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목요일] 아드님을 믿는 이 (요한3,31-36)

2025. 4. 30. 오후 6: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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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 01일 목요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아드님을 믿는 이 (요한3,31-36)

 

   

 

1독서<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5,27-33)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그런데 보시오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화답송>시편34,2와 9.17-18.19-20(7)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행복하여라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복음<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5,27~33)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28-30)

 

사도행전 5장 28절의 '가르침'으로 번역된 '디다케스'(didaches)는 본절의 전반부에 대사제가 언급하고 있는 대로 '그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친 것을 가리킨다.

대사제의 표현 가운데 엿볼 수 있는 것은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퍼뜨리면서'로 번역된 '페플레로카테'(pepllerokate)는 '가득하다'는 뜻의 동사 '플레로오'(pleroo)의 완료형으로서 앞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대사제의 표현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 이미 예루살렘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지금 사도들을 심문하고 있는 그들에게 큰 위기감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사람'으로 번역된 '안드로푸 투투'(andropu tutu)는 '이 사람'이란 뜻이다.

희랍어에서 사람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단지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이며, 그 사람을 몹시 경멸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사제는 십자가에서 죽은 나자렛 예수를 여전히 저주받은 자로 여기며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의도적인 경멸은 내심으로는 예수를 몹시 의식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8)

 

본문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득하게 하여 예수님 죽음의 책임을 산헤드린 최고 회의 의원들인 자신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대사제의 주장이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것을 망설이는 빌라도에게 빠른 판결을 얻어내기 위하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 했던 말이기 때문에(마태 27,25) 예수님의 죽음의 책임을 그들이 져야 한다.

 '씌우려'로 번역된 '에파가게인'(epagagein)의 기본형 '에파고'(epago)는 '~위에'라는 뜻의 전치사 '에피'(epi)와 '가져오다'는 뜻의 '아고'(ago)가 합성된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에게 무엇을 가져오다'는 의미이다.

이 동사는 죄의 형벌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의 응보적 행위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 단어이다(2베드 2,5).

 

본문에서는 물론 자신들에게 예수님의 피의 값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실상 대사제의 말대로 본문에서 이 동사는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값을 치르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응보적 행위로 결론 지워지고 말았다.

A.D.70년 유대 종교의 총 본산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더 이상 제사가 드려지지 않게 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이 가시화된 것이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29)

 

'말론 에'(malon e; rather than)에서 '말론'은 비교급 부사인데, 본문에서 비교급 불변사 '에'(e)와 함께 사용되어 '~보다 오히려 더욱'이라는 뜻으로 비교의 정도를 더욱 강조한다.

여기서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은 복음 전파 금지 결정이며(사도4,19),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란 계속적인 '복음 전파'를 가리킨다. 결국 본문의 표현은 산헤드린의 결정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인간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0)

 

베드로는 하느님을 호칭함에 있어 '우리 조상들의'란 수식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자신들이 조상의 신앙을 이어받은 전통파라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들이 조상의 신앙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죽인 예수님을 그들 조상이 섬겼던 하느님께서 살리셨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베드로는 본문에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매단 것을 가리킬 때 '십자가'를 뜻하는 '스타우로스'(stauros)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나무'를 뜻하는 '크쉴론'(ksilon)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신명기 2장 22~23절을 연상시키기 위함이다.

즉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는 신명기의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 나무에 매달린 예수님은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나무에 매단 자를 '여러분이'(휘메이스; hymeis) 곧 '대사제와 산헤드린 최고 회의에 모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 지적하고 있다.

앞절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느님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데 이어서, 본절에서도 동일하게 하느님의 편에 있는 자와 그를 대적한 자를 명백히 대조시킴으로써,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인 대사제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야말로 하느님을 대적한 자들임을 밝히고 있다.

 

 

 

 

 

   

[백] 부활 제2주간 목요일(매일미사 오늘의 묵상(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말씀에서 ‘증인’, ‘증언’이라는 표현을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는 사도들이 대사제 앞에서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유다인들이 나무에 매달아 돌아가시게 한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를 당신 오른편에 앉히시어,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해 주셨다고 증언합니다.

사도들의 이 증언이 참되다는 것은,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요한 복음사가의 ‘독립적인’ 묵상으로 여기는 것이 문맥상 설득력 있어 보이는데, 그는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께서 증언하신 내용은 성부에게서 직접 보고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이는 성부께서 참되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내재적 삼위일체론, 곧 세 위격이시나 한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내적 친교와 일치를 표현합니다.

 성부께서 교회에 보내신 성령께서는 파스카 신비로 완성된 성부와 성자의 구원 업적에 대한 증인이십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며 교회 구성원인 우리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믿음은 자신의 삶을 전부 거는 것이다.

