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죽음이 두려워요/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이정임클라라
다들 학교를 다녀봐서 이런 체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숙제입니다.
학교를 가면 숙제라는 걸 내 줍니다. 집에 가서 해 오세요!
그런데 집에 가서 논다고 바빠서... 내지는 깜빡 잊고서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튼 숙제를 못 하고 학교에 가면 ... 가기 전부터 학교라는 곳은 두려운 곳이 되고 ...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은 정말 하느님 같이 무서우신 분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그런
체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죽음도 이와 비슷하다고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들의 이 세상 삶은 ...
마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그와 같은 삶이라고 이해했을 때 ...
우리들의 삶이 이 세상 여기서 이 몸을 가지고 사는 것이 모든 것이고 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허망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우리 사랑 영원했으면 좋겠어!"
이런 말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영원히 살지도 않으면서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사기죠.^^
종교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은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이런 말을 하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 세상, 하늘 나라가 없다면 이미 이 세상 삶으로 다 끝났는데 죽은 후에 뭔 복을 받으라는 말씀인지요?
또는 어떤 이가 병으로 고통 받다가 세상을 떠나면 ...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이런 말을 하지요.
사람은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사람 안에 종교적 심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어를 아시지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연어.
그 연어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그곳을 기억하겠습니까?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에 아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믿던 안 믿던 사람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왔던 곳이 어디인가요? 바로 하느님 곁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하느님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생명체가 되었다고 가르쳐 줍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 넣어주신 그 생명체가 하느님이 계신 그곳 하느님께로 되돌아 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숙제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행복하게 살아라?!"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그렇게 하느님께 받은 숙제를 충실하게 잘 했나? 점검해 보니 ... 아, 큰일 난 것입니다. 참으로 전 생애가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죽음 앞에서 흥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3년 만 시간을 주십시오!"
3년의 말미를 받으면 뭐 하려고 그러겠는지요? 저는 압니다.
봉사하고 살려고 그럽니다.^^
사람의 행복은 타인을 위한 삶을 살 때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온통 모든 인생이 나를 중심으로 나에게 촛점을 맞추고 살지 않는지요?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왜 이 세상에 ?왔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
1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답>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므로 영생을 얻어 무한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2 천주를 알아 공경하므로 영생을 얻어, 무한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답> 천주를 알아 공경하므로 영생을 얻어 무한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천주교를 믿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숙제는 바로 행복하게 살다가 오라는 것인데 ...
그 숙제를 충실하게 하지 못하면 마치 학생이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못했을 때에 느꼈던 것과 같은 그 마음 때문에 죽음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것이라고 저는 묵상하였습니다.
그 숙제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예수님께서 간단하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면 그 숙제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바로 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다면 사랑이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 사랑이 바로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가톨릭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려면 그곳으로 가는 교통 수단을 골라서 잘 타야 합니다.
서울 가고 싶으면 서울로 가는 교통편을 검색해서 가장 빠르고 지름길로 가는 교통 수단을 타야 갈 수 있습니다. 서울을 가고 싶은데 광주 가는 비행기를 타면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사랑이신 분, 행복 그 자체이신 분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가톨릭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고 그 제자들 위에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1대 교황님이시고 현재 266대 교황님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십니다.
요한바오로 교황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임종 때에 행복했었었노라고 하시면서 ...
남아 있는 우리들도 행복하라고 하시고 하늘 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숙제인 행복을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들이랍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사람이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 말고 영원하신 분이 있을까요? 그러니 사람이 영원히 살고 싶으면 영원하신 분과 일치를 이룰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일치를 예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요한 복음 17장에 보면 하느님과 당신이 하나이듯이 우리들도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갈망하고 노래하는 그것이 바로 인간 안에 종교적 심성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유한한 존재가 어찌 무한한 존재를 다 알고 이해할 수 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