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양들의 문 (요한10,1-10)

2025. 5. 10. 오후 12: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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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2일 월요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양들의 문 (요한10,1-10)


   


1독서<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사도11,1-18)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13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화답송>시편42,2-3;43,3.4(42,3ㄱㄴ)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복음<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1-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1,1~18)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4~15)

 

사도행전 11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할례받은 신자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과 함께 식사했다는데 대한,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 및 베드로의 변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의 계기가 된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까지 복음이 증거되며 교회가 확장되는 역동적인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 안에서도,  이방인 선교의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회심 사건과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폐쇄적인 유대적인 전통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방안의 선교의 물꼬를 터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사도행전 10장 전체를 코르넬리우스의 회심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사도행전 11장 전반부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다시 한번 베드로의 변론을 통해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도 이방인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이방인의 선교의 길이 더 환하게 열렸음을 보여 주려는, 역사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선교사이기도 한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적인 기술이다.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4)

 

본절은 병행 구절인 사도행전 10장 30~33절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이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전한 말이었음은 분명하다. 코르넬리우스가 천사로부터 받은 말을 베드로에게 그대로 전한 말인 것이다.

 

여기서 '너의 온 집안이'에 해당하는 ('파스 호 오이코스 수'; pas ho oikos su)는 '집의 거주자들', '한 집안 식구'라는 뜻이다. 

즉 구원의 범위가 코르넬리우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미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를 만나게 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그 온 집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본절의 코르넬리우스의 이 진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이방인이라면 누구나 할례를 받은 후에야  구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는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러한 절차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따라서,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15)

 

본문을 직역하면, '성령이 떨어졌다'(epepesen to pneuma to hagion; 에페페센 토 프뉴마 토 하기온; the Holy Spirit fell)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무거운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덮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도행전 10장 45절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본문의 '에페페센'(epepesen)은 성령의 주도적 역사를 더 강하고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령께서 임하신 시기를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라고  언급했는데, 사도행전 10장 44절을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르게 언급하고 있을까?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도10,34) 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결과는 신령한 언어(방언)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 나타났는데, 이 표징은 베드로가 설교를 다 마치는 때에 맞추어 일어났을 것이다(사도10,46).

 

그러니까 본절인 사도행전 11장 15절은,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될 때부터

각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심령과 영혼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도행전 10장 44절은 베드로의 설교 말미에 신령한 언어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써 성령받은 사실이 외적 표징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가리킨다.

 

이것은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유대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 부어진 것처럼, 이제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도 부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즉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카이사리아에서 있었던(사도10,1)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성령 강림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이란 표현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성령께서 동등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믿는 자들에게 말함으로써,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행위가 전혀 비난받을 것이 아님을 힘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나는 양들의 문이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문’으로 계시하십니다.

양들이 드나드는 문! 바로 이 문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양들이 이 안전하고 확실한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도둑과 강도가 바로 그들입니다.

양들의 문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양들을 유혹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들의 문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그리고 도둑과 강도, 이렇게 오늘 복음은 양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부류의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또 다른 인물이 복음에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문지기입니다.

단 한 차례 언급되고 사라지기는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문지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착한 목자에게 양 우리의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이 목자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길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가  바로 문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문지기에 대하여 묵상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 사제와 수도자가 바로 문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을 신자들에게 전하고, 신자들이 올바른 방향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확장해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께 이끄는 문지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세상은 교회와 그리스도께 호감을 가지고, 알고 싶어 하며,  마침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찬미하며, 오늘 하루 주위의 이웃들을 그 문으로 이끄는 하느님 나라의 충실한 문지기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安心하고 들어갈 수 있는 ()이 있다는 것이 이다.

 

(요한10,1-10)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 양 우리가 막펠라 동굴이다. 막펠라 동굴(무덤)의 뜻이 ‘양의 우리’다. 믿음의 조상들이 세상을 나그네의 삶으로 살다가 하느님의 약속의 땅(가나안-새 하늘과 새 땅-천국)을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무덤(죽음)이 막펠라 동굴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은돈400세겔 이라는 값을 주고 산 무덤이다. 메시아(예수)의 피의 값으로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를 모형하고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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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23,19-20) 19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마므레, 곧 헤브론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안장하였다. 20 이렇게 하여 그 밭과 그 안에 있는 동굴이 히타이트 사람들에게서 아브라함에게로 넘어와 그의 묘지가 되었다.

= 그러니 양 우리, 곧 하느님의 약속의 땅(무덤)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문이 진리의 길인 것이고 예수님을 뜻한다. 그런데 하늘의 진리가 아님 땅(사람()의 길(뜻, 생각)로 들어가는 것이 도둑이며 강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양 우리는 세례로, 또 진리로 자신의 뜻을 버리고(죽고)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인, 그러나 가짜 진리로 자신을 버리지 못한(죽지 못한)이들이 섞여있는 하늘 교회가 아닌 땅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참 양식을 먹이시기 위해 참 목자께서 밖으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 양들을 보호하는 문지기다. 곧 양들을 보호하고 있다가 참 목자(진리)를 알아보고 그 양들을 그 참 목자에게 넘겨주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요한15,26)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참 진리만이 참 진리를 알아본다. 진리이신 성령께 의탁해야 참 목자(진리)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알아듣고 진리가 아닌 인간들의 길(뜻)의 신앙에서 나와야한다.

