부어서 제품을 뽑아내고, 그 다음에는 다시 불에 달구어서 두들기고 물에 식히고,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점점 강한 제품이 됩니다. 제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용광로는 좀 알지요.
하여간에
우리 인생의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하려는 담금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련을
겪을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잠언에 ' 하느님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시련을 더 주신다'고 했습니다.(3,12)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은총도 큰 법입니다.
금속공학
전공과목을 처음 시작할 때 철근
토막을 가지고 성분 분석하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녹슨 철근 한 토막을 받았습니다.
그 철근
토막을 하루 종일, 연마액으로 갈고 닦고, 또 갈고 닦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철근의 단면이 얼굴이 맑게 비치는 거울처럼 변했습니다. 그
녹슬고 쓸모 없던 철근 토막이 그렇게
거울처럼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어쩌면
보잘것 없는 우리 인간을 정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겪는 시련들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고 용감하게 맞부딪히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1994년도의 일입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무덥고 가뭄도 심했습니다. 제가
있던 사제관은 무지 더운 방이었고, 에어콘은 성능이 형편없었습니다.
저는 견디다 못해 이열치열이라고, 더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성당에서 전주 치명자산 성지까지 자전거를 타면 30분쯤 걸렸습니다.
매일 오후 2시면 자전거를 타고 치명자산까지 가서, 산 아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누갈다 순교자 무덤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9일기도를 하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땀으로 흠뻑 목욕을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오는데, 관절염이 재발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두 무릎이 다 관절염에 걸려서 고생을 꽤 했었거든요. 그
다음날엔 걷기도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 다리를 가져가시려면 가져가십시오. 저는
기어가더라도 9일기도를 마쳐야겠습니다. 다리
하나쯤이야 당신께 봉헌하지요."
그리고는
일종의 오기로 관절염 약을 먹지도 않고 치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둘째날,
겨우겨우 치명자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세째날은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도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9일기도를 마친날, 관절염은 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관절염이 재발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산에도 잘 올라다닙니다.
그때 관절염이 재발한 것은 제 의지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험에 꺾였다면, 저는 더 많은 것을 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정도 가지고 기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습니다. 그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피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회피 철학관에 가서 부적 하나 사다가 당면한 고통을 면해보려는 심정, 그건 흔히 있는 일이지요.
거부 고통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이지요.포기 고통을 잊고자 향락에 빠지거나 아예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방법일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스스로 지고 갈 때 극복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커다란 십자가가 하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눈병에 걸렸었는데, 겉보기
증상으로는 아폴로 눈병과 비슷했지만, 결막과
각막이 다 망가지는 중이었습니다.
병원에 갈 돈도 없는 형편이어서 어머니는 저를 군의관으로 있는 친척 아저씨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 군의관 아저씨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조금 더 방치했다면 실명했을 것이다. 치료를 해보긴 하겠지만, 특효약도 없고, 해마다 봄이면 재발할 것이다. 끝내 치료가 안된다면 결국 실명할 수도 있다."
저는
날마다 아침에 학교에다 가방을 놓아둔 채,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반대쪽에 있는 육군병원에 가서 군의관
아저씨 면회신청을 하고 공짜 치료를 받는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눈의 고통은 대단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은 떨어졌고, 사실상
장님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운 것은 통증이었습니다. 통증이
시작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누워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대책없이 보고 있어야만 하는 가족들의 십자가도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고통은...
한 학기
내내 그런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자, 군의관
아저씨가 의대 시절의 은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광주에
있는 어떤 대학병원의 의대교수였는데, 역시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대학병원에도 약은 없었고, 한번
구해 보라면서 약 이름을 하나 적어주었고, 색안경을
쓰라는 것이 처방이었습니다. 그 약은
끝내 못구했습니다. 아예
수입되지 않는 약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짙은 색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영낙없는 장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전염병인줄 알고 저와 어울리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칠판을 볼 수 없어서 짝꿍이 대신 적어주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때에는 신문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우등상, 개근상을 탄 이야기를 기사로 냈습니다. 그때
저는 그렇게 공인된 시각 장애자였습니다.
