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목요일]성경이 증언 (요한 5,31-47)

주님께서는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신다. (탈출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희망을 걸어 온 모세가 그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2,7-14)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9-10)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뻣뻣한'이라고 번역된 '케셰'(qesheh)는 아마 농경 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것은 '멍에를 지우는 데 대한 황소의 반항적인 반발'을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는 '뻔뻔스럽고'(shameless), '오만(거만)한'(insolent), '완고한'(harden)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신명9,6; 2역대30,8; 느헤9,16; 사도7,51).
즉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센 모습이 마치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버티는 미련한 소와 같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를 말리지 마라'로 번역된 '한니하 리'(hanniha li; leave me alone)에서 '한니하'(hanniha; '말리지 마라','하게 하라')의 원형은 '누아흐'(nuah)인데, '내려앉다','멈추어 서다'(민수10,36), '쉬다'(탈출20,11), '휴식을 취하다', '편안히 쉬다'(이사23,12)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편히 쉬게 하다','홀로 쉬게 하다'(이사28,12)라는 의미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해서 '나를 홀로 있게 하여라'(let me alone)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절교선언(絶交宣言)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노예생활하던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켜 인도하시고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완고하고 사악한 백성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제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창세12,2). 그런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약속은 단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계약의 상속자라는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제2의 아브라함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 사랑에 대한 기억상실과 불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잊은 채 우상숭배에 빠져 하느님의 진노를 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 32,9-10) 그러자 모세는 조상들에게 베푸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타오르는 진노와 재앙을 거두어달라고 절절한 사랑으로 간청합니다(32,12-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엉뚱하게도 수송아지를 섬겼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메시아로 오신 당신을 믿지 않고 죽이려 드는 유다인을 질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않는 이들이 믿음을 갖도록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알려주시며 믿음을 통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끝내 죄 많은 이들을 위해서 수난을 받으시고 목숨까지 내 놓으셨지요.
오늘날에도 목이 뻣뻣해져 하느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하느님의 일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신약의 유다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도 시간도 재능도 주변 환경과 삶의 터인 온갖 생태계와 사람들도 다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것이지요.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기에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주님의 모습을 뵙지도 못하며, 주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요한 5,37-38). 그들은 믿음이 없기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5,40).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5,42-44).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받아들일 여백이 없어지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착각에 빠질 것입니다. 이른바 공주병, 왕자병에 걸려 자신의 구원은 물론 불의와 불동평과 거짓 앞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나락에 떨어질 것이 뻔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매순간 하느님의 감당할 수 없는 자비를 ‘기억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희로애락으로 점철하는 모든 순간에 함께해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지를 온몸으로 드러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다른 이들의 배려와 호의를 기억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리는 그것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와 사랑과 헌신을 통한 중재자의 역할도 수행해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모세는 우상에 빠진 어리석은 백성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구원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주님께 간청했지요.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유다인들이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도록 알려주시고,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모세나 예수님처럼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되어 세상에 빛을 밝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오늘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복된 날이길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의 넓은 의미에서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적대자들 간에 전개되는 재판 과정을 강조합니다. 안식일에 벳자타 못의 병자를 낫게 해 주신 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증인들을 나열하십니다. 그리스도와 당신 인격, 당신 사명을 위한 증언에는 먼저 세례자 요한, 그다음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활동, 곧 파견받은 이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아버지의 활동, 끝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앞선 성경 전체의 보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모세에게 고소당하여 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인간의 협력, 그분께 열려 있는 겸손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가 없고 동시에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빛보다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행실이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믿음으로만 예수님 안에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활동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활동이지만, 유다인들의 불신으로 거부당하고 맙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