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 (요한6,52-59)

2025. 5. 9. 오전 6: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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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9일 금요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 (요한6,52-59)


   


1독서<그는 민족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9,1-20)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12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19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화답송>시편117,1.2ㄱㄴ(마르16,15)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복음<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2-59)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사도9,1-20)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그는 땅에 엎어졌다그리고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사울이 "주님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 (3~5)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사건이다여기 사도행전 9장 3절에서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사도행전 22장 6절에는 '정오쯤'이라고 시간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동족 유다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도 바오로의 섬세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거기서 '정오쯤'으로 번역된 '페리 메셈브리안'(peri mesembrian; about noon)은 '가운데'를 뜻하는 '메소스'(mesos)와 ''을 뜻하는 '헤메라'(hemera)에서 유래한 '메셈브리아'(mesembria)가 시간(마태20,3; 마르6,48)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전치사 '페리'(peri; about)와 결합한 것이다.

 

자신의 회심 사건의 회고 가운데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도 바오로의 상세한 보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도행전 9장 3절에는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고 되어 있지만사도행전 22장 6절에는 '큰 빛'이 번쩍였다고 나온다.

즉 하루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에 이 태양 빛보다 훨씬 강력한 '큰 빛'이 등장하였음을 말함으로써 초자연적 현상이 분명히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사도22,6)

 

사도행전 22장 6절에서는 그 빛이 단순한 빛이 아닌 '큰 빛즉 '포스 히카논' (phos hikanon)으로 되어 있다.

특히 ''(great)으로 번역된 '히카논'(hikanon)은 '충분한'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사도11,24; 19,26). 따라서 본절에서 언급된 '큰 빛'은 '많은 빛또는 '어마어마한 빛'(a great light)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 광선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신적인 빛이 분명하다이 빛이 초월적이며 신적인 빛이라는 사실은 '갑자기'로 번역된 '엑사이프네스'(eksaiphnes)가 더욱 강조해 준다이 단어는 '갑자기'라는 뜻과 더불어 '뜻밖에', '홀연히'(suddenly)의 의미도 지닌다.

 

신약 성경에 사용된 5회의 용례 모두가 신적이며 초월적인 일들의 급격한 진입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사도9,3; 마르13,36; 루카2,13; 9.39).

따라서 사도행전 22장 6절은 태양과는 또 다른신적이며 초월적인 어마어마한 빛이 '갑자기바오로를 비춘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그런데 이 빛이 사도 바오로를 둘러 비추고 있다.

 

여기서 '둘레를 비추었다'로 번역된 '페리아스트랍사이'(periastrapsai)는 '주위에', '둘레에'를 뜻하는 전치사'페리'(peri)와 '붙들어매다', '고착시키다'를 뜻하는 '합토'(hapto)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합성 동사이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이 구절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어마어마한 신적이며 초월적인 빛이 사도 바오로 주위를 빙 둘러싸고그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이 구절은 사도 바오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기록한 사도행전 22장 7절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과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서 신적이며 초월적인 빛에 압도된 사도 바오로가 엎드러져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회고하는 장면이다.

 

사도 바오로가 엎어진 이 사건이 바로 신적이며 초월적인 어마어마한 빛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엎어졌다'로 번역된 '에페사'(epesa)는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어지다'의 뜻을 지닌 원형 '핍토'(pipto)의 부정 과거형이다.

이 단어는 사도 바오로에게 비친 큰 빛이 단순히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적인 힘을 가진 것이어서 그를 무력화시켰음을 시사한다.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사도9,4; 사도22,7)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26장 14절을 보면, "그리고 나는 히브리말로,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히브리 말로'란 표현은 사도 바오로가 들은 음성이 당시 팔레스티나에 살던 유대인들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사용하던 아람어화된 히브리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도 바오로의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두 번 부르는 이중 호격을 사용했다.

 

신약 성경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어떤 대상의 이름을 부르시는 경우가 몇 번 나타나는데이때마다 연민을 품은 애정이 가득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루카10,41; 22,31).

'박해하느냐'로 번역된 '디오케이스'(diokeis)는 '집요하게 괴롭히다'를 뜻하는 '디오코'(dioko)의 현재 능동태이다.

 

여기서 능동태가 사용된 것은 사도 바오로가 산헤드린의 재가를 거치고 대사제의 수락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지만(사도9,1~2; 22,5), 사실상 대사제나 온 원로단의 수락이나 동의가 그에게 있어서 주요한 동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는 자기 스스로 즉 능동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 동사가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사도 바오로는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일을 수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오로가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외에도 실제로는 더 많은 박해와 핍박을 가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도행전 9장과 사도행전 22장의 같은 내용 중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 사도행전 26장 14절에는 '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라고 번역된 '스클레론 소이 프로스 켄트라 락티제인'(sklleron soi pros kentra laktizein;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pricks)라는 표현으로 더 나온다.

