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24일 목요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루카24,35-48)
제1독서<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사도3,11-26)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8,2ㄱ과 5.6-7.8-9(◎2ㄱㄴ)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 주님, 저희 주님,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나이다. ◎
○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부속가<자유로이 할 수 있다.>
복음<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야 한다.>(루카24,35-48)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독서 (사도3,11-26)
사도행전 3장 11절부터 26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치유 사건으로 인하여 놀라서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베드로 사도의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 행한 첫번째 설교(사도2,14-36)에 이어 베드로 사도의 두번째 행하여진 설교이며, 첫번째 설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예수의 구세주 되심을 선포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영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4-16)
베드로는 생명을 기준으로 즉 바라빠는 생명을 죽이는 자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으로 대조한다. 베드로가 두 인물을 대조하여 강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생명을 죽이는 바라빠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영원한 죽음을 취한 어리석은 민족이요 미련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거룩하다'는 표현은 죄와는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하느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거룩한 표현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거룩하다'(하기온; hagion)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신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의롭다'(디카이온; dikaion)는 단어는 하느님의 공의를 대변한다. '거룩하다' 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거룩함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변한다면 의로움은 인간과의 관계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의 성격을 규명하고(사도4,27.30), 의롭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로운 성품과 삶을 대변한다(사도7,52; 22,14).
결론적으로 베드로가 유다인들이 생명의 주이신 메시아를 거부하고 살인자를 선택한 사실을 상기, 부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살인자라는 것이다.
'생명의 영도자'로 번역된 희랍어는 '퀴리오스'(kyrios)가 아니고 '아르케고스'(archegos)이다. '아르케고스'는 '어떤 분야의 길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인도자나 선구자' 라는 의미이다(히브2,10). 또한 어떤 일의 기원자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생명의 영도자'는 '생명의 근원자' 혹은 '생명의 부여자' 라는 뜻이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하게 얻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자란 이름이 적합하며(요한10,10),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한계를 갖는 육체적 생명이 아니고 영원토록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이다(요한17,1.2).
'여러분은 ~죽였습니다' 에 해당하는 '아펙테이나테'(apekteinate)에서 '여러분'은 14절의 주어 '휘메이스'(hymeis)와 같다. 실제로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린 법정은 로마의 법정이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직접 시행한 자들은 로마의 군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강조형 주어(인칭대명사)까지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을 유다인으로 지목하여 단죄하는 이유는 이 죄가 법률적인 죄가 아니고 신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번역된 '마르튀레스'(martyres)는 피고의 죄를 변호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세워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법정적 용어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실제로 본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서 알리기까지 하는 증인이었다.
증인들이 증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죽였고,하느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이다.
한편 역설적인 의미에서 베드로는 바른 증인으로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살인자를 놓아 주게 하고 무죄한 자를 죽이라는 불의한 증언을 한, 잘못된 증인이었던 유다인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고대 세계에서 이름은 단순히 명칭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앉은뱅이였던 사람의 다리를 낫게 한 주체가 그 사람이 믿은 이름이라는 베드로의 주장은 그 이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아직 살아 계시며 병조차 복종시키는 능력과 권세를 지녔음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표현이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란 표현에서도 나오지만, 믿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대상이다. 믿음의 대상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낫게 한 믿음의 주체를 베드로로 보는 경우와 앉은뱅이였던 사람으로 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낫게 하셨다고 병자들을 칭찬하셨던 것에 근거해서(마태9,22; 마르10,52),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믿은 앉은뱅이였던 사람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19-20)
베드로의 설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청중들의 회개에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개하고'에 해당하는 '메타노에사테'의 원형 '메타노에오'(metanoeo)는 '생각을 바꾸다'(change thought)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자기가 옳다고 여겨왔던 모든 가치관과 생활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리고 19절과 20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세 가지이다.
첫째, 죄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에 해당하는 '엑살레입테나이'(eksaleipthenai)는 '지우다'(묵시3,5), '씻어 내리다'(묵시7,17)는 뜻을 지닌 '엑살레이포'(eksaleipho)의 수동태 부정사로서 전치사 '에이스'(eis)와 함께 '죄가 지워짐을 받으려면'(씻기움을 받으려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죄가 지워짐을 받는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과로 오는 보상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글을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썼다. 그런데 당시의 잉크는 오늘날처럼 산이 섞이지 않은 잉크였기 때문에 한번 쓰여진 글이라도 고치고 싶으면 물묻은 스펀지로 한 번 닦으면 말끔히 지워졌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간에 심지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죽인 죄를 지었을지라도 일단 회개하면 그 모든 죄는 기억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게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다(이사43,25).
둘째,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온다. '생기를 찾을'에 해당하는 '아납쉭세오스'(anapsikseos)는 '원기 회복', '유쾌하게 되는'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refreshment).
