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

2022. 11. 1. 오전 4:48:59

글자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며,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에 너는 행복하고,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보답을 받으리라고 하신다. (루카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2022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필리2,1-4)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3)

 

필리피서 2장 2절이 그리스도인의 내적 화합을 권면한 것이라면, 필리피서 2장 3절은 

외적 태도와 행동의 화합을 강조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이기심이나 허영심을 따르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한다.

 

이기적 야심이나 허영심 및 교만은 일치와 화합을 방해하고 당파심과 경쟁심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이기심'으로 번역된 '에리테이안'(eritheian)의 원형 '에리테이아'(eritheia)는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욕구', '천박한 이기주의', 또는 '당파심'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필리피서 1장 17절에도 나온 단어이다.

 

이러한 태도는 필리피서 2장 1절의 '성령 안에서 친교'와 대조된다.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는 일은 천박한 이기심을 내세우지 않으며, 당파를 만들어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허영심'으로 번역된 '케노독시안'(kenodoksian)의 원형 

'케노독시아'(kenodoksia)는 '오류'라는 뜻을 가진 '케노스'(kenos)와 '생각하다'는

뜻을 가진 '도케오'(dokeo)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로서, '공허한 견해', '잘못된 견해'

라는 뜻이 있다.

 

이 단어가 70인역(LXX)에서는 우상 숭배의 허무성을 가리키는데(잠언14,14)

사용되었다. '케노독시아'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구함으로써 자만심에 빠지고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이기심'과 '허영심'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공허한 생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천박한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이기심이나 허영심'에 반대되는 태도가 '오히려'로 번역된 접속사 '알라'(alla)로 

시작되는 후반절에 나온다.

 

여기서 '겸손한 마음으로'에 해당하는 '타페이노프로쉬네'(tapeinophrosyne)는

성경에서 '겸손한 생각을 가짐','자신의 도덕적 무가치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뜻이 있다.

 

겸손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도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찾으시고 구원하시며(1열왕18,23; 시편119,67), 비천한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시편113, 4~6; 시편18,28).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겸손과 비천은 자신을 현실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절대적 완전하심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낮추는 태도이며, 스스로 낮아진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한편, '남을 낫게'에 해당하는 '휘페레콘타스'(hyperechontas)의 원형 '휘페레코'

(hyperecho)는 '~위에'라는 전치사 '휘페르'(hyper)와 '가지다','소유하다'라는 

뜻의 동사 '에코'(echo)의 합성어로서 기본적으로 '위에 높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위나 권세가 '뛰어나다','탁월하다','능가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그리고 '여기십시오'에 해당하는 '헤구메노이'(hegumenoi)는 '헤게오마이'

(hegeomai)의 명령 분사형이다.

 

'헤게오마이'는 원래 '계산하다','셈에 넣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헤게이스타이'

(hegeisthai)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생각하다','여기다'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라는 명령은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뛰어나겠지'

라는 식의 막연한 추측에 그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매사에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해 

보아 상대방의 뛰어난 점을 발견했을 때 그 점을 구체적으로  인정해 주고, 그 사람을 

높여 주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태도가 그리스도인이 소유해야 할 참된 겸손의 모습이다.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러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진실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매일미사(가해) 14-11-03]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2022년 10월 31일 월요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만일 누군가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떠올려 봅시다.

그동안 이래저래 신세를 져 온 은인들이 아닐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준 형제나 친척,

업무와 관련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직장 동료,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주고 조언해 준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한편 내가 잘 보여야 할또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 상사영업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존경하는 스승님,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위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이루는 관계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받았으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또 무엇을 받을 기대감에 먼저 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그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 뿐,

그에게 무엇을 주거나 베풀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우리식으로 바꾸어 봅시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하지 말고오히려 보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이들,

 나와 상관없는’ 이들을 초대하라고 주문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면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그 보답을 받음으로써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보답은 더 크고 유익하므로,

차라리 그것을 얻고자 현세의 보답을 포기하는 편이 훨씬 복되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과는 거리가 멀지만하느님 나라의 보상 점수는 그렇게 계속 쌓여 갑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4,12~14)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3~14)

 

루카 복음 14장 13절에서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된 '아나페이루스'

(anapeirus; the crippled; the maimed)와 '콜루스'(cholus; the lame)

원래 둘 다 동일하게 '절름발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두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먼저 '아나페로스'(anaperos)는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 나갔거나 그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불구자'를 가리킨다면, '콜루스'(cholus)는 신체의 일부분의

기능이 불완전한 것을 가리킨다.

 

한글 새 성경은 이러한 장애의 정도의 차이를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하여 구분했다.

 

이들은 신체 장애로 말미암아 가난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대접을 받아도

아무 것도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경제적인 무능력자들이었다.

 

오직 여기서만 나타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접하라

명령은, 자비를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루카 복음서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여자와 어린이와 죄인 및

이방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루카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복음 14장 14절의 의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직접적으로 '보답을 받을'

('갚음을 받을'; '안타포도테세타이'; antapodothesetai; will be recompensed;

will be repaid) 시기를 가리키며, 또한 '행복할'('마카리오스 에세'; makarios ese;

you will be blessed)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시간적으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부활 시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비유가 잔치를 베푼 자에게 주는 비유이지만, 본문의 말씀은

성도들의 모든 삶에 있어서 그 초점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보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답을 받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세에서 아무 것도 보답할 수 없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마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마태6,20; 19,21).