 

이것은 당시에 자주 사용되던 격언으로서 '가시채를 차서 심한 상처를 입은 소'에서 유래한 것이며이와 거의 동일한 표현이 아에스킬루스(Aeschylus)의 저서 <아가멤논>에 나오는데거기에는 '가시채를 바로 차지 말라'를 뜻하는 '프로스 켄트라 메 락티조'(pros kentra me laktizo)라고 기록되어 있다.

 

'뾰족한 막대기'(가시채)로 번역된 '켄트라'(kentra)는 '켄트론'(kentron)의 복수형으로서 쟁기질하는 사람의 손에 있는 소몰이 '꼬챙이'를 가리킨다.

이것은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막대기로서소가 말을 듣지 않으면 찌르기 위해 농부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그 소는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되어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농경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격언인데, '신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라는 교훈적인 의미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열정으로 하느님께 대적하는 바오로를 예수님께서 직접 꾸짖으신 것이다.

 

사실 바오로는 실제로 예수님을 핍박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예수님께서는 바오로를 예수님 당신 자신의 박해자로 지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바오로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을 뿐이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사도9,5; 22,8; 26,15)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던 (마태28,20)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당할 때 그들만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늘 같이 계셨음을 보여준다.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생명의 빵’에 대한 복음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8-58).

그런데 누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으며 또 그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나눈 제자들이었을까요?

 

실제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몸소 당신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신 빵과 포도주를 직접 먹고 마신 제자들이야말로 분명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례를 미사에서 재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십니다.

그러나 미사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흔히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생명의 빵’에 대하여 우리에게 전하는 요한복음의 또 다른 부분은 영원한 생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요한의 첫째 서간도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하느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1요한 2,24-25 참조).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이 끝나는 오늘, 예수님의 살과 피로 얻게 될 그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나는 무엇을 먹었나 내게는 무엇이 담겨있나

 

(요한6,52-60)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 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유대인 들이다. 우리는 생명의 빵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으로 배웠고 또한 예수님의 살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넣어주시는 하느님의 법, 곧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임을 말씀을 통해서 보았다. 오늘 그 말씀을 넣어서 복음을 담고자 한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 하느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늘의 생명,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새 계약의 말씀이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로마8,10-11) 10 그리스도(새 계약)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거저 얻는 의로움이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신 것이지 육신의 배를 불리고 목을 축이는 것으로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 의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만 그 하느님을 이용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태6,31-33)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十字架가 거저 주는 의로움을 새 계약으로 찾아라, 깨달아라, 얻어라 하시는 것이다.(로마3,21-25참조)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로만 존재할 수 있다.

 

(요한1,4)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하느님은 우리를 질 그릇으로 표현 하신다.(예레19,11) 그렇듯 하느님의 말씀을 담으면 하느님의 그릇으로 영원한 빛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이고, 땅(세상)의 말을 담으면 빛이 없는 영원한 어둠으로 돌아갈 뿐이다. 하느님을 담아 성전이 되는 것이다.

 

(1코린3,16)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코린7,23) 23 하느님께서 값(대속)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 지금까지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성전)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해, 자신들의 힘 만을 의지해 왔던 이들에게 그들의 길이 헛된 것임을, 그래서 새로운 길을 가르치신 말씀이셨던 것이다.

 

60 그러나~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 모두 카파르나움 신앙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오신 후에야 그들이 믿게 된다.)

*그 카파르나움 속에 대표적 인물이 오늘 독서(사도9,1-20)의 사울이다. 자기를 위한 신앙, 곧 자신의 의로움을 위해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키며 착하게 살았던 그가 예수님과 그분의 새 계약, 그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이들을 박해 했던 것이다. 주님은 그 사울을 찾아 가셔서 당신의 빛을 담으시고 사도 바오로로 만들어 내신다.

 

(사도9,15)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어 저희 안에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잊지않게 하소서.~아멘!!!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요한6,52~5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3)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1절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는 교훈을 더욱 확장해서생명을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그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과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살을 먹는 문제만으로도 그들 사이에 거친 논쟁이 벌어졌는데피도 마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주장은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특히 모세의 율법이 피를 먹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레위7,26.27),

 

하지만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 속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선포였다여기서 '얻지 못한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케테'(euk echete; you have no)는 현제 시제로서 시대를 초월하여 변치 않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체성사를 암시하는 표현으로서예수님의 살을 뜻하는 빵(성체)과 예수님의 피를 뜻하는 포도주(성혈)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서를 쓴 시기인 1C 후반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지향했던 성체성사의 궁극적인 의미가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과 일치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살과 피'는 히브리적인 어법에 따르면, '전인'(全人)을 의미하는데살과 피를 먹는 행위는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일치 혹은 합일을 의미하며예수님의 대속적인 희생 제물을 영혼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20250509일 금요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독서는 사울의 회심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4-5).