'때'로 번역된 '카이로이'(kairoi)의 원형 '카이로스'(kairos)는 여기서는 종말론적 날에 국한되지 않는, 하느님이 정하신 시간을 가리킨다.
'죄사함'이 회개의 소극적 결과라면, '원기회복'은 회개가 갖는 적극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자신의 원기(생기)를 그에게 더하여 주심으로써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시고(2코린5,17),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선물로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로마6,23).
세째, 정하신 메시아를 보내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회개한 자들이 받게 되는 세번째 보상이다. 처음 두가지, 즉 죄사함과 원기 회복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됨이 예수님의 강생과 재림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얻는 보상이라면, 세번째 보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때 만유가 회복된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미래의 혜택이다(21절).
[백]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돌아와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전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슬픔과 절망, 좌절과 두려움의 심연 속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여전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들을 만져 보게 하십니다.
이어서 구운 물고기를 잡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령도, 영혼의 환영도 아니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부활하신 당신의 몸은 누구나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그분께서는 몸소 음식까지 잡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던 것처럼, 이제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이로써 제자들은 스승님께서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습니다.
덧붙여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을 통하여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 생각과 말과 행위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주님, 승리하신 당신 손을 찬양합니다.
(루카24,35-48)
35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 빵 떼심을 - 빵의 찢어짐, 빵이신 예수님의 찢어짐 곧 대속의 죽음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임을 묵상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평화를 묻고, 말씀하신다.(마태28,9 요한20,19.21.26참조) 당신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모든 죄, 짐을 없애셨으니 평화를 누리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 우리 역시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 말씀을 진리로 믿기까지는 의혹을 겪었다.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 예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곧 원혼이 출현한 것으로 곡해 할 세라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루가는 인지 발현사화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육성을 강조한 것이다.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 에서도 육체성을 강조했다.(요한20,20.25.27)
그러나 부활하신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살에 유의하라 <200주년 성서주해서 참조>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체를 “영광스러운 몸”이라고 했고(필리3,21) 장차 부활할 신도들의 육체를 ‘영적 몸’ 이라 했다.
(1코린15,43-44)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4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 세상의 죄를 없애신 대속으로 못 박히신 손과 발이다. 우리에게 승리, 평화를 주시는 손과 발이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빵과 물고기 두 마리(토막)로 오천명을 먹이신(요한6,11)후 하신 말씀이~
(요한6,35.51.63)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선악의 둘(두 토막)을 선이 악을 대속 해 생명을 주는 그 하나로 드신 것이다. 곧 선이신 당신께서 죄, 악을 대속하셔서 생명을 주는 그것이 진리의 양식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에페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어졌다” 하셨는데~ 그것은 하느님께 선택 받은 이들(제자들 포함)중에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복음, 그 진리를 몰라 아직 죄로 죽음의 상태인 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명으로 살아나야 된다는 말씀이시다.
(골로3,4)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 예수님의 이름- 구원자. 그리스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와(회개) 죄의 용서를 받도록 그 구원의 복음을 진리로 온 세상에 전하라 하신다.
예전에 예수님께서 선포 하셨던 하느님나라의 복음이 다 이루었음을 전하라 하시는 것이다.
(마르1,14-15)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그때, 그 시대가 지난 오늘날이다.
(히브10,16)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 하느님의 법, 곧 그리스도의 피(대속) 그 새 계약으로 얻는 죄의 용서, 구원이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천주의 성령님! 증언이라는 직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즐 깨어있게 하소서.~아멘!!!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복음(루카24,35~48)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39)
루카 복음 24장 36~49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지(認知) 발현사화와(24,36~43) 제자들을 교육하여 당신 고난과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시는 사명 발현사화(24,44~49)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고, 죽기 전 역사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동일 인물이심을 보이신다.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으셔서, 몸이 빛나고, 손상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으시는 신속함과 투철함을 가지고 계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자연적으로는 영혼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영적인 몸'('영광스러운 몸'; 필리3,21)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곡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인지(認知) 발현사화에서 육체성을 강조하고 있고, 요한 복음사가도 인지 발현사화에서 육체성을 강조하고 있다(요한20,20.25.27).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장차 부활할 성도들의 육체도 '영적인 몸'으로서 이 모습을 닮을 것이다(1코린15,44).
루카 복음 24장 42~43절에서 예수님께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잡수셨다는 것도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이며, 그 육체성을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사도10,41; 요한21,1~14참조).
2023년 04월 13일 목요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도 어제에 이어서 루카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발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24,35 참조)로 오늘 복음을 시작하면서 어제와 오늘 복음의 연속성은 강조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열한 제자와 동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겪었던 두 제자의 부활 체험도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열한 제자와 동료들 안에는 아직 여러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의혹”으로 옮긴 그리스 말 ‘디아로기스모이’는 부활을 거부하는 비판적이거나 반대적인 생각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 성경과 연결지어 설명하십니다.