 

(요한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위에서 오신 이, 곧 성자 하느님께서 직접 위에 것을 보고 , 듣고, 증언하셨는데도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이가 없다고 하신다. 그 위에 것을 증언하시는 분이 땅에 속하여 땅에 있는 것을 말하는 우리의 일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이루시겠는가? 그런데 그 가운데 증언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은 참 되시다’한다.

 

오늘 독서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이름(뜻)을 가르치지 말라 했을 때~,

(사도5,29)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사도4,19-20)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뜻)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 확증(스프라기조-증명하다) 이 부분을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주님의 증언을 받는 사람은 하느님이 무조건 옳으시다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주님의 증언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하느님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은 자기가 믿는 대상에게 자신의 삶 전부를 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확증하는 행위 ‘스프라기조’인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 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영, 성령의 증언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하느님의 권위, 생명, 사랑,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다 주셨다.

 

(마태11,27)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 예수님께서 보내신 영, 성령을 받은 사람도 알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직역하면 ‘얻었다.’ 현재형이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하늘의 생명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하느님의 진노가 영원히 머무른다.

 

(요한3,18)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믿음으로 이미 받은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받아들임이 이름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 하신 이름이다.

 

(시편14,2-3)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들을 굽어 살피신다, 그 누가 깨달음 있어 하느님을 찾는지 보시려고. 3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 우리는 모두 멸망으로 떨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택하신(에페1,4) 어떤 무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져야 할 멸망의 자리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 예수를 밀어 넣어 버리신 것이다. 그런데 그 멸망의 자리로 떨어진 예수님의 품속에 하느님이 택하신 백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우리)은 이제 예수님의 멸망 속에서 이미 멸망을 당한 자들이 된 것이다. 모든 죄가 죽었다(용서 받았다)는 것이다. 모든 죗값을 치른 자가 된 것이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천주의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걸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아멘!!!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복음(요한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지만,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1)

 

요한복음 3장 31~36절을 세례자 요한의 말로 본다면, 요한 복음 3장 31절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자신과 구체적으로 차별화시키고 있는 내용이 된다.

그분은 자신과 달리 '위에서' 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위에서'로 번역된 '아노텐'(anothen; from above)은 장소를 가리켜서 쓰일 때에 '위로부터'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시간을 가리키는 부사로 쓰일 때는 '새로'(anew)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이것은 근본 출신이나 출처 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며 탄생을 묘사하기 때문에(요한1,13; 1요한2,29) '하느님께로부터'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위에서 오시는 분'의 사상은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특히 '~안으로 들어가다'는 뜻으로 흔하게 쓰이는 히브리어 '뽀'(bo)는 당신 백성에게로 오시는 분인 주님과 관련되어 자주 발견되었다.

그분은 짙은 구름 속에서 시나이 산에 오셨고(탈출19,9; 20,20), 수만 수천 성도와 함께 시나이 산에서 시온산으로 오신다(시편68,1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군중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마태21,9)을 외치면서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은 '오시는 분'에 관한 믿음과 관계된다(시편118,26).

 세례자 요한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을 가리켜 '위에서 오시는 분'에 해당하는 '호 아노텐 에르코메노스'(ho anothen erchomenos; The one who comes from above)라고 불렀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과 현저히 구별되는 것은 위에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계신다'로 번역된 동사 '에스틴'(estin; is)이다. 이 동사의 시제가 현재라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 위에 계속하여 계시며, 만물에 대하여 지배권을 가지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세례자 요한은 땅에서 났으며 땅에 속하였으므로, 땅에 속한 것을 말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땅에서 난 사람'에 해당하는 '호 온 에크 테스 게스'(ho on ek tes ges; the one who is from the earth)라는 표현은 '위에서 오시는 분'과 대구를 이루는 표현으로서, 예수님과 자신은 근본부터 다름을 증거한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 자신이 육(肉)으로 난 자요, 죄 아래 있는 자라는 뜻이다.

 

'땅'으로 번역된 '게스'(ges; earth)는 인간의 거처이며 세상의 일부로서의 땅을 가리키는데, 특히 하느님과 관련지어 볼 때 그것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의 뜻에 의해 존재하므로 그분께 시작과 끝이 있다.

하늘과 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땅이 죄의 활동 장소라는 것인데,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근본이 바로 이곳임을 밝힘으로써,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무죄하신 예수님(히브4,15)과 자신을 철저히 차별화시킨 것이다.

 이와같이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임으로써, 당시 그가 얻고 있던 명성과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했던 것이다.

 

 

 

 

 

 

2025년 05월 01일 목요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나누신 대화(요한 3,1-21 참조)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하늘에서 오시는 분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아드님이십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태양과 같은 분이신데오늘 복음은 그 큰 빛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이들일까요?