 

그리고 여기서 '의인들'은 '악인들'과 대조되는 개념인데, 종말의 날에

부활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을 가리킨다.




2022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사인가잔치인가피인가물인가?

 

복음(루카14,12-14)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아침은 왜 뻐져 있을까오늘 본문을 초등학생 수준곧 도덕과 윤리로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하느님의 뜻길에서 벗어날 수(하마트리아-있기 때문이다.

*사제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푸는 것은 좋은 일이나 내가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즉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은 하나도 칭찬받을 일이 아니며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 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도덕윤리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뜻길을 벗어난 것이다.(이사55,8 29,13 1코린2,9 티토1,14 참조)

*본문은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다저녁은 어둠을 아침은 빛을 뜻한다곧 저녁의 식사는 율법의 제사제물인 죽은 고기를아침의 양식은 율법을 대속하시고 생명을 주는 진리의 빵이다.

 

(탈출16,12)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고기에는 양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신다저녁의 고기는 죽음을아침의 양식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민수11,33) 33 그런데 그들이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주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그래서 주님께서는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다.

그러니까 바리사이 에게는 아침이 없는 것이다그래서 아침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이다곧 율법(제사윤리)을 얄심히지킨 그 인간의 의()는 죄를 알뿐(로마3,20) 하늘의 의(),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죽음으로 결론 맺기 때문이다.

하늘의 생명은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그 피의 새 계약으로 완성된다아니 되었다율법(저녁)은 아침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것이지 그곳에 머물며 만족 해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사 음식을 위해 서로 초대하지도 말고그 제사 음식으로 대접 받지도 말라는 말씀이신 것이다모두 허무요 헛된 것으로 결국이 죽음이기 때문이다곧 잔치(미사)를 제사로서로를 위해서 드리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저녁식사에서 잔치라 말씀하신다잔치(미사)는 죄인들이 돌아와(회개그리스도와 혼인하는 기쁨의 잔치다.(회개는 반성의 차원이 아니다)

 

(루가5,32)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14ㄱ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

하느님께서 보답해 주시니 복()이다.

 

14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율법의 제사그 옛 계약의 나를 버리고 의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그분을 진리로 받아들여 한 몸이 된 이들이 그분으로 부활할 때 함께 부활될 것을 말씀하심이다.

 

(로마6,4)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율법세상적 그 옛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세례(洗禮)그들이 성령 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복을 받음이다.(2코린5,17)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인간의 뜻을 위해 먹고 마시는 *제사(祭祀)가 아니라 성령(聖靈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완성인 기쁨의 *잔치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누어 이루어진다말씀의 전례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생명의 물을 먹는 것이고성찬의 전례는 제사를 완성하신 새 계약의 피를 먹는 것이다. (루카22,20)

문제는 물로 시작해서 피로 마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많은 신자들이 말씀()을 먹고 마셔서 생명을 얻는 미사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포도주)와 고기(성체)를 먹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는 것이 문제다물에서 피로 순서가 바뀌면 하느님의 뜻길을 벗어난 것으로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된다.

 

그것이 이집트의 재앙(災殃)이다.

(탈출7,20-21) 20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그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 물을 쳤다그러자 나일 강 물이 모두 피로 변하였다. 21 강에 있는 물고기들은 죽고 강은 악취를 풍겨이집트인들이 강에서 물을 퍼 마실 수가 없었다이집트 온 땅에 피가 흥건하였다.

이 이집트의 모습은 현세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모형(模型)이다곧 인간들의 뜻을 위해 열심히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그 인간들의 열심히 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첫째이나 하늘나라에서는 꼴찌다.

저녁식사의 고기에서 아침양식인 진리의 말씀으로 마쳐야한다곧 제사에서 잔치로 마쳐야 한다저녁을 건너 아침으로 시작되는 것그것이 생명(生命), 창조(創造)(창세1,5. 8. 13. 19. 23. 31.참조)

 

(시편42,2) 2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제 영혼이 당신(말씀)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영원한 진리의 성령님!

저희들의 생각을 깨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위령의 날]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22.11.02조회 79[모든 성인 대축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22.11.01조회 40[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22.11.01조회 48[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초대받은 자의 처신 (루카14,1.7-11)22.10.30조회 77[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열두 사도 (루카6,12-19)22.10.28조회 47[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사흘째 되는 날 (루카13,31-35)22.10.28조회 53[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루카13,22-30)22.10.26조회 47[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루카13,18-21)22.10.26조회 50[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루카13,10-17)22.10.23조회 5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 (루카13,1-9)22.10.22조회 53[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이 시대의 징표 (루카12,54-59)22.10.21조회 48[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3)22.10.20조회 64[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주인의 뜻 (루카12,39-48)22.10.19조회 44[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루카10,1-9)22.10.18조회 59[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22.10.16조회 46[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성령 모독 죄 (루카12,8-12)22.10.16조회 61[연중 제28주간 금요일]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1-7)22.10.15조회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