이에 따르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구약 성경에서 예고되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완성되었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특별히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구원을 위한 필연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으로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의 증언과 선포로 지속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열한 제자와 동료들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우리 또한 부활 증언을 전해 듣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완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당신의 현존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믿음은 찾고, 만나서 얻는 것.
독서(사도3,12-16)
12ㄱ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태에서 부터 불구(죄)였던 이를 땅에서 일어나 걷게 한 일이다. 곧 땅(어둠, 허무)에서 일어나 하늘(빛)을 향해 하늘의 생명(구원)의 길을 걷게 되었음이다.
12ㄴ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 인간의 힘인 지혜, 사람의 신심으로 가 아니라는 것이다.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 하느님의 영광이시며 우리의 빛, 영광이시라는 것이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 우리의 신심도, 믿음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고치셨음’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가 믿는 것’이다. 곧 믿지 못하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 의탁하여 성경 말씀 안에 머무를 때, ‘하느님의 믿음’을 보게(깨닫게)되고 얻게 된다. 하느님의 믿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맹세다.
(탈출6,6-8) 6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주님이다. 나는 이집트(세상의 힘)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구해 내겠다. 팔을 뻗어 큰 심판을 내려서 너희를 구원하겠다. 7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이집트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8 그런 다음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겠다. 나는 주님이다.’”
(이사14,24-26) 24 만군의 주님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한 것은 그대로 실현되고 내가 결정한 것은 그대로 성사되리라. 25 나는 아시리아(세상의 힘)를 내 땅에서 쳐부수고 내 산들 위에서 짓밟으리라. 그러면 내 백성에게서 그의 멍에가 벗겨지고 그들의 어깨에서 그의 짐이 벗겨지리라.” 26 이것이 온 세상에 대하여 내려진 결정이며 이것이 모든 민족들 위로 뻗쳐진 손이다.
=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계약, 그 맹세의 손이다. 그 하느님의 뜻, 맹세인 말씀이, 곧 사람의 육을 입고 이 땅(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죄의 대속으로 십자가에 달리시어 죄의 용서가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피의 새 계약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하신 당신 손을 들어 맹세하신 하느님의 믿음이다.
<참고로, ‘신실하신 하느님’ 할 때 그 신실이 ‘피스티스’믿음이라는 뜻이며 계약은 ‘스타오로스’로 ‘기둥’이라는 뜻이며 십자 나무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믿음이시며 우리의 희망, 생명, 빛, 평화라 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어서 얻는 평화가 아니라, ‘이루어진 평화를 받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어느 신학자는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믿음을 주관적 믿음, 인간의 믿음을 ‘객관적 믿음’이라고 표현했다
복음(루카24,35-48)
엠마오로 낙향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 성찬례의 예수님이시다. 당신의 몸과 피(죽음)를 생명, 구원의 말씀 양식, 새 계약으로 세우셨다.(루가22,20- 요한6,63 참조)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 사람의 육을 입고 영원을 사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영원한 신의 죽음이며 놀라운, 끝없는 사랑이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 하느님께서 맹세로 약속(계약)하신 그분 믿음의 결과다.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믿음이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 우리의 육의 양식을 청하심, 곧 우리 자신을 받아주시는 모습이다. 그것도 청하심으로~~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 주님! 저희 모두도 간곡히 의탁합니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 이미 부활하셨지 않은가? 그 말씀은 아직 깨닫지 못해 영이 죽어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믿음인 예수 그리스도로, 곧 ‘당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얻는 하늘의 용서, 의, 평화를 알려주어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믿음(생명)이 살아나게 하라’는 말씀이다. 곧 큰 계명인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다.
(요한10,16)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이사45,23-24)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히브6,13-14)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복- ‘바라’(하늘의 생명력)인데, ‘바라크’(창조)에서 파생된 언어라 했다. 곧 흙의 존재,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의 새 창조로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이 복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 안에 머물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구원의 맹세, 그 믿음을 만나 그 믿음을 간직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평화)가 아버지의 뜻(믿음)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04월 24일 목요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움 속에 숨어 있던 제자들 가운데에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하고 인사를 건네십니다.
두려움과 의심으로 가득하였던 제자들의 마음이 주님을 만나 뵙고 차츰 평화와 확신으로 채워지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깊은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이라는 희망을 잃고 엠마오로 떠나던 두 제자를 되찾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른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몸소 체험한 이들에게 그 일을 전하여 듣고도 여전히 두려워하였기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음에도 바로 알아 뵙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놀란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음식을 드시며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임을 확인시켜 주시니, 그제야 제자들은 기쁨을 누리고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평화를 미리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리고 그들이 평화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루카 24,46) 이루어짐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미 주신 평화의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하고 때로는 의심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불안과 혼란 그리고 닫힌 마음속으로 오셔서 평화를 주십니다.
그분의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 없는 세상의 평화를 넘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낫게 하고 새로이 살게 하는 은총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