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5일 목요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요한13,16-20)
제1독서<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사도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화답송>시편89,2-3.21-22.25와 27(◎2ㄱ)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 나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노라.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
○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니,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
복음<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13,13-25)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3)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 또는 '야훼는 구원',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여호수아', '죠수아'를 희랍식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20~21절에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계시되어 있다.
루카 복음 1장 31~33절에도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라고 계시되어 있다.
일찌기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내 집안과 내 나라 안에서 그를 영원히 세우리니, 그의 왕좌는 영원히 튼튼하게 하겠다.'(1역대17,14)고 말씀하셨는데, 사도 바오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구원자를 세우고 그 구원자를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이끄신 역사와 구원자(구세주)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그 약속에 따라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 역사를 끌어내서 그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지키셨고,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밝힌다.
겉으로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볼 때, 다윗의 왕조는 무너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신 그 왕좌가 영원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공허한 메아리 처럼 들리는 상황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위해서 다윗과 약속하신 그 왕좌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사도(使徒)’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 가운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몸소 체험하고 또 그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호칭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使徒)는 본디 ‘파견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 어떤 사명을 받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파견된 사람은 모두 사도가 됩니다.
이런 의미의 단어가 특별히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 파견된 사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4장 14절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사도’로 불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사도로 파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사의 마지막에 선포되는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의 본래 의미가 ‘자, 이제 파견입니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받아 모셨으니, 이제 세상에 나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증인으로 파견되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증언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또다시 하느님의 사도로 파견되는 오늘, 우리의 사명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보내신 분의 말씀을 전하는 일임을 기억합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사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역사는 하느님의 뜻(救贖)으로 흘러간다.
(요한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앞13절과 연결하여 보면 너희가 나를 ‘스승님,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내가 사실 그렇다. 앞 1절 이하에서 주인이신 주님께서 하신 발 씻김의 일을 종들인 제자들은 반드시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어디로 파견 하셔서~
(요한17,18)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사도1,8)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 證人은 현장의 사건에 대하여 확실히 본 사람만이 증인의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 발 씻음 받은, 곧 십자가의 용서로 구원 받았음을 잘 이해하여 삶으로 살며 이웃에게 전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20,21-23)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본문20절의 죄인들이 십자가의 예수님, 곧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생명의 새 계약이며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게 하라’는 말씀이시다.
*성령을 받아라. - 성령의 힘을 받아야 살 수 있고, 할 수 있다. 곧 성령의 방법으로 성령께서 하신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말, 뜻, 생각을 버리고(부인하고)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내 십자가의 삶을 통해 나의 불가능, 무력함을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신 그 주님의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진리로 지고 따르며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시편41,9)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유다는 이스가리웃(열혈당원)으로 독립투사였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악마’라고 하셨다.(효한6,70) 유다가 악마적 사고방식을 살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마귀는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모든 도덕적 피조물, 곧 에덴의 뱀의 말을 먹고 선악의 주체가 된 이들의 상태와 특징을 모두 담고 있는 상징적이며 실존적 존재다.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 하느님 나라의 일(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의 안위와 만족을 이루려는 것이 마귀적 발상인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마귀들에게 피를 빨리심으로 그 마귀(원수)들을 살리시러 오신 것이다. 그것이 원시 복음이다.
(창세3,15) 15 나(하느님)는 너(뱀)와 그 여자 사이에, 네(뱀)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예수)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피를 흘리게) 입히리라.”
= 자신이 마귀, 하느님의 원수임을 자각하는 이들만이 예수님의 발꿈치의 피, 구원의 새 계약을 먹는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십자가로 구원의 진리가 일어날 때, 곧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 당신의 대속으로 다 이루실 것을 믿게 하시려 말씀 하시는 것이다.
(요한17,12) 12 (예수께서)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그리스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보낸 이들 중에 유다(마귀)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보내셨던 것이다. 유다도 마귀를 쫓아냈고, 기적도 일으켰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 권한으로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보지(믿지)말고 하느님의 일을 하신 주님, 그분의 이름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다를 주님은 왜 삼년반이나 당신 곁에 두셨을까?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완전히 순명하심이다.
(요힌6,38)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 그 제자의 배반은 앞 18절에서 말씀 하셨듯 성경(구약)에서 이미 예언 하신 것이다.
(시편41,10) 10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
=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유다를 선택하시어 당신 곁에 두셨던 것이다. 그렇게 삼년반 동안이나 보고, 듣고 한 그가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 그는 하늘의 용서,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땅의 존재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주님의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로마12,2-3)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3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 모두에게 말합니다. 자신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저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 구세주, 메시아)로 살며,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바른 신앙을 살 수 있도록 분별의 힘을 주소서 ~아멘!!!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13,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6~17)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어떤 중요한 내용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가 바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아멘 아멘 레고 휘민'(amen amen lego hymin; I tell you the truth; verily verily I say to you)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당신 자신을 '주인'과 '파견한 이'로 지칭하고, 제자들을 '종'과 '파견된 이'로 지칭하여, 당신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고 말씀으로 명령하신 내용을 반드시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신다.