그들은 마치해가 떠올라 세상이 환한데도 창문에 커튼을 치고 방에 들어앉아 어둠을 쫓는다고 촛불을 켜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오랜 장마 뒤에 뜨거운 태양이 떠올라 대지를 산뜻하게 덥힐 때 창문을 활짝 열어 햇볕을 쬐는 대신문을 닫아걸고 굳이 보일러를 돌리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제힘으로만제 잘난 것으로만 살 수 없는데도 자신의 부족함과 가난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버티는 꼴이지요.

빛 앞에서 방어하고 저항하며자기 혼자서도 잘해 왔노라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그 미약한 힘자랑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련합니다.

넘실거리는 은총의 바다를 앞에 두고 겨우 쫄쫄 흐르는 실개천인 자신을 뽐내며 하느님 앞에서 위세를 부리는 격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이를 두고 어리석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악하다고 말합니다(3,19-20 참조). 그들은 생명을 보지 못하며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3,36 참조).

이는 윤리적인 평가가 아닙니다영적인 평가입니다.

윤리적으로는 다른 이들보다 나은 점이 있지만자신은 충분하다며 더 받아들이고 배우고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복음(요한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 위에서 오신 분은 하늘과 땅(세상), 모두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이다.

 

(마태28,18)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 부활하신 후 하신 말씀이다. 곧 아담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빠졌던 에덴의 돌봄, 곧 세상 다스림의 그 권한을(창세2,15)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값을 치루고 되찾으신 권한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는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세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습니까?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믿는 이는 땅(세상)의 목숨을 위해 살지 않고, 위(하늘)의 생명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믿지 않는다. 세상의 사람은 세상에 속하기에 세상 것만 믿는다. 곧 육의 목숨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보이는 노후를 준비할 뿐, 보이지 않는 사후준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2 그분(예수)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하늘에 계실 때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심이다. 세상 창조 이전에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에페1,4) 그 말은 우리의 죄로 창세전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히브4,3) 3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묵시13,8) 8 세상 창조 이래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사탄거짓말)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 온 역사 안에 인류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 창조 이전 영원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가시적으로 2천년 전에 골고타에 세워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 창조 이전에 죽임을 당하시고 역사 저편에서 부터 그 십자가의 효력을 이 세상으로 뿜어내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도 모두 피의 새 계약, 그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십자가, 그 피의 새 계약만이 기록된 것이다.(루가24,27 요한5,39 사도28,23) 

곧 창세기 9장의 무지개 계약, 탈출기 15장 나무 하나의 규정과 법규, 사무엘하 7장의 나탄의 예언,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에서 그 모든 것이 새 계약임을 결론지어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계획, 곧 구원의 계약, 그 말씀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갇히지) 않는다. 영원 속에 있는 것이다. 다만 그 하느님의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미 이루어 졌느냐? 아직 이냐? 우리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 하느님의 사람이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에 확증이다. (히브11,1)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인 말씀, 일만을 하셨다는 것이다. 곧 피의 새 계약, 그 말씀만을 하셨고 “다 이루어졌다” 하신 것이다.(로마8,1- 히브10,1-5 참조)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우리에 대한 권한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기도~

(요한17,2) 2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성서)

= 우리의 죄로 아들이 죽으셨다는 기도다.(~ 아! 주님)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 믿음은 순종이다.(믿지 않는 것이 죽을 죄다. 피의 새 계약이 주시는 용서(자유)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고 누리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육의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곧 내 뜻, 소원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 보는 삶이다.

다시, 하느님께서 우리 죄의 속죄 제물(속죄판)로 당신 아드님을 보내심(내어 주심), 곧 유기시키심(버리심)으로 영원한 어둠에 갇혀야 할 우리를 영원한 하늘의 빛, 생명을 살게 하신 그 사랑의 하느님께 영광, 감사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서 든 구원의 희망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사랑, 자비의 하느님을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그런데 오늘 본기도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파스카 제사를 세우셨으니 간절히 기도하는 이 백성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사제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저희와 화해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속죄 제물을 드리는 ‘파스카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용서가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자비(용서)를 청하고 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 창조의 목적인(이사43,7) 하느님께 영광, 감사를 언제 드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계속 제사드리는 온갖 종교 행위에 매달리기에 바쁜 것이다.

 

(히브10,14-22) 14 한 번의 예물(십자가)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 예제케엘 31장의 새 계약이다.

1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곧 당신의 몸(대속)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 영원한 사제, 예수 그리스도!

2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진리의 성령)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아멘!!!)

 

하느님의 은총진리의 성령님!

오늘 일용 할 양식으로 주신 모든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도록 그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그래서 피의 새 계약이 다 이루어진 십자가의 용서로 이 세상에서 부터 빛인 하늘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새 계약)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 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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