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야고보 사도 축일]섬기는 사람(마태 20,20-28)

2019. 7. 25. 오전 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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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야고보 사도 축일]섬기는 사람(마태 20,20-28)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는데,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라고 한다.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마태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A.D.44년에 12사도 중에 처음으로 순교(참수치명)당하는

(장長; 대大)야고보 사도(사도행전12,1~2)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2코린4,7~15)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8~9)

 

코린토 2서 4장 7절~15절의 말씀은 2013년 6월 14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제1독서의 해설을 찾아 보기 바란다.

 

오늘은 빠진 부분 중에서 코린토 2서 4장 8~9절을 해설한다.

 

코린토 2서 4장 8절과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8개의 분사를 사용한 표현을 통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약의 복음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원문에는 8개의 분사가 모두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현실감을 잘 드러낸다.

 

여기서 '환난을 겪어도'로 번역된 '틀리보메노이'(thllibomenoi; we are troubled;

we are hard pressed)는 원래 '포도즙을 짜기 위해 누르다'라는 뜻을 지닌

'틀리보'(thllibo)의 현재 분사 수동형이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피를 말리는 고통을 당하며 그의 적대자들에 의해 압박당한 사실을 드러낸다.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모두 7회 사용된 이 동사는 모두 수동태로 쓰였으며,

'환난을 당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었고(2코린1,6; 7,5; 1테살3,4; 2테살1,6.7; 1티모5,10), 또한 명사형 '틀립시스'(thllipsis) '환난'이란 뜻으로 쓰였다(마태24,9; 로마5,3).

 

그리고 '난관에 부딪혀도'로 번역된 '아포루메노이'(aporumenoi; we are perplexed)본래 '어리둥절해지다', '혼란해지다', '불확실하여 당황해지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레오'(apor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일체의 수단이나 빠져나갈 능력이 없는 곤경에 처한 사도 바오로의 처지를 잘 드러낸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마치 살벌한 군인들에 의해

단단히 포위당해 있는 것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관 난관 속에서도 그는 결코 억눌리지 아니하고

절망하지 아니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아는 법'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힘'(2코린4,7), 즉 질그릇 속의 보물이 그를 모든 환난과 난관 가운데서

보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당혹스런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결코 사도 바오로를 좌절시킬만큼 당혹스럽지 않으며, 제아무리 시련을 당한다 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도 동일하게

한계에 직면하시지는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자유의 영으로 인간적인 연약함과 제한됨을 초월하여

역사(役事)하신다.

 

따라서 사도 바오로가 겪는 것과 같은 이러한 환난과 난관들은 의미없는 고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2서 4장 9절에서 사도로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계속해서 진술한다.

 

여기서 '박해를 받아도'로 번역된 '디오코메노이'(diokomenoi; persecuted)

본래 '사냥하다'라는 뜻을 지닌 '디오코'(dioko)의 현재 분사 수동태이다.

 

이것은 마치 사냥감을 추적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듯한 사도 바오로의

적대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사도 바오로 자신이 이러한 사냥감으로 쫓김당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결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히브리서 13장 5절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이 사도 바오로의 매일의 박해의 경험 속에서도

분명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맞아 쓰러져도'로 번역된 '카타발로메노이'(kataballomenoi;

cast down; struck down)갑자기 습격을 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경험은 사도행전 14장 1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과

결부된다.

 

거기서 사도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으로부터 리스트라까지 그를 추격해 온

유다인들에 의해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해 돌로 맞아 생명이 끊어진 줄로 안

지경에까지 처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위협도 그를 멸망시키지 못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들'에게 궁극적인 영원한 멸망은  존재하지 않기에, 현세적 물리적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7월 25일 월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복음 (마태20,20-28)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기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26~28)

 

'너희 가운데에서'에 해당하는 '엔 휘민'(en hymin; among you)이란 표현은

제자들을 다른 대상과 구분짓는 말로서, 이미 제자들은 이 세상 나라와는

구별되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천국의 본질과 관련해서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신다.

 

여기서 '섬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diakonos; minister;

servant)'심부름을 가다'라는 뜻이 있는 '디아코'(diako)에서 유래하여

'일꾼', '하인'(요한2,5.9), '하인'(마태22,13)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초대 교회 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자를 가리키는 '봉사자', '집사'(필리1,1;

1티모3,12)라는 호칭이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마태오 복음 20장 27절에서 '첫째가'에 해당하는 '프로토스'(protos; first;

chief)장소나 시간에 대해 '~보다 앞에'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프로'(pr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여기서는  지위나 계급 등에 있어서 '제일 높은 자'를 가리킨다.

 

반면에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oulos; servant; slave)'묶다'(마태13,30),

'묶다', '결박하다'(마태12,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데오'(deo)에서 유래하여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slave)를 의미한다.

 

종은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상대방을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위의 마태오 복음 20장 28절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신 목적만을

밝히시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본받아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합당한 자질을 갖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여기서 '몸값'에 해당하는 '뤼트론'(lytron; a ransom)'풀다'(마태16,19), '벗다'

(사도7,33) 등으로 번역되는 '뤼오'(lyo)에서 유래하여 '의무나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말한다.

 

말하자면 타인의 속박아래에 있는 노예나 죄수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죄와 죽음의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참된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러한 죄와 죽음과 사탄의 속박을  끊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죄하신 당신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야 했다.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의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와 위격이 같으신 무죄하신 예수님이 죄지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대속(代贖; Redemption)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대속물로서 죽으신 것은 '많은 이들'을 위해서이다.

 

'많은 이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의 원형 '폴뤼스'(polys)수적으로

많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길다는 뜻과 정도에 있어서 광범위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모든'이라는 뜻이 있는 '파스'(pas)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데에 유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7월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께 가장 총애를 받던 제자였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에,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 세 제자와 함께 동행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토록 예수님의 총애를 받던 제자였지만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는 자기 어머니와 동생 요한과 함께 예수님께 엉뚱한 청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혀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형 선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시자마자 이런 청을 드린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열 제자가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긴 것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엉뚱한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그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 주시며, 그것을 위하여 그들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바로, 당신의 나라에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당신께서 드시려는 잔, 곧 당신께서 걸으셔야 할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는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꺼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바칩니다. 아그리파 1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44년경, 곧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10여 년 뒤에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에 처합니다(사도 12,1-2 참조). 이렇게 야고보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음으로써, 그토록 바라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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