특히 '~는 ~보다 높지 않다'는 첫 구절의 내용을 이어지는 구절에서 반복하는 '동의적 대구법'이라는 문학적 기교를 사용해서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주인, 파견한 이; 종, 파견된 이)를 강조함으로써, 완전한 순종을 촉구하신다.
여기서 '주인'으로 번역된 '퀴리우'(kyriou; lord; master)의 원형 '퀴리오스'(kyrios)는 요한 복음 13장 13,14절에서 '주'(Lord)로 번역된 단어이며, '않고'로 번역된 '우크 에스틴'(ouk estin; is not)은 현재 시제의 부정 (否定)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그렇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승보다 훌륭한 학자, 스승보다 훌륭한 의사, 스승보다 훌륭한 화가, 스승보다 훌륭한 음악가, 스승보다 훌륭한 조각가 등은 얼만든지 나올 수 있지만, 예수님보다 더 높은 자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를 바로 아는 이들은 결코 마음을 높이거나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된다. 섬김과 봉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종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이 되었던 우리를 당신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시고 다시 사셔서, 당신 소유로 삼으셨다(로마6,6~18).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견주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을 지존하신 분과 같이 높이려 했던 사탄, 즉 루치펠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이사14,12~17; 루카10,18).
하느님의 뜻은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의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는 것과 모든 존재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필리2,9~11).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우리는 이 평범한 이치를 잊지 않고, 자신의 도리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며, 그분의 보내심을 받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음을 유념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또한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를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
진리되신 그분이 옳다고 하시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옳지 않다고 반대할지라도 옳은 것이며, 만물의 주권을 가지신 그분이 명령하시는 일체의 일들은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포기하거나 지체하지 말고 힘써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파견된 이'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 the one who is sent)는 필리피서 2장 25절과 코린토 2서 8장 23절에서 '협력자'로 번역되고, 여기서는 '파견된 이'로 번역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사도'로 번역되었다.
공관 복음서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는 문맥에서 쓰였다.
반면에 여기서는 단순히 섬김과 봉사의 의무를 교훈하기 위한 문맥에서, 그리고 파견한 이와의 관계의 문맥에서 나오므로, 그들을 파견한 이가 겸손히 섬기는데, 그로부터 파견된 이가 자신의 위엄을 내세우며 섬김의 도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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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 15일 목요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6-17).
몇 해 전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서 여섯 부부에게 ‘발 씻김 예식’을 거행한 적이 있습니다.
주례 사제인 제가 형제의 발을 씻어 주고 나면, 그 형제가 다시 자기 배우자의 발을 씻어 주는 방식이었지요.
마지막 부부의 차례가 되었는데 제가 형제의 발을 씻어 주기에 앞서 “형제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하였더니 그가 눈물을 왈카닥 쏟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배우자의 발을 씻어 주었는데 이 부부는 예식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강론이나 훈화에서 ‘군말 없이 실천합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우들에게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면 “그런데요 신부님,” 하고 한마디씩 덧붙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런 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틀림없는 유혹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수천 가지도 넘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온갖 유혹을 하나하나 물리쳐 나갑시다.
오늘 미사의 ‘예물 기도’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주님, 이 제물과 함께 바치는 저희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신 이 큰 사랑의 성사에, 언제나 맞갖은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창조 이전 이미 세워지셨던 그리스도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물로 발을 씻어주신 후 하신 오늘 말씀이다.
= 먼저 물로 발을 씻어 주심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살아 갈 길의 모든 잘못, 죄를 물로, 곧 하느님의 말씀(새 계약)으로 씻어주신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계획하실 때, 인간들의 타락을 아셨고, 그래서 창조 이전 대속의 구원자,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미리 예비 하셨기 때문이다.(에페1,4)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는 영원 속에 세워져 있었기에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용서, 의, 구원의 효과는 세상 창조 이래 온 역사 안에 믿는 모든 이들에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지혜, 힘, 사랑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믿지 않는다.
그래서 전(傳)하는 이에게 ‘어리석은 소리한다.’며 비난하고 박해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하신 말씀이~
복음 (요한13,16-20)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파견하신 주인, 주님이 박해로 죽으실 것이니 파견된 종(從), 제자인 너희도 박해를 각오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참 행복이라는 말씀이다. 왜? 죄의 용서, 구원의 보증(保證)이기 때문이다.
(사도5,40-41) 40 (최고의회 대 사제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 말씀을 올바로 전하면 모욕(侮辱)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사람의 말로, 곧 사람의 뜻, 도리, 지혜, 의(義)를 위한 말로 전하면 ‘좋은 가르침’이라며 칭찬을 받는다. 왜 그것이 잘못인가?(로마10,1-4 티토1,14참조)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세상 밖으로 불러내신 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敎會)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교회(敎會)-‘에클레시아“ (’에크-밖으로, 레시아- 불러내다.‘)
(루가18,8) 8(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 창조이전 이미 세워지셨던 그리스도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預言) 되셨고, 신약에서 가시(可視)적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1베드1,20)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새 계약)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새 계약의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 ‘하나’다
(1코린8,6)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아멘)
(요한1,3-4.10-13)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이 세상은 나그네의 삶이요 내 집이 아님을 깨닫고, 영원한 삶의 아버지의 집을 갈망하게 하소서.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집(나라)에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