 

(묵시18,4-5) 4 나는 또 하늘에서 울려오는 다른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그리하여 그 여자의 죄악에 동참하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앙을 입지 마라. 5 그 여자의 죄악들이 하늘까지 닿아 하느님께서 그 여자의 불의한 짓들을 기억하셨다.

= 여자의 죄악들, 술에 취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들의 말(생각)을 섞어 인간들을 만족시키는(취하게 하는) 不義, 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 무약(無弱)한 양들이지만 참 목자의 목소리만을 안아듣는 양들이다. 그런 우리를 부르신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앞장서 간다는 것은 목자 자신이 제일 먼저 위험 요소들을 받을 각오(죽을 각오)로 가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율법(제사와 윤리)과 세상의 길을 진리로 말하는 소리를 피해야 한다.

 

(시편1,1-2) 1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2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 익인, 죄인- 다른 데로 들어가는 이들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먼저 온 자들, 구약의 율법(제사와 윤리)만을 지키는 자들이다. 율법을 온전히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럴 힘, 능력이 없기에 율법으로는 죄만 알 뿐인 것이다.(로마3,20)

그래서 율법자들을 도둑이며 강도라 하신 것이다. *도둑(클레프테스)-자격 없는 자가 어떤 일을 몰래, 혹은 함부로 행하는 것. *강도(레스테스)- 폭력을 사용하는 자.

그러니까 자기들에게 정당하게 속하지도 않는 권위를 행사하며 타당한 근거를 내세울 수 없는, 그런 복종과 순종을 불법적으로 요구하고 또 거기에 불응할 경우 폭력까지 동원하여 쫓아내고 하는 이들, 곧 앞9장에서 예수님(진리)의 치유를 받은 소경을 쫓아냈던 바리사이들이다. 하느님의 택한 백성인 소경을 엉터리 교리와 신학으로 가르치려고 하다가 듣지 않으니까 무력을 사용해서 퇴출시키는 이들이 도둑이며 강도인 것이다.

 

(루가11,52)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문이다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드나들며- 우리는 율법의 세상을 드나들며 함께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참 목자이시며 문(길)이신 주님으로 구원받은 이들은 율법 자들이나 세상들과 함께 살아도, 그들이 주는 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밭에서 진리의 양식, 곧 앞 6장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 그 새 생명, 새 계약의 빵(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시편23,1-6)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4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말씀)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5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6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아멘>

= 매일 매일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 참 목자, 예수님의 모형이~

(민수27,16-17) 16 “모든 육체에게 영을 주시는 주 하느님께서는 이 공동체 위에 한 사람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17 그들 앞에 서서 나가고 그들 앞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 그들을 데리고 나가고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공동체가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한사람 ‘여호수아’이다. (여호수아가 헤라어로 예수)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 敎會(그리스도 신앙을 같이하는 조직체)가 예수님의 길, 곧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생명, 의로움, 그 하느님의 뜻을 구원의 진리로 주지 못한다면, 생명을 훔치고 죽이는(멸망시키는) 율법과 세상과 같은 꼴인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목소리, 곧 하느님의 뜻만을 알라듣고 따라가게 하소서.~~아멘!!!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0,1~10)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7ㄷ~8ㄱ)

 

요한 복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예수님의 '나는~이다'에 해당하는 '에고 에이미'(ego eimi) 양식의 독특한 진술이 여기에서도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양들의 문'으로 나타내신다. 양들이 안심하고 출입할 수 있는 양들을 위한 유일한 문이라는 것이다.

 

'문'으로 번역된 '튀라'(thyra; door)는 '문'(door), 혹은 '입구'(entrance)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하늘 나라의 문'(루카13,24)이나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을 나타내어 쓰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양들의 문'이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요한14,6).

모든 사람은 이 문을 통해서만 거룩하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영원히 하느님의 약속들에서 제외되고 만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만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아래 있게 되며, 이 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요한1,12.13).

 

한편, 여기에 나오는 '문'에 해당하는 '헤 튀라'(he thyra; the door)가 어떤 사본에서는 '목자'에 해당하는 '호 포이멘'(ho poimen)으로 나온다.

이것은 번역가들이 '양들의 문'과 '양들의 목자'를 동일하게 생각했음을 암시한다.

 

실제 고대 근동의 규모가 작은 양들의 우리에 있어서는 목자가 문 입구에 누워 밤을 지새웠으므로, 양의 문과 목자를 동일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요한10,7.9.11.14).