그
눈병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해마다
봄에 재발해서 가을이면 가라앉았는데, 가을,
겨울이라고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에 치료다운 치료는 못했습니다. 우선
약도 없었고, 병원에 다니는 것도 무의미했고, 돈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그 고통 때문인지 아예 키도 안 컸습니다.
대학
일학년이던 79년에 무지 심하게 앓았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결석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군의관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실명을 각오했습니다."이제
실명할 때가 되었나 보구나..."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다운 초보적인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제 다리나 팔이나 다 가져가셔도 좋은데, 제발 눈은 돌려 주십시오." 그런데 하느님은 팔, 다리가 아니라 눈을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누워서 생각했습니다. "아직
점자도 모르는데, 점자 공부를 미리 할까 말까...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맹인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 가능할까?...
진짜로 앞이 안보이면 참 답답하겠구나... 아직 손가락 감각 훈련이 덜 되어 있는데, 많이 불편하겠구나..."
그런데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절망하지도 않았고, 억울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인가 보다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냥 다 하느님께 알아서 하시라고 맡긴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아팠습니다. 한 달 뒤에 증세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 무렵 나라 꼴이 말이 아닌 때였습니다. 부마사태, 10.26 사태, 그 다음해에 5.18... 저는 운동권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데모 현장에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최루탄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신학교에 갈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은 없었습니다.
80년 봄, 5.18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가 잠시 눈병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해 봄에 왠일인지 눈병이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지금 시력이 1.2입니다. 완전히 정상 시력으로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난시가 있어서 안경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눈병이 더 이상 재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 졸업후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전방에서 휴전선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 십자가가 끝났구나... 내가 다시 살아났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빛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니...
눈병이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주셨던 십자가를 때가 되어 다시 거두어 가신 것뿐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지나가니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고통 중에 한번도 자포자기 심정에 빠지지 않은 것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받은 신앙교육 덕분일 것입니다. 저는 그 고통에 꺾이지 않았습니다.
칠판을
볼 수 없어 노트 정리를 못할 때에는 수업
내용을 듣는 즉시 다 외워버렸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일단 학교에는 갔습니다.
지각을
하든 조퇴를 하든 일단은 학교에 가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12년간 개근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떼쓰는 기도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적응하려고 노력하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색안경을 쓰고 다녔습니다. 오해를 많이 받았지요.
이것이 하느님이 주시는 고통이라면, 언젠가는 끝이 있겠지라는 그 희망 하나에 대한 응답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갈 때, 그들은 믿음과 희망만 가지고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으로 약속의 땅을 밟았습니다.
예수님이 올리브 동산에서 겪은 고통, 십자가의 고통, 그리고 죽음, 그것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순절
때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많이 바치는데, 중간에
'예수 첫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라고 하지요.
저는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예수, 첫번째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섬을 묵상합시다'로...
예수님은
첫 번째 넘어졌다가 일어섰고,
두 번째
넘어졌다가 일어섰고,
세 번째
넘어졌다가 일어섰고,
마지막으로 죽었고, 무덤에
묻혔다가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나오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과 희망의 근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지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십자가를 주신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크면 은총도 크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가난하고 작은 선교 본당의 주임신부로 있지만, 궁핍하면
할수록 은총도 더 풍성하다는 것을 날마다 체험합니다.
그러니 선교본당 신부로 사는 것은 행복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행복합니다.
지고 갈
십자가가 크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나중에 그만큼 은총과 영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믿음의 3기>를 열심히 전하고 다닙니다.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렸더니 반드시 응답이 있더라는 저의 체험을 증언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당가는 것만이 하느님의 응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의 눈을 열자는 것입니다.
십년
동안 눈병을 앓고 시각 장애자였다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큰 은총이었습니다.
빛의
소중함을, 믿음과 희망의 중요함을 생생하게 교육받았습니다.
지금
다시 실명해서 장님이 된다해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시각 장애자 신부가 한 명 생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그 당시에 실명했다면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겠지만, 신부가 되어있는 지금 실명한다면, 그런다고 해도 사제직에서 쫓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고통을 통해서 더 강하게 만드는 분이시고, 겪은 고통보다 더 큰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지금
십자가가 너무 크다고 힘들어하는 분이 계신다면, 피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용감하게 부딪히십시오.
십자가는 우리를 꺾지 못합니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