사울은 예수님을 뵌 적이 없을뿐더러 믿지도 않았지만, 박해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을 박해하였다고 하십니다.

당신을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같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해야 이 같이 다른 이와 자신이 같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제아무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효자여도, 또 금실 좋은 부부라 해도 이처럼 여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내리사랑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울은 예수님만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박해하였던 그리스도인들과도 새롭게 만난 것입니다.

그 정점에 하나니아스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는 사울이 박해자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예수님의 명에 따라 사울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고쳐 줍니다.

그는 사울을 형제”(9,17)라고 부르고는 안수합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그가 새롭게 빛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눈, 소중한 이웃들을 함부로 판단하였던 눈이 치유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신과 하느님(예수님)의 관계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 삶 전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새 세상, 새로운 관계, 새로운 인생을 만나고 사는 것입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3주간 금요일]

 

구약(옛계약)과 신약(새계약)은 하나.

 

독서(사도9,1-20)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 새로운 길- 새 사람으로 낳으실, 곧 새 창조를 이루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길이다.(2코린5,17 히브10,15-20 참조)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그리고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 제사와 윤리의 옛 계약을 철저하게 지키며 지기 의(義)로 살아왔던 사울이다. 그랬던 그가 하느님의 일이라 여기며 새 계약의 새로운 길(예수)을 박해했던 것이다.

 

(요한16,2)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 그러나 사울을 구(求)하기 위해 하늘의 빗이 엎어뜨린 것이다.

 

사울이 주님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3)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 옛 계약의 눈으로 앞의 참(진리)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흗날(3)의 죽음과 부활이 구원의 진리, 새 계약임을 모른다는 것이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그가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 사람들의 나쁜 소문과 주님의 선택이 같을 수 있음을 봐야 한다. 곧 죄인을 찾아오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요한6,44)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비늘이 떨어진 것이다. 사도는 그 자신의 체험으로 후(後)에 비늘을 ‘너울’이라 표현했다.

 

(2코린3,15-16)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그래서 구약(제사)이 신약(잔치)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곧 모든 말씀의 결론을 피의 새 계약으로 결론짓지 못하면 헛 것, 죽음이라 하는 것이다.

 

18ㄴ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 자신의 뜻(의)을 위한 율법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향(向)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례(洗禮)의 본질이다.(1베드3,21)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끊어 버리는 세례 후, 새 계약으로 차린 기운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요한3,16-17)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속죄 제물, 새 계약)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우리가 선포(宣布)해야 할 예수님 이시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복음(요한6,52-58)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 ‘새 계약의 살과 피’로 다. 사람의 뜻, 의(義), 소원을 위해 제사와 윤리의 신앙을 사는 이들은 절대 믿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본 6장, ‘살과 피’의 관한 말씀의 결론이 생명의 말씀임을 놓치면 안 된다.

 

(요한6,63)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그러니까 보이는 성체 안에 보이지 않는 영을 살리시는 ‘피의 새 계약의 말씀’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루가22,20 참조)

 

사제의 가르침 중 ~ 

<‘말미암다.’라는 단어는 ‘디아(dia)’라는 전치사로 ‘~을 통하여, ~덕분으로’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살 가능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통로가 막히면 들락거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조종 당하는 존재입니다. 그 조종당하는 방법은 나를 만든 이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살은 행동 강령이고 피는 에너지라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에너지를 지니고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는 신(神) 밖에는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과 피로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은 살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

그러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인간의 지혜로 보고, 듣고, 그 하느님의 말씀 안에 숨겨진 구원의 이유,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열심한 행위의 신앙은 사울처럼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헛 것이 된다. 

또한 앞에서 확인 했듯이, 보이는 성체 안에 보이지 않는 영을 살리시는 그 피의 새 계약을 모르고, 믿지 못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면 큰 잘못, 오산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께 의탁 해야 한다.

 

(1코린2,4-5)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지혜새 계약)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성령의 힘, 하느님의 힘, 모두 하느님의 지혜인 새 계약, 그 새 법이다, (로마8,1~ 히브10,15-22)

 

하느님의 지혜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발길을마음을 붙드시어 그곳에 서게 하소서그 새 계약에 합당한 삶을 허락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새 교황에 첫 미국 출신 프레보스트 추기경 선출…교황명 '레오 14세'

◇새 교황으로 선출된 미국의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8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로 나와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5.5.8 (바티칸 로이터=연합뉴스)

새 교황에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선출됐다.

133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은 8일(현지시간)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이틀만이자, 네 번째 투표만에 첫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제267대 교황으로 결정했다.

교황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가톨릭에서 '레오'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그 이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강인함과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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