 

요한 복음 10장 1절에서 문을 통하지 않고 우리로 들어가는 자들은 도둑이며 강도로 규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을 도둑이며 강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나보다 먼저'에 해당하는 '프로 에무'(pro emou; before me)는 '내 앞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 진리를 거부하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 무리들을 지칭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 사람들은 백성들 앞에서 하늘 문을 닫아 걸고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훼방하였고(마태23,13), 유대교 신자 하나를 얻기 위해 육지와 바다를 다니지만, 한 신자가 생기면 자신들보다 배나 더 나쁜 지옥의 자식이 되게 만들었다(마태23,15).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악마에게서 난 자라고 까지 하셨다(요한8,41).

 

이들은 하느님의 뜻이나 백성들의 영적 상태 등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이 중시한 것은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과 본질없이 형식만 남은 율법의 자구적 해석뿐이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외시하고, 자신들 스스로 굴레를 씌운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잃고 멸망으로 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가리켜 도둑이며 강도라고 질책하셨던 것이다.

 

 

 

 

 

20250512일 월요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독서는 야포에서의 체험으로 이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된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원의 경계가 넓어진 것이지요.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하여 교회 밖의 구원 가능성을 밝혔습니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교회 헌장, 16).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비그리스도교 선언, 2).

그렇다면 신앙에 대한 확신, 나아가 선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이 그 답을 알려 줍니다.

다른 종교 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구원의 가장 확실한 길이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양들의 문”(요한 10,7) 곧 양들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둑이나 강도처럼 제멋대로 들어와 양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안전하고 친밀하게 이끄시는 양들의 목자”(10,2)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나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로 말미암아 내가 품고 있는 희망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해 봅시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

 

복음(요한10,1-10)

1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양(羊)은 시력이 나빠서 앞에 따라가던 양과 조금만 떨어져도 길을 잃어버린다. 그런데다가 공격성이란 전혀 없어서 파리가 자기 콧구멍에다 알을 낳으면 그걸 이겨낼 힘이 없어서 목자가 잘 닦아주고 관리해 주지 않으면 코에 구더기가 득실대서 자기 머리를 나무에 박는 등 자해를 할 뿐이다.

그렇다고 구더기들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미련하고 우매한 것이 양(羊)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양은 목자가 없으면 풀밭에 편안하게 눕지도 못한다. 목자가 있을 때만 눕는다. 그런데 그런 양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잘 듣는 청력(聽力)이라는 것이다.

잠깐. 이스라엘은 양 우리를 크게 지어 놓고 한 사람에게 삯을 주고 온 동네 양들을 다 함께 넣고 지켰는데, 그때 양의 주인이 자기 양들을 불러낼 때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 나온단다. 절대 다른 목자를 따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이 시험해 봤다. 다른 목자에게 주인의 옷을 입히고 완벽한 성대묘사로 양들을 불렀는데도 한 마리도 따라 나오지 않더란다. *그것은 목자의 음성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상징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양들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양들로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 창조하셨음이다. 이 온 우주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중심에 놓고 창조되었다. 그래서 우리를 양(羊)에 비유하신 것이다.

 

(이사53,6)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시편23,1-3) 1 주님은 나의 목자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갈바를 몰라 헤메는 우리 죄인들이 하느님에 의해 불림을 받아 ‘목자의 목소리(말씀)를 알아듣고, 분별하여 구원 받는 이들을 당신의 양’이라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받는 구원이다.

 

(사도11,14)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 곧 구약의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이 참이라 고집하는 이들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으로 거저 의롭게 됨을 믿지 않는 이들이다.(로마3,20-24 참조) 그래서 그 하느님의 구원의 뜻에 인간의 열심, 의(義)가 보태어져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진리인 새 계약을 도둑질하는 강도인 것이고, 사람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양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얻는 의(義), 구원, 그 하느님의 은총, 은혜, 자비를 믿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진리로 내 뜻, 명예를 위해 살겠다고 고집하는 유대주의와 인본주의인 이 세상을 뜻한다.

그리고 ‘문지기는 우리의 보호자요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성령’이시다. 그래서 3절에 문지기이신 성령께서 목자이신 예수님께 양들인 우리를 데리고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 속에 잠들어(죽어)있는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밖으로 불러내셔서 하느님의 말씀(새 계약)을 먹이시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양 우리의 문’은 ‘하나’다. 예수님 당신이 문이라 하심은 그 하나의 문(門)인 당신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외아들, 그 한 분만으로 유대주의와 인본주의가 판치는 교회, 세상을 드나들면서도 주님의 양들은 그분의 목소리(새 계약, 말씀)를 알아들음으로, 이 세상에서 부터 미리 하늘의 생명, 안식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제사와 윤리가 참이라 하는 그 거짓 가르침을 피할 줄 알게 하소서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그 피의 새 계약을 따르는 합